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에너지 대기업 로열더치쉘(이하 쉘)이 ‘유령 탄소크레딧’을 판매했단 폭로가 나왔습니다.
쉘이 탄소감축에 근거하지 않은 탄소크레딧을 판매해 2억 캐나다달러(약 2,000억원)의 수익을 거두었다는 주장입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캐나다지부는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열풍 판매(Selling Hot Air)’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논란의 대상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진행 중인 ‘퀘스트 CCS(Quest CCS)’ 프로젝트입니다.
쉘은 이곳 오일샌드 정제소에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후 감축실적을 탄소크레딧으로 발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쉘이 실제 감축한 탄소보다 2배 많은 탄소크레딧을 발행했단 것이 그린피스 캐나다 지부의 지적입니다.
즉, 실체가 없는 ‘유령 탄소크레딧’이 대량 발행됐단 것.
쉘, 캐나다 전폭적 지원 속 오일샌드 CCS 프로젝트 개발 🏗️
쉘이 퀘스트 CCS 프로젝트 계획에 착수한 것은 2005년입니다.
오일샌드는 석유가 포함된 모래를 뜻합니다. 과거에는 채굴 경제성이 떨어져 외면받았으나, 기술이 발전하고 석유 가격이 오르며 채굴이 시작됐습니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석유자원을 ‘비전통석유’라 부릅니다.
특히, 캐나다 앨버타주 내 오일샌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원유 매장지 중 한 곳으로 꼽힙니다. 매장량만 약 1,640억 배럴(약 26조 리터)로 추정됩니다. 세계에서 3~4위에 달하는 매장량입니다.
문제는 오일샌드 생산은 기존 석유보다 최대 6배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단 것입니다. 뜨거운 증기를 주입해 석유 성분을 녹여 채굴하기 때문입니다. 증기 생산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단 것.
이에 캐나다 정부는 적극적인 CCS 프로젝트 지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2012년 쉘이 세계 최초로 오일샌드 CCS 프로젝트에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프로젝트에는 앨버타 주정부가 7억 4,500만 캐나다달러(약 7,430억원), 캐나다 연방정부가 1억 2,000만 캐나다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총개발비 13억 5,000만 캐나다달러(약 1조 3,400억원)의 절반이 넘습니다.
시설은 2015년 가동됐습니다. 이후에도 주정부는 막대한 운영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간(2015~2022년) 앨버타 주정부가 시설에 지원한 보조금만 총 7억 7,700만 캐나다달러(약 7,750억원)에 달합니다.
총비용(10억 5,600만 캐나다달러)의 70%를 훌쩍 넘습니다.
정보공개로 ‘유령 탄소크레딧’ 발견 “세금으로 93% 지원한 셈” 👻
논란이 발생한 건 비밀리에 추가적인 정부 지원이 있었단 내용이 드러나면서입니다.
그린피스 캐나다지부는 정보공개를 통해 주정부와 쉘 간의 보조금 협상에 대한 문건을 입수했습니다.
문건을 확인한 결과, 주정부는 쉘이 1:2의 비율로 탄소크레딧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기업이 탄소배출량마다 일정 세금을 부담하는 탄소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탄소크레딧으로 이러한 탄소세를 경감하거나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해당 발행 비율은 탄소세가 40캐나다달러(약 4만원) 미만인 경우에 한정됩니다. 가격 형성 이전까지는 추가 발행을 허용함으로써 “대규모 CCS가 추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단기 조치”란 것이 주정부의 설명입니다.
그 결과, 지난 8년간 쉘의 오일센드 정제소에서 나온 탄소크레딧 발행량의 절반이 해당 계약에 따라 추가 발행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규모만 총 2억 300만 캐나다달러(약 2,000억원)에 해당합니다.
그린피스 캐나다지부는 실체가 없는 ‘유령 크레딧’이 발급됐다며 강도높게 지적했습니다. 해당 발행량만큼의 가치를 주정부가 무형의 보조금으로 지원한 것을 꼬집은 것입니다.
