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유럽의회 선거 결과, 예상대로 기후대응 축소를 앞세운 강경우파와 극우정당이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그린딜 추진에 따른 농민 반발 등으로 EU 내 정치적 성향이 우경화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회 내 ‘주류’로 불리는 친 유럽연합(EU) 성향의 중도 진영이 과반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극우정당 약진에 따라 EU 내 기후정책 방향성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유럽의회는 EU 내 법률 통과와 예산 승인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강경우파가 더 많은 영향력을 얻을수록 기후대응과 이민 등 EU의 주요 정책이 전환될 가능성이 큽니다.
EU는 지난 6일부터 9일(이하 현지시각)까지 나흘간 27개 회원국 3억 7,300만여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유럽의회 선거를 치렀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5년 임기의 유럽의회 의원 총 720명이 선출됩니다.
10대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 약진 속 중도우파 EPP 1위 지켜 🗳️
지난 10일 오후 4시 기준 공식 집계 결과에 의하면, 제1당은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국민당은 720석 중 186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제2당은 중도좌파인 사회민주진보동맹(S&D)에게 돌아갔습니다. 총 135석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3당은 중도 성향의 자유당그룹(리뉴유럽)이 79석으로 예상됩니다. 자유당그룹은 기존 102석에서 23석이 줄었습니다.
유럽국민당·사회민주진보동맹·자유당그룹 등 3개 정치그룹(교섭단체)은 지난 5년간 의회에서 중도 대연정을 구축해 협력해온 주류세력입니다.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기존 71석에서 53석으로 축소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극우성향의 유럽보수와개혁(ECR)은 기존 69석에서 73석으로 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극우성향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 역시 49석에서 58석으로 소폭 늘었습니다.
두 그룹이 연대하면 현재 제3당인 자유당그룹을 누를 수 있습니다.

“물밑협상 들어간 유럽의회 교섭단체 7곳”…EU 정치 지형 변화하나? 🏛️
유럽의회 선거체계는 독특합니다. 선거가 끝난 이후 물밑협상에 따라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U 회원국 유권자들은 자국 선거법에 따라 정당에 투표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27개 회원국은 인구에 비례해 할당받은 의석수 내에서 당선인들을 배분해 유럽의회 의원들을 보냅니다.
이후 정치성향·이념이 맞는 각국 정당 간 정치그룹을 형성해 활동하는 독특한 체제인 것. 선거 종료 후 각 정치그룹마다 전략적으로 새로운 정당을 영입하면서 일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아예 새로운 정치그룹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최소 7개 회원국에서 의원 23명이 참여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유럽의회의 정계 재편은 선거가 끝난 이후에 본격화된단 것입니다. 각 정치그룹은 물밑협상을 벌여 오는 7월 15일 전까지 소속정당과 의원 명부를 등록해야 합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각 정치그룹이 어떻게 연합할 것인가입니다.
이번 선거 결과 어떤 정치그룹도 과반(361석)에 못 미치는 만큼 정치그룹 간 연합을 구성하는 작업도 이 기간 병행됩니다.
현재 협상의 주도권은 잠정 예측 결과 186석을 얻어 1위가 유력한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이 쥐고 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소속된 곳입니다.
유럽의회 선거에 따라 차기 EU 집행위원회도 구성됩니다. 이에 유럽국민당의 최우선 과제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재연임입니다. 그가 차기 EU 집행위원장 후보로 추천된단 전제를 갖고 유럽의회 인준에 필요한 과반 찬성표를 확보하는 것.
투표 이튿날인 지난 11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선거 결과를 자축했습니다.
