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주도 주정부 11곳이 세계 3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반대 운동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양새입니다.
텍사스주 등 11개주 법무장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텍사스주 동부연방지방법원에 3개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이유는 기후대응을 이유로 3개 자산운용사가 석탄생산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해 석탄 생산을 제한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지역 전기요금이 급등해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원고 측은 주장했습니다.
이번 소송을 시작으로 ESG 기조에 대한 공화당과 보수 측의 공격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냔 분석이 나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소송은 공화당 주들이 ‘깨어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에 대한 전쟁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논평했습니다. 이는 사회·정치이슈에 적극적 의견을 내고 그에 따른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경영 방식을 말합니다.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은 이전부터 ESG 투자와 경영 방식을 ‘깨어있는 척’하는 자본주의라며 비난해 왔습니다.
11개주 법무장관들 “3대 운용사, 투자 카르텔 형성” 🤔
소송에는 ①텍사스 ②앨라배마 ③아칸소 ④인디애나 ⑤아이오와 ⑥캔자스 ⑦미주리 ⑧몬태나 ⑨네브래스카 ⑩웨스트버지니아 ⑪와이오밍 등 11개주가 공동으로 참여했습니다.
모두 공화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곳입니다. 특히, 다른 곳보다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가 높은 지역들입니다.
원고 측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3개 자산운용사가 투자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지역 석탄업체가 감산하도록 영향력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석탄 기업들이 2030년까지 석탄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을 50% 이상 감축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입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검찰총장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텍사스 법무장관실은 피고 측이 석탄업체의 주식을 대량 보유해 ‘투자 카르텔’을 운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고 측은 석탄업체들의 생산량이 일제히 감소하면서 시장 경쟁이 둔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로 인해 석탄 가격이 상승했고 결국 소비자에게도 손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원고 측은 소장에서 “미국인의 전기요금은 자산관리사의 지시가 아니라 시장 경쟁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아치리소시스 생산감축에 4년간 이익증가율 800% ↑ 💰
자산운용사가 압박을 가한 것으로 언급된 곳은 9개 주요 석탄기업입니다.
9곳을 모두 합치면 미국 전체 석탄생산량의 46%가량을 차지합니다. 그중에는 피바디에너지·아치리소시스 등 미국 최대 석탄업체도 포함됐습니다.
블랙록의 경우 9개 석탄업체에 보유한 주식은 올해 6월 기준, 최소 4.09%에서 최대 15.56%에 달합니다. 뱅가드는 3.01~12.81%, 스테이트스트리트는 1.2~6.37%를 보유했습니다.
아치리소시스는 이들 자산운영사의 합산 지분이 최대 34.19%에 이릅니다.
원고 측은 자산운용사들이 보유 지분의 영향력을 사용해 지난 4년간(2019~2022년) 기업들의 석탄 생산감축을 공모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사회 투표 등을 활용해 석탄 생산량을 줄이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생산감축에 따른 가격상승으로 “카르텔 수준의 이익이 발생했다”고 원고 측은 주장했습니다.
아치리소시스의 경우 해당 기간 생산량이 3,470만 톤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같은기간 매출 증가액은 3억 580만 달러(약 4,270억 원), 이익 증가액은 15억 9,300만 달러(약 2조 2,240억 원)에 이릅니다. 2019년 대비 2022년 이익 증가율은 무려 853.9%에 달했습니다.
원고 측은 독점 금지에 대한 연방법인 ‘셔먼독점금지법’과 반경쟁 행위를 금지하는 ‘클레이튼법’을 위반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클레이튼법은 경쟁을 저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주식을 다량 보유하는 행위를 규제합니다. 가격 조작과 사기적 거래 관행에 대한 주(州)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CA100+·NZAM 등 탄소중립 이니셔티브 저격 🏛️
지분을 보유했다는 것만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원고 측은 이들 자산운용사들이 ‘기후행동100+(CA100+)’과 ‘넷제로자산관리자그룹(NZAM)’ 등의 이니셔티브 참여를 통해 조직적 행동을 벌인 점을 꼬집었습니다.
CA100+는 2017년 금융사들이 투자 대상 기업의 기후대응 노력 독려를 목표로 설립했습니다. 2020년 출범한 NZAM 또한 탄소중립에 부합하는 투자를 지원하고 기업들의 배출량 감축을 독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개 자산운용사 모두 NZAM에 가입한 이력이 있습니다. CA100+에는 블랙록과 스테이스트리트만 참여했습니다.
원고는 소장에 “CA100+ 회원들은 (탄소중립을) 유도하기 위해 함께 일하기로 공개적으로 약속했다”며 “이는 피고 측이 석탄 생산감축을 유도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블랙록 “근거 없고 비상식적 주장” ⚖️
소송 직후 이튿날(11월 28일) 블랙록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즉각 반박했습니다. “기업에 해를 끼칠 목적으로 돈을 투자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상식에 어긋난다”고 사측은 반박했습니다.
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는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블랙록은 이미 비슷한 압박으로 인해 올해 2월 CA100+’에서 미국 본사가 탈퇴한 상태입니다. 그 대신 국제 부서가 참여하며 참여 비중은 이전보다 줄었습니다. 같은 시기 스테이스트리트도 CA100+ 참여를 종료했습니다.
NZAM의 경우 블랙록·스테이트스트리트는 가입을 유지 중입니다. 뱅가드는 공화당 측 공격이 거셌던 2022년 일찍이 탈퇴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소장에서도 언급됐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및 미래의 위협이 무효화되지는 않았다”고 원고 측은 주장했습니다.
한편, 논란이 된 시기(2019년~2022년)의 석탄 가격 상승이 자산운용사의 개입 때문만으로 보긴 어렵단 분석도 나옵니다. 최근의 가격 상승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발생했단 시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