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격 상승과 경기침체 등 여러 악재로 인해 대형 수직농장 기업들이 작년부터 문을 닫고 있습니다. 미국 에어로팜과 앱하베스트가 대표적입니다. 2곳은 한때 미국의 3대 수직농장 기업으로 평가받았으나 불황으로 인해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나머지 수직농장 기업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미국 대형 수직농장 기업 바워리파밍의 이야기입니다.
12일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바워리파밍은 지난달 10월 말 미국 법원에 파산법 제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챕터11은 법원 감독 아래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해 회생을 모색하는 제도입니다.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하기는 하나 바워리파밍은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남은 직원 187명은 모두 즉시 정리해고했습니다. 사측이 운영하던 주요 수직농장 시설 역시 모두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2015년 설립된 바워리파밍은 뉴욕 등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수직농장 시설을 운영했습니다.
설립 후 모은 투자금 규모만 6억 2,590만 달러(약 8,765억 원)에 달합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 투자사를 비롯해 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 같은 유명인들이 투자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바워리파밍은 유명세를 모았습니다. 인공지능(AI) 서비스 ‘빅스비’를 개발해 삼성전자 부사장을 거친 한국인 이인종 씨가 바워리파밍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격 상승·소비심리 위축에 고전하던 바워리파밍 🥬
바워리파밍은 인공지능(AI) 기술로 수직농장 내 빛과 온도 그리고 습도를 모두 조절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왔습니다. 이를 통해 물소비량만 기존 농업과 비교해 최대 95%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자체 연구개발(R&D) 센터도 설립한 덕에 기업가치가 한때 23억 달러(약 3조 2,2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수직농장 스타트업들 중 역사상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겁니다.
사측은 뉴저지·메릴랜드·펜실베이니아주를 중심으로 수직농장 시설을 운영했습니다. 상추·로메일·케일 등 샐러드용 채소가 주로 재배됐습니다. 위 시설들은 현재 모두 폐쇄됐습니다.
바워리파밍 역시 수직농장 업계의 불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에너지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측은 2023년 1분기 개장 예정이던 조지아·텍사스주 수직농장 개장을 연기했습니다. 또 같은해 5월과 10월 2차례 정리해고도 단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1월 1차 시리즈 D를 통해 9,380만 달러(약 1,310억 원) 상당의 자금을 조달하며 숨통이 트이게 됩니다.
값비싼 ‘코셔’ 샐러드 재배로 눈돌려…“몰락 시작점” 🥦
그러나 해당 자금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는 것이 전직 직원들의 말입니다.
바워리파밍 시설에서 생산된 채소들은 가격이 여전히 비쌌습니다.
일례로 유기농 식료품점 홀푸드마켓에서 판매되는 바워리파밍에 샐러드 채소는 파운드당 16달러(약 2만 2,400원)에 이르렀습니다. 홀푸드마켓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샐러드가 파운드당 6달러(약 8,4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비싼 축에 속했습니다.
피치북은 “바워리파밍의 경쟁자인 고담그린스의 수직농장 시설에서 나온 샐러드가 파운드당 2달러(약 2,800원)나 더 저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더 비싼 바워리파밍의 제품을 고수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에 사측은 비싼 식재료에 기꺼이 지불하는 소비자층을 공략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코셔(Kosher)’가 선택됐습니다. 코셔는 유대교 율법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인증받은 식품을 말합니다. 채소류의 경우 화학물질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폐쇄 환경에 관리가 까다롭지만 수요가 높다는 점에서 최근 수직농장 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바워리파밍의 전(前) 직원들은 코셔용 샐러드 재배가 회사의 몰락을 불러왔다고 토로했습니다.
곰팡이균에 무너진 바워리파밍…계약 취소 연이어 🦠
폐쇄형 시설은 장단점이 명확합니다. 장점은 빛과 물 등을 조절해 농작물 수확량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단점은 에너지가격이 많이 들뿐더러, 병원균 침입 시 빠르게 번질 수 있다는 겁니다.
바워리파밍의 몰락은 곰팡이균에서 시작됐습니다. 곰팡이균인 ‘피토프토라(Phytophthora)’가 시설 전반으로 확산한 겁니다. 이 곰팡이균은 식물의 뿌리와 줄기를 썩게 만듭니다.
바워리파밍은 시설을 소독하거나 별도 시설을 구축하는 등 곰팡이균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같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감염 확산을 저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 직원들의 설명입니다.
피치북의 애그테크 전문가인 알렉스 프레드릭은 수직농장 내 관개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는 “수직농장 내 관개 시스템이 통합돼 있다”며 “이 경우 곰팡이균이 빠르게 확산하기 쉽고 제거 역시 불가능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곰팡이균에 감염된 농산물들은 모두 폐기됐습니다.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식료품점들과 맺은 대규모 유통 계약도 맞추지 못했다고 전직 직원들은 밝혔습니다.
그 결과, 올해초 식료품점인 알버트슨스이 바워리파밍과 맺은 계약을 중단했다는 사실이 전해졌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홀푸드마켓 역시 바워리파밍과의 계약을 중단했습니다.
이같은 계약 중단이 큰 타격이었다는 것이 직원들의 말입니다. 공급업체들이 계약을 끊기 시작하자 바워리파밍 직원들 역시 회사가 경영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회복을 포기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 등 수익화 없이 생존 어려워” 🍓
사측은 현재까지 별도 입장문을 내지 않은 상황입니다.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어빙 페인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링크드인 등을 확인한 결과, 회사 CTO인 이인종 씨 역시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정작 미국 업계에서는 바워리파밍의 파산보호 신청이 놀랍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초기 청정기술 전문 투자사인 에코테크캐피털의 아담 버그만 파트너는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바워리파밍이 파산을 신청한 마지막 수직농장 기업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수익화 모델 구축에 성공하지 않는 이상 수직농장 업계의 파산은 계속될 것이란 것이 그의 전망입니다. 그는 향후 수직농장 업계가 커피 원두나 딸기류 같은 고부가가치 작물을 생산하지 않는 이상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수직농장 업계로의 신규 투자 규모는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점이었던 2021년 수직농장 업계는 벤처캐피털(VC)로부터 29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는 3억 2,900만 달러(약 4,615억 원)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