이어 그는 지난 5년간 협력해온 2·3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135석)과 중도 자유당그룹(79석)과 협력을 계속 유지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10대 유럽의회에서도 3개 정치그룹이 협력을 이어오면 과반을 뛰어넘는 400석을 확보할 수 있단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 강경우파나 극우와 손을 잡을 시 향후 5년간 입법 추진 과정에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 EU 기후대응 축소 가능성? “속도 조절으로 의견 모여” 🤔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향후 EU의 기후대응과 통상 정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르미다 판 리즈 선임연구원은 이미 유럽의회가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 기후정책 법안을 후퇴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또 EU의 기후중립 정책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극우정당이 EU의 기후대응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은 적단 것이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그랜섬연구소 내 오렐리앙 소세 연구원은 “여론조사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유럽에는 기후변화 부정론이 별로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되려 기후대응 정책을 축소할 경우 시민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단지, 기후대응에 대한 방법을 두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대체적으로 EU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쪽으로 의견이 모입니다. EU는 현재 기후대응과 탄소중립을 모두 새로운 기회로 보고 신(新)산업으로 육성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피터 비스 전(前) EU 집행위 기후정책 담당자는 블룸버그통신에 “현재 여러 정당별로 나눠진 의석을 볼 때 기후정책 폐기 안건에 압도적으로 과반 이상 표결을 행사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도 “(기후위기에) 유럽이 제때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질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 EU 그린딜 속도 조절
먼저 EU의 ‘그린딜’ 정책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2019년 EU 집행위가 내놓은 계획으로 2050년 기후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입니다.
폐기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것으로 평가됩니다. 스톡홀름환경연구소(SEI)의 리차드 클라인 박사는 과학저널 네이처에 “(새 의회가) 그린딜을 완전히 폐기하려는 욕구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그린딜이 법적인 틀이 이미 마련된 만큼 차기 EU집행위와 유럽의회 모두 이행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유럽국민당 등 주요 정당 모두 역내 산업 발전과 청정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청정산업을 보호한단 입장입니다. 물론 농민 반발 등 현실적 고려의 일환으로 그린딜 속도 조절도 예상된다고 브뤼셀지부는 덧붙였습니다.
🔺 2040 기후목표 축소 가능성
다만, EU가 발표한 ‘2040년 기후목표’가 축소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EU 집행위는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90%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해당 목표는 이번에 새로 구성된 유럽의회와 차기 EU 집행위가 상정해 처리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네이처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야심찬 기후목표가 합의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극우성향의 유럽보수와개혁 역시 기후대응 정책 후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치그룹 내 환경 정책을 담당하는 알렉산드로 의원(체코)는 “향후 5년간 기후정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당내 이탈표를 고려해 유럽국민당이 녹색당과의 연대도 고려하는 만큼 아직은 지켜봐야 한단 점을 염두해야 합니다.
🔺 2035년 신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재검토
이번 선거에서 1당 자리를 굳힌 유럽국민당은 2035년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정책을 재검토를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 등에 의하면, 만프레드 베버 유럽국민당 대표는 내연기관차 퇴출 방침에 대해 “실수”라고 직접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나, 해당 정책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공들여 성사시켜 추진한 만큼 현실 가능성은 지켜봐야 합니다.
🔻 EU 기후연구 축소 가능성
새 유럽의회가 기후과학 등 주요 연구자금을 축소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센터 라이프(LIFE)의 마르고 아고스티노 책임자는 다음 의회가 연구 자금 지원을 계속 우선시 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라이프는 EU 집행위 산하에 있는 기후환경 자금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그는 “유럽의회는 연구와 혁신을 매우 지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EU가 역내 산업 보호를 우선시하려는 정책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무협 브뤼셀지부에 의하면, 유럽의회는 진영에 상관없이 역내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위험제거)을 지지합니다.
예컨대 EU 집행위는 최근 역외 보조금으로 인한 역내 공정한 시장경쟁이 저해되는 상황을 막고자 중국산 태양광과 전기자동차 기업의 보조금 수령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 EU 기후통상 법안 축소 가능성
이 때문에 EU가 추진하던 주요 기후통상 법안 상당수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EU가 추진하던 주요 기후통상 법안 상당수가 선거 직전에 법제화를 모두 끝마친 상황입니다.
‘기업 공급망 실사지침(CSDDD)’ 등 상당수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물론 시행 일정이 일부 유예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부소장)는 그리니엄에 “이미 법제화가 된 법들은 그대로 갈 것으로 본다”면서도 “벌칙 규정이나 개별법으로 정하게 한 내용은 각국 정치상황에 따라 약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CSDDD 등 법 상당수가 기업이나 농민 반발의 여파로 기존보다 상당하게 약화된 상태로 확정된 점을 염두해야 한다고 지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 모아보기]
①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 약진…EU 기후정책 향방은?
② 프랑스 조기총선·독일 집권당 참패 등 유럽의회 선거에 EU 권력지형 급변 예고
③ EU 그린딜 주도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연임 성공하나?
④ 유럽의회 우경화…“자국우선주의에도 韓 기업 호재 가능성 대두된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