지난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국가의 국제법상 의무에 대해 역사적인 권고의견을 발표했습니다.
ICJ가 기후변화를 공식적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법의 발전과 향후 기후 소송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와사와 유지 재판소장은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환경을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파리협정에 따라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하로 제한해야 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밝혔습니다.
바누아투 청년의 외침, 세계법정 움직였다…97개국 참여로 도출된 500페이지 권고의견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번 권고의견에서, 국가들이 환경 보호를 위해 상당한 주의의무와 상호 협력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파리협정에 명시된 지구 온난화 1.5°C 제한 목표를 단순한 권고 수준이 아닌 이행해야 할 국제법상 의무로 해석했습니다. 의무를 위반한 국가에 대해서는 위법 행위의 중단은 물론, 재발 방지와 완전한 배상까지 요구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해당 권고의견에 대해 “지구와 기후 정의, 그리고 젊은 세대의 변화를 만들어낼 힘이 확인된 순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유엔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재생에너지 전환 촉구 연설 직후 발표되었습니다.
재판소는 이번 결정의 법적 근거로 환경조약과 인권조약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첫째, 오존층 보호 조약, 생물다양성협약, 교토의정서, 파리협정 등 다양한 환경 조약의 당사국인 회원국들은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둘째,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은 인권 향유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세계인권선언 등 인권 규범의 핵심 요소로 간주된다고 재판소는 설명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21년 9월, 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가 ICJ에 권고의견을 요청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비롯됐습니다. 이 계획은 ‘기후변화와 싸우는 태평양 섬 학생들’이라는 청년 단체의 제안에서 출발했으며, 특히 소규모 섬나라들이 직면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이후 바누아투는 유엔 회원국들의 지지를 확보했고, 2023년 3월 29일 유엔 총회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ICJ 권고의견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1) 환경 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법상 국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2) 국가가 환경에 해를 끼칠 경우 그 법적 결과는 무엇인가?
유엔 헌장에 따르면,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권고의견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비록 권고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ICJ의 권위에 따라 상당한 법적·도덕적 무게를 지니며, 국제법 발전과 국가 의무의 명확화에 기여합니다. 이번 사건은 총 91개국이 서면 성명을 제출하고, 97개국이 구두 진술에 참여한, ICJ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관여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습니다.
권고의견은 총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작성됐으며, 기후변화를 “긴급하고 실존적인 위협”으로 규정했습니다. 재판소는 그 원인이 인간 활동에 명백히 기인한다고 판단했고, 이와사와 유지 재판소장은 낭독 중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인권은 다른 모든 인권 향유의 기반”이라며, “기후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가는 국제법상 위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재판소는 각국이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오염을 줄이기 위해 협력해야 하며, 기후위기로 피해를 입은 국가는 사례별로 배상받을 자격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권고의견이 향후 국제 협상과 전 세계 기후 소송에서 강력한 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비영리단체 액션에이드의 바누아투 국가 매니저 플로라 바노는 “이번 권고의견은 기후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며, “기후 혼란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 의견은 보호와 배상의 길을 열어주고 정의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최근 국제 법원이 다룬 여러 기후 관련 사례 중 하나입니다. 2024년 5월에는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국제해양법재판소가 화석연료 연소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해양 오염으로 간주하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7월 초에는 미주인권재판소가 국가들이 국제법상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응할 의무가 있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