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업들은 (친환경 플라스틱) 기술이 완성됐는데도 비용 문제로 가동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정광하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지난 25일 ‘제18회 ESG ON 세미나’에서 플라스틱 업계가 이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세미나는 ‘플라스틱 전 생애주기 단계의 국제 환경규제’를 주제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온라인으로 주최했습니다.
세미나는 오는 11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이하 5차 회의)’를 앞두고 열렸습니다. 5차 회의에서는 ▲1차 플라스틱 생산감축 ▲일회용 플라스틱 퇴출 ▲재원 마련 등 다양한 쟁점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이에 행사에서는 한국 플라스틱 산업의 현황과 대응 과제가 논의됐습니다.
플라스틱 공급과잉, 연속 11개월 적자 기업까지 📉
한국은 중국·미국·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생산국입니다. 2023년 5대 범용 플라스틱 생산량 기준 1만 4,513톤에 달합니다. 같은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약 5.2%를 차지합니다.
정 본부장은 한국 플라스틱 산업이 공급과잉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2020년대 이후 중국 플라스틱 생산시설 증설로 인해 공급과잉이 발생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의 에틸렌·프로필렌 신규 시설이 유럽·한국·일본을 합친 용량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석유화학의 주요 원료입니다.
폴리프로필렌의 경우, 중국석유화학공업연합회는 2025년까지 총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32% 초과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둘째, 미국·중동에서 저렴한 원료인 에탄올 기반의 플라스틱 생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에틸렌은 석유 부산물인 납사(나프타)를 원료로 생산됐습니다. 이 가운데 최근 미국은 셰일가스 내 포함된 에탄올을 원료로 에탄올 생산에 뛰어들었습니다. 에탄올 기반 에틸렌 생산 비용은 납사 대비 절반에 불과합니다.
정 본부장은 이로 인해 주로 납사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국내 대형 석유화학업체 여천NCC의 경우 장기간 적자에 처한 상태입니다. 여천NCC는 국내 에틸렌 생산량 18%를 차지하는 대형 석유화학 업체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2021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11분기 연속 적자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환경·탄소규제 강화 “플라스틱 감산 불가피” 🥤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와는 별개로 플라스틱에 대한 각국의 국제 규제는 강화되고 있습니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현재 주목해야 할 플라스틱 규제 동향으로 4가지를 소개했습니다.
①플라스틱 국제협약 ②유럽연합(EU)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 ③EU ‘포장·포장재 폐기물 지침 강화 개정안(PPWR)’ ④미국 ‘플라스틱 사용량 오염 대응 전략’ 등입니다.
특히, 그는 ESPR 및 PPWR 등 EU의 순환경제 정책이 국제사회 무역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예컨대 ESPR에 따라 EU 역내 판매 제품은 2027년부터 디지털제품여권 부착이 의무화될 예정입니다. 이는 한국 등 역외 기업에게도 적용됩니다.
동시에 플라스틱 산업계는 탄소규제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플라스틱은 대표적인 탄소집약적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3.4%가 플라스틱 전주기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 본부장은 석유화학 기업들이 기후공시 등 탄소규제를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주요국 탄소규제 정책에서도 플라스틱이 부과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8년경 대상 품목에 플라스틱이 포함될 전망입니다.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인 미국 ‘청정경쟁법(CCA)’의 경우, 도입 초기부터 부과 대상에 플라스틱을 포함한다는 방침입니다.
장 교수는 국제적 흐름에 따라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자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따라서 “국제 규제 강화로 한국 정부도 플라스틱 감산 수준에 대한 (계획)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습니다. 정부가 과학적 근거에 따라 목표 연도와 플라스틱 감산량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비용 ‘2배 이상’…정부 지원 절실 💰
이처럼 플라스틱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과잉과 국제 규제 강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정 본부장은 이에 기업들이 화학적 재활용·바이오 플라스틱 등 플라스틱 대체 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기존 석유계 플라스틱 생산비용 대비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과 바이오 플라스틱은 최대 2배 이상 높습니다. 기계적 재활용은 최대 1.2배 수준으로 경제성이 확보 가능합니다. 물론 기계적 재활용에 필요한 원료 수급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 본부장은 많은 기업이 화학적 재활용 중심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으나 사업이 지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원료 수급이 어려울뿐더러 세계적으로 석유화학 경기가 악화되며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열분해유 연구개발(R&D) 법인 올뉴원이 청산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SK그룹의 화학·소재 계열사 SKC가 2020년 울산 공장에 파일럿(시범) 설비 구축을 목표로 설립한 곳입니다. 당초 2023년까지 울산 공장에 상업화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측은 지난 10일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사업 청산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SK지오센트릭이 추진 중인 화학적 재활용 클러스터(종합단지) ‘울산ARC’ 또한 사업 재검토에 들어간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소식은 지난 5월 울산 현지매체 보도를 통해 처음 전해졌습니다.
당초 울산 ARC는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모두 갖춘 세계 최대 시설을 표방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이오 플라스틱 또한 낮은 경제성과 수요 부족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입니다. 이에 정 본부장은 “시장에 내버려두면 (친환경 플라스틱) 활성화가 어렵다”며 “정부의 산업 활성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