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진보 정치인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사임을 밝혔습니다.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각)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오타와의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당에서 새 지도자를 선출하면 자신은 캐나다 자유당 당대표와 총리직을 모두 사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뤼도 총리가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사임 압박을 받았단 점에서 놀라운 발표는 아닙니다. 자유당 정권의 지지도가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유당 지지율은 16%에 불과했습니다. 캐나다는 올해 10월 연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트뤼도 총리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든 것으로 풀이됩니다.
트뤼도 총리가 이끌었던 캐나다 기후정책이 후퇴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진보계 정치 스타 트뤼도, 경제위기에 지지율 급락
트뤼도 총리는 기후변화·다양성 등 진보적 정책을 이끌어 온 정치인입니다.
그는 40대의 젊은 나이와 사교적인 태도, 진보적 의제, 캐나다 정치 명문가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을 기반으로 일찍이 스타 정치인에 올랐습니다.
2015년 총선에서 ‘캐나다의 오바마’란 별명을 얻으며 총리 취임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는 2019년 대형 건설사의 비리를 옹호했다는 스캔들로 인해 정치적 명성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위기와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됐습니다.
트뤼도 정부의 정책으로 이민자 유입이 늘어나 주택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 것 아니냔 비판도 거셌습니다.
그 결과, 12월 기준 트뤼도 총리의 지지율은 20%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경쟁자인 보수당이 45%의 지지율을 얻은 것과 비교됩니다.
캐나다 정치권 혼란 “이번에도 트럼프 효과”
작년 11월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트뤼도 사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선 직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취임 첫날 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부과하겠다는 발언입니다.
이에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당선자 자택을 급히 방문했으나 문제 해결에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되라’는 조롱을 들었단 사실이 알려지며 이미지가 추락했습니다.
고율 관세 대응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내각 내 충돌도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前)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의견 충돌을 이유로 지난달 16일 사임한 것입니다.
트뤼도 총리에게 현금성 지원 정책을 줄일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율 관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프리랜드 전 부총리의 주장이었습니다.
강력한 지지자였던 프리랜드 전 부총리의 사퇴로 트뤼도 총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세계 정치권 우경화, 이젠 캐나다까지
한편, 이번 사태는 전 세계적 우경화에 이은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6월 유럽연합(EU) 선거에서는 보수우파 정당이 약진했습니다. 11월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재선됐고 상원·하원도 공화당이 우세했습니다.
차기 캐나다 총리로는 피에르 폴리에브 보수당 대표가 유력합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처럼 자국우선주의를 채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폴리에브 당대표가 6일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영상에서도 이러한 입장이 확인됩니다. 그는 영상에서 ▲이민자 규제 ▲세금 삭감 ▲정부 지출 제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캐나다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폴리에브 당대표는 보수당의 승리를 자신하며 조기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밝혀왔습니다.
이에 대응하듯 트뤼도 총리는 사퇴 발표와 함께 오는 3월 24일까지 의회 정회를 공표한 상황입니다. 자유당 신임 당대표가 선정되면 총리직을 맡게 됩니다.
다만, 보수당 등 야당은 신임 총리에게 신임 투표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임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면 의회는 해산됩니다. 이는 조기 총선 국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보수당 총리 유력 “탄소세 삭감·화석연료 생산 증대 전망”
폴리에브 당대표가 총리에 당선될 경우 기후정책도 후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정책은 2019년 트뤼도 총리가 도입한 탄소세입니다.
기업이 탄소배출량마다 일정 세금을 부담하는 제도입니다. 2019년 톤당 20캐나다달러(약 2만 원)에서 매년 인상돼 2030년 톤당 170캐나다달러(약 17만 원)에 달할 계획이었습니다.
폴리에브 당대표는 자신이 총리로 당선될 경우 탄소세 감축을 공언한 바 있습니다.
지난 4일에는 캐나다의 저명 심리학자 겸 우파 인플루언서 조던 피터슨과의 인터뷰에서 석유 정제소·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원자력발전소 등의 신규 건설 가속화를 선거 공약으로 밝혔습니다.
트뤼도 총리 사퇴 소식에 화석연료 업계의 기대감은 높아진 상황입니다. 6일 캐나다 주요 주가지수 ‘S&P/TSX’의 에너지 분야는 장중 최고 2%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헤더 엑스너-피로 캐나다 기업협의회 에너지 특별 고문은 “석유업계에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안도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뤼도 총리와 자유당 정부가 지난 10년간 석유·가스 개발에 적대적 정책을 도입해 왔단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는 이번 사퇴로 “캐나다가 마침내 (석유·가스) 사업하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단 낙관론이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