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미국 투자사 라이트스피드벤처스의 폴 머피 파트너가 최근 본인의 엑스(구 트위터)에 남긴 말입니다. 라이트스피드벤처스는 2022년부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온 벤처캐피털(VC)입니다.
그는 “2년 전, 파트너들에게 세계적인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열정적으로 선언했다”며 “안타깝게도 저는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머피 파트너는 탄소중립을 위한 각국의 규제 압박이 줄어드는 상황이란 점을 짚었습니다. 여기에 올해 주요국에서 선거가 치러진 후 기후테크 산업 내 정부 지원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재당선으로 인해 기후대응이 전반적으로 후퇴할 것이란 점을 언급했습니다. 호주·프랑스의 경우 재생에너지 설비 인허가를 승인받기 위해 관료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인도는 철강 생산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규모를 늘린다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머피 파트너는 “정치·경제적 현실의 초점이 성장으로 옮겨 나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임시방편(소위 기후적응)에 투자하여 균열을 메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기후에 도움이 되는 기술의 종말은 아니다”라며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 제트스트림의 토미 리프 파트너는 이보다 더 짧고 강렬한 문구를 올렸습니다. “기후테크 2019~2024년. RIP(명복을 빌다).”
노스볼트 파산 계기로 기후테크 산업 흔들림 가속 🌍
기후테크 산업이 어느 때보다 힘들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둘러싼 정치적 지원이 이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자금조달 역시도 전반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23일 시장조사기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23년 4분기~2024년 3분기) 기후테크 산업 내 자금조달 규모는 560억 달러(약 80조 원)에 그쳤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790억 달러(약 112조 원)와 비교해 29%나 감소한 겁니다.
같은기간 거래건수 역시 일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유럽 최대 배터리 기업으로 꼽힌 노스볼트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폭스바겐그룹·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150억 달러(약 21조 원)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노스볼트 이외에도 전기자동차 기업 피스커 같은 유명 기후테크 기업들이 연달아 폐업 또는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기술개발에 오랜 시간과 자본이 필요했으나, 정작 수익화에는 실패했습니다.
투자업계서 기후테크 ‘리브랜딩’ 필요성 ↑ 🚨
이와 관련해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산하 스타트업 전문매체 시프티드는 최근 업계에서 ‘기후테크’를 리브랜딩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스웨덴 벤처캐피털 페일블루닷이 대표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이곳 주로 초기 단계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지원을 해왔습니다. 2021년 기후테크 펀드를 만들어 최소 35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회사 공동창립자인 함푸스 제이콥슨은 최근 기후테크를 다시 생각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후테크 산업에 투자를 멈추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는 “투자 전략이 변하지 않았다”면서도 “많은 이에게 기후테크란 라벨이 ‘대기 중에서 탄소를 빨아들여 기후변화를 역전하는 것’ 또는 ‘기존 상품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기반시설)를 구축하는 것’과 동의어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과 비교해 기후테크 산업 자체가 더 복잡해진 점도 있습니다. 기후테크는 ▲에너지 ▲산업 ▲수송 ▲농식품 등 다방면에 걸쳐 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의 등장은 기후테크 산업을 이전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기후테크 펀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탄소제거 전문 펀드, 인프라 구축 펀드 등 기후테크 펀드 수는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제이콥슨 창립자는 “이들 모두 기후테크 펀드”라면서도 “매우 매우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이콥슨 창립자는 “(페일블루닷은) 모빌리티나 핀테크, 기업간거래(B2B),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에도 투자했다”며 “이들 역시 모두 기후문제의 일부로 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후테크 산업, 선의·이타주의에 지나치게 의존” 💸
독일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인 엑스탄티아캐피털의 투자자인 세바스찬 하이트만 역시 기후테크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기후테크 기업이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성과와 수익성을 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테크라는 현재의 라벨이 특정 산업에서 최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관심을 돌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하이트만 투자자는 친환경 시멘트 기업을 예시로 소개했습니다. 이 기업의 친환경·저탄소 시멘트는 건설 업계에서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머피 파트너 역시 비슷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기후테크 산업이) 선의와 이타주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며 “그 영향을 경쟁 우위의 원동력이 아닌 도덕적 명령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기후테크 업계의 가장 큰 리스크가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각국 정부의 감축목표와 에너지·환경 정책이 시장의 수요를 창출합니다. 이 규제와 정책의 방향에 따라 기후테크 시장 역시 달라집니다.
기후테크 기업들이 이같은 정책 리스크를 타파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머피 파트너의 말입니다.
리브랜딩 필요…클린테크 → 기후테크 → 성장 기술? 🤔
기후테크 산업은 일찍이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5~2015년 무렵 ‘클린테크 1.0’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수많은 투자사가 청정기술 업체에 투자했으나 이중 90% 이상이 폐업했습니다. 기술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확장될 준비가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리브랜딩을 거쳐 나온 단어가 기후테크입니다. 업계에서는 또다른 말로 클린테크 2.0 시대로 불립니다. 기후대응의 필요성과 함께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대두된 시대를 지나가며 나온 용어입니다.
기후대응의 실질적인 이행의 시기로 접어든 시점에서는 새로운 라벨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머피 파트너는 이제는 ‘성장 기술(Growth Tech)’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성장 자체를 거부할 나라나 기업은 없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단순히 성장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청정기술이 성장동력으로 자리 매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속가능성’을 우위에 둬야 한다는 겁니다. 기후문제와 함께 생물다양성 손실·환경문제들 역시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머피 파트너는 “기후재난의 빈도와 심각성이 심화됨에 따라 성장 기술 기업들은 구조적 후풍에 힘입어 번창할 것”이라며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혁신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이트만 투자자는 아예 생성AI인 챗GPT에 새로운 라벨링을 지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챗GPT는 ‘동적 회복력(Dynamic Resilience)’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이전보다 더 좋고 저렴한 해결책을 더 빠른 방식으로 대량 채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스타트업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