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정경쟁법(CCA)이 2025년부터 시행될 경우 국내 산업계가 향후 10년간 최대 2조 7,000억 원 규모의 비용을 부담할 것이란 주장이 나왔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미국 청정경쟁법의 국내 파급효과 및 정책 시사점’ 보고서를 지난 28일 발표했습니다.
청정경쟁법은 철강·알루미늄·유리 등 미국으로 들어오는 12개 수입품에 탄소배출량 1톤당 55달러(약 7만 5,700원)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한다는 구상입니다.
2022년 6월 처음 발의됐으나 법안 통과는 불발됐고, 이후 작년 12월 미 상원에 다시 재발의됐습니다. 법안은 아직 의회에 계류 중입니다.
법안이 재발의되는 기간 달라진 점도 있습니다.
청정경쟁법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로부터 초당적 지지를 받는 법안으로 바뀌었단 겁니다. 오는 11월 5일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민주당의 ‘친환경 전환’과 공화당의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장벽 건설’이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오히려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법안이 도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경협 “한국, 주요국 대비 탄소집약도 개선속도 낮아” 🏭
청정경쟁법이 시행될 경우 미국과 원산지 간의 탄소집약도 격차이에 탄소가격을 곱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됩니다. 이때 탄소가격은 매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인상됩니다.
가령 한국산 원자재를 구입한 미국 수입업자는 청정경쟁법에 따라 탄소세를 납부해야 합니다. 수입업자는 한국 기업에게 이 비용을 전가합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탄소세는 26개 에너지 집약 산업군에서 생산한 원자재에 최초 적용한 후 2027년 완제품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한경협은 한국의 탄소집약도 개선속도가 주요국과 비교해 저조한 수준이란 점을 지적했습니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한국의 탄소집약도 개선속도는 2.4%입니다. 이는 일본(2.7%)이나 미국(4.9%), 독일(5.5%) 등 주요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준입니다.
특히, 청정경쟁법의 탄소세 산식에 활용되는 국가 단위 탄소집약도는 2020년 기준 한국이 0.14입니다. 이는 미국 0.11에 비해 1.2배 뒤처진 겁니다.
미국이 청정경쟁법을 시행할 경우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한경협의 경고입니다.
청정경쟁법 시행? 한국 기업 최대 2.7조원 부담 💸
한경협은 청정경쟁법이 2025년부터 시행된다는 가정 아래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분석 결과, 청정경쟁법 시행으로 인해 2034년까지 한국 기업이 부담해야 할 탄소세 비용은 최대 2조 7,000억 원으로 계산됐습니다. 적용 범위에 따라서는 원자재에 1조 8,000억 원, 완제품에 9,000억 원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업종별로는 석유·석탄제품이 1조 1,000억 원, 화학제조업이 6,000억 원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자동차 역시 평균 1,481억 원 규모의 탄소세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한경협은 한국의 대미 수출액이 2016년 이후 상승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2023년 기준 총수출액의 18.3%를 차지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완제품에 대한 탄소세가 부과되는 2027년 계획안이 시행될 경우 대미 수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한경협, 무탄소에너지 전환 통한 탄소집약도 개선 필요 ⚡
이에 대비하고자 한경협은 몇 가지 제언을 내놓았습니다.
첫째, 발전 부문의 무탄소에너지 전환을 통한 탄소집약도 개선이 언급됐습니다. 재생에너지나 원자력발전 설비를 빠르게 설치해야 한단 겁니다.
한경협은 “발전 부문의 무탄소에너지 전환은 산업·건물·수송 등 다른 부문의 주요 탈탄소화 전략인 ‘전기화’의 선결조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송배전망 투자를 확대하고, 국가 계획 내 전기화에 따른 전력수요를 충분히 반영하는 등 정책 마련 역시 고려돼야 합니다.
실제로 국가 단위 탄소집약도 개선율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 결과, 연간 탄소집약도 1% 개선 시 탄소세 비용이 평균 약 88억 원(약 4.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둘째, 데이터 신뢰성 확보와 국제협의체에서 정부의 주도적 역할 수행의 필요성이 언급됐습니다.
청정경쟁법은 원산지의 데이터 신뢰성에 따라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해 탄소세를 산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법안 통과 시 수정될 여지는 있으나, 당장은 업종 단위 탄소저감 성과가 비용경감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한경협의 설명입니다.
이에 협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탄소감축포럼(IFCMA)’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IFCMA는 기후정책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분석하고 탄소집약도를 연구합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청정경쟁법 등 주요국의 탄소세 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가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업종별 탄소집약도 개선효과가 탄소세 비용절감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 협회의 주장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대미협상력 확보입니다.
현재 법안에는 원산지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명시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할 경우 탄소세 일부 면제 규정이 명시돼 있습니다.
한경협은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내 유상할당 비율 상향 추이와 탄소가격 현황 등 탄소가격제 운영 현황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협상력을 사전에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