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테슬라를 꿈꾸던 미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피스커가 자금난에 의해 끝내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피스커는 덴마크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헨릭 피스커가 2016년에 설립한 곳입니다.
피스커는 지난 2020년 전기차 수요 증가 속에 기업공개(IPO)에 성공했으나, 전기차 수요 둔화와 고금리 문제 등 여러 악재를 겪었습니다.
이후 인력 15% 정리해고에 나서는 등 자구책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파산설이 나돌았습니다. 당장 지난 3월 말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도 결정됩니다. 주가가 연초 대비 95% 가까이 폭락했기 때문입니다.
피스커는 파산법 11장에 따라 미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신청했습니다. 파산법 11장은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이 정부 감독하에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을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같은날 피스커 공식 대변인 성명을 통해 “거시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회사를 위해서는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회사 측은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채무 해결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해 금융사들과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4일 사측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확인한 결과, 피스커 자산은 5억~10억 달러(약 6,955억~1조 3,910억원) 사이에 있습니다. 부채는 1억~5억 달러(약 1,390억~6,955억원) 정도라고 사측은 서류를 통해 밝혔습니다. 채권자 수는 200~999명으로 추정됩니다.
2023년 전기차 출시한 피스커, 차량 결함·투자 결렬 등 악재 거듭 🤔
피스커는 자체 공장을 설립하는 대신 생산을 아웃소싱(외부생산)하는 방식을 택해 왔습니다.
회사는 오스트리아 자동차 제조사 마그나슈타이어에 그간 차량 조립을 맡겼습니다. 생산시설에 투입할 자본은 줄이고 전기차 생산을 더 빠르게 앞당기겠다는 구상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스커가 지난해 내놓은 첫 전기차 모델 ‘오션’은 시장에서 냉담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3년 피스커가 예측한 오션 생산량은 1만 3,000대였습니다. 이중 실제로 고객에게 인도된 차량 수는 4,900여대에 그쳤습니다.
차량 출시 전 소프트웨어 결함이 발견됐을뿐더러, 주행 중 차량 시동 꺼짐과 잠금 오작동 등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피스커는 당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으로부터 차량 결함으로 2차례 조사받습니다.
여기에 피스커는 전기차 저가 경쟁과 미국발 고금리 환경으로 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측은 당초 3월 한 대출 기관으로부터 1억 5,000만 달러(약 2,086억원)의 자금을 차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허나, 이는 특정 자동차 업체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는 조건이 전제였습니다.
해당 투자 논의가 결렬돼 자금 차입도 없던 일이 됩니다. 로이터통신은 이 업체를 닛산자동차라고 지목한 바 있습니다. 자금난에 탓에 피스커는 일부 공장 가동도 멈췄습니다.
여기에 지난 5월 미 도로교통안전국이 6,831대의 오션 차량에 안전 문제와 관련해 예비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같은달 오스트리아에 있던 피스커 지부 역시 파산 절차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의하면, 사측은 회계직원 부족으로 규제기관에 올해 1분기 재무제표를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주요 자동차 전문매체들 또한 피스커를 가리켜 ‘최악의 전기차’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때문에 피스커가 사실상 투자 가능성이 더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피스커 CEO 파산보호 신청서 ‘기시감’ 느껴지는 까닭 🚗
미국에서 전기차 스타트업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은 작년 7월 로즈타운모터스에 이어 피스커가 2번째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피스커가 파산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 상황이 비단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와 고금리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피스커 CEO 입장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실패입니다. 사실 그는 2007년 ‘피스커 오토모티브’란 전기차 스타트업을 창업한 바 있습니다. 이 기업 역시 2013년 파산법 11장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이후 중국 완샹그룹이 이 기업의 자산을 인수해 사명을 바꿔 운영 중입니다.
피스커 CEO이 창업한 두 전기차 스타트업의 파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피스커 CEO 본인이 전기차 업계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하며 투자금을 모았던 것.
둘째, 두 스타트업 모두 안전성을 위협할 정도의 품질 문제에 휘말렸습니다.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생산한 최초의 배터리는 2011년 안전과 화제 위험 문제로 리콜 조치됐습니다.
마지막 셋째, 두 스타트업 모두 회사 경영 방향과 우선순위가 여러 번 바뀌었단 점입니다.
“전기차 시장 둔화? 경영진 문제가 더 커”…전현직 직원 폭로 잇따라 🚘
이와 관련해 미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두 스타트업에서 일한 전현직 직원 27명을 인터뷰해 피스커 경영진의 경영 방식을 상세히 꼬집었습니다.
두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전(前) 부사장은 “피스커 CEO가 본인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면서 “그러나 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회고했습니다.
피스커 CEO와 경영진들이 비용 절감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동차의 기본적인 안전체계가 무너졌단 폭로도 잇따라 나왔습니다. 미 도로교통안전국을 통해 밝혀진 차량 결함 및 안전 문제 상당수를 내부 경영진은 이미 알고 있었단 것.
이에 대해 한 전직 직원은 “회사가 시장에 가능한 빨리 전기차를 출시하는 일에만 중점을 뒀다”며 “(문제가 발생해도)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컨설팅 기업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의 샘 아부엘사미드 수석연구원 역시 CNBC에 피스커 고위경영진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기타 굽타-피스커를 저격했습니다. 그는 피스커 CEO의 아내입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그가 비용 절감에만 몰두했단 것이 전현직 직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아부엘사미드 수석연구원은 “피스커의 경영진이 무능하다는 것을 과소평가했다”고 꼬집었습니다.
피스커 대변인은 두 기업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피스커 소식 직후 美 전기차 기업 주식 일제히 하락…다음은 니콜라? 📉
한편, 관건은 이번 여파가 다른 전기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가입니다.
피스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나온 다음날(18일) 뉴욕증시에서 테슬라(1.38%)와 루시드(1.53%) 그리고 니콜라(2.08%) 등 미국 주요 전기차 업체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유일하게 리비안만 전날 대비 0.55% 상승했습니다.
테슬라나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거대 완성차 업체들은 설계부터 제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들조차도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피스커 같은 중소형 업체들은 외부 제조업체와 협력하는 만큼 타격이 더 큰 상황입니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저가의 전기차를 앞다퉈 출시하자 가격 경쟁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피스커 다음으로 전기트럭 제조업체인 니콜라가 파산보호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니콜라는 2014년 설립된 기업입니다. 2020년 6월 나스닥에 상장했습니다.
그런데 니콜라는 이미 나스닥증권거래소로부터 작년 5월 올해 1월, 2차례 상장폐지 가능성을 통보받았습니다. 최소입찰가(1달러 유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유입니다.
회사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작년 10월 니콜라 창업자인 트레버 밀턴은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앞세워 투자자를 속인 혐의로 미국 법원에서 사기죄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상장폐기 위기가 계속 거론되자 최근 니콜라는 역 주식 액면 분할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주식을 쪼개는 것이 아니라 합하는 것입니다. 통상 주가를 1달러(약 1,300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꼼수로 여겨집니다.
발표 직후 지난 20일 뉴욕증시에서 회사 주가는 전일 대비 31.46% 폭락한 33센트를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