이러한 무형 보조금까지 고려할 시 “CCS 프로젝트 총비용의 93%는 대중들이 지불했다”는 것이 단체 측의 주장입니다.
단체 내 수석 에너지 전략가인 키스 스튜어트는 해당 계약이 불법은 아니지만 ‘숨겨진 보조금’에 해당한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린피스, CCS 탄소크레딧 감축효과 낮아 📉
한편, 단체는 쉘의 CCS 프로젝트 내 실질적인 탄소감축량이 포집량보다 상당히 낮단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시설 내 탄소포집 및 격리량을 비교분석한 결과입니다. 시설에서 탄소를 포집·압축·운송·저장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탄소배출이 나왔단 것이 단체 측의 설명입니다.
일례로 2022년 퀘스트 CCS 시설에서 0.971Mt(백만톤)의 탄소가 포집됐습니다. 허나 포집·압축·운송·저장에서 그의 24%가량인 0.231Mt이 배출됐습니다.
전체 기간(2015년~2022년) 평균을 비교할 시 실질 감축량은 26%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났습니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뭇매 맞아” CCS 활성화에 지원 불가결 항변한 쉘 🇨🇦
그린피스 캐나다지부는 쉘이 유령 탄소크레딧을 앨버타 탄소시장을 통해 판매해 수익을 얻었단 점을 비난했습니다.
해당 크레딧이 미국 셰브론이나 캐나다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시스 같은 에너지 기업들에게 판매됐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습니다.
반면, 쉘은 단체의 지적에 대해 추가로 얻은 탄소크레딧은 판매되지 않았다고 반론했습니다.
앨버타주 내 환경 규제를 충족에만 사용했단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즉, 캐나다의 탄소세를 말합니다. 캐나다는 2019년부터 전 지역에서 탄소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쉘은 애초 계약 내에 사용 방법에 제한이 있었다고 해명합니다. 사측에 따르면, “크레딧 발행사만이 배출 감축을 청구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정해져 있었단 것. 관련 내용은 이미 2011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고 쉘은 덧붙였습니다.
물론 이 경우도 탄소세를 추가 크레딧으로 상쇄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취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쉘은 정당한 계약에 근거해 사업을 추진했단 주장 나옵니다. CCS 활성화를 위해 과도기적으로는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불가결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루시 쇼 에너지·경제 칼럼니스트는 FT 기고를 통해 쉘은 “정부가 규칙을 정한 게임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무형 보조금 지급의 경우 예산 압박을 줄이기 위한 주정부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보고서 발표 이튿날(9일) 쉘은 보도자료를 통해 “중요한 탄소관리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혁신적인 자금 조달 아이디어가 과도한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 사업 독려 위한 크레딧 인센티브, 국내 유사 사례도 있어 🇰🇷
쉘의 계약을 살펴보면 해당 크레딧이 인센티브로 인정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제도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REC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의 발전량에 최대 2.5의 ‘가중치’를 곱해 발행됩니다. 발전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재생에너지의 수익성을 보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와 유사한 방식이 다양한 초기 사업에서 사업 활성화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령 크레딧’ 파장 속 CCS 효과성·경제성 논란 계속될 듯 💰
현재 쉘에 대한 앨버타 주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2023년을 기점으로 중단된 상황입니다.
2023년을 기점으로 탄소세가 50캐나다달러(약 5만원)를 넘어서며 계약의 보조금 중단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유령 크레딧 파장은 CCS 프로젝트의 경제성 논란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CCS 프로젝트의 대표 성공 사례가 비밀리의 추가 보조금까지 더해진 결과였단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와 별개로 해당 발표에 앞서 캐나다의 대형 CCS 프로젝트가 중단됐단 소식도 전해진 바 있습니다.
지난 2일 캐나다 에너지 기업 캐피털파워는 추진 중이었던 CCS 프로젝트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투자 규모만 24억 캐나다달러(약 2조 3,90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측은 기술적 타당성은 확인했지만 재정적 실행 가능 여부, 즉 경제성이 부족하단 결론을 내렸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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