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을 줄이는 조처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과일과 채소에 사용되는 비닐, 호텔 내 어메니티 등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형태는 오는 2030년부터 사용이 금지됩니다.
EU 이사회 의장단과 유럽의회 대표단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포장·포장재 폐기물 지침 강화 개정안(PPWR·이하 포장재 규제안)’에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각) 잠정 합의했습니다.
앞서 2022년 11월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포장재 규제안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규제안의 핵심은 1994년부터 EU가 시행해온 포장재 규제를 ‘지침’에서 ‘규정’으로 강화한 것입니다. 지침은 회원국별로 국내법 전환이 필요한 반면, 규정은 국내법 전환 없이 EU 27개 모든 회원국에 바로 적용됩니다.
15일 그리니엄이 포장재 규제안을 살펴본 결과, 이 법안은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포장폐기물을 5%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감축량은 2035까지 10%, 2040년까지 15%로 높아집니다.
당초 초안보다는 감축목표가 완화했단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당 규제안은 EU 이사회 상주대표회의와 유럽의회 산하 환경위원회 승인을 모두 거쳐 관보 게재 후 발효됩니다.
그러나 산업계와 회원국 간의 거센 반발로 실제 발효까지는 난항이 예상됩니다.
재사용 목표 두고 산업계 반발…당초 초안보다 약해진 EU 포장재 규제안 ⚖️
EU 집행위는 당초 연간 8,000만 톤에 달하는 포장재로 인한 막대한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에 2030년까지 모든 종류의 포장재와 물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고안했습니다.
식음료·운송 등 EU 역내 모든 산업군에 속한 기업이 일정 수량의 제품을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에 담아 판매하도록 하려고 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같은 EU 집행위의 제안에 산업계는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특히, 제지 산업이 발달한 핀란드와 이탈리아 등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결과, 당초 EU가 계획했던 골판지와 패스트푸드 상자, 일회용 커피 컵 등을 금지하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재사용 포장 노력·PFAS 식품 포장재 퇴출” EU 포장재 규제안 내용은? 🤔
그럼에도 이번에 잠정 합의에 도달한 포장재 규제안의 파급력은 여전합니다.
앞서 말한대로 2030년부터 과일·채소의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이 전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케첩·설탕 등 일회용 개별 포장도 불가능합니다. 또 호텔 같은 숙박업소는 더는 일회용 세면용품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포장재 규제안 속 내용은 크게 ▲재사용·리필 선택지 장려 ▲재활용 증진 ▲과불화화합물(PFAS)로 만든 식품 포장재 퇴출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1️⃣ 재사용·리필 선택지 장려
테이크아웃 업체는 소비자가 개인 용기를 가져와 제품을 포장해 갈 수 있도록 선택지를 제공해야 합니다.
또 2030년까지 제품 포장의 10%를 재사용 가능한 포장 형태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포장재 재사용 목표를 구속력 있는 법적 의무로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포장 및 식품업계의 반발을 수용한 것입니다.
또 소규모 기업은 면제된단 단서가 달렸습니다.
나아가 평균 이상의 재활용 성과를 기록한 회원국의 경우 2030년과 2040년 포장재 재사용 목표 이행을 각 5년씩 연기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2️⃣ 재활용 증진
EU 회원국은 플라스틱병과 음료 캔 회수율 90% 목표 달성을 위해 2029년까지 예치금 제도, 즉 공병 보증금 반환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2026년 기준 수거율이 80% 이상인 회원국에는 도입 의무가 면제됩니다.
잠정 합의 결과, 협상가들은 “모든 포장재가 재활용 가능해야 한다”며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할 것”고 밝혔습니다.
다만, 일부 산업군에서는 재사용 목표 부과가 제외됐습니다. 또 직물·고무·세라믹·도자기·경량 목재·코르크 등 6개 제품군에 대해선 면제가 예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6개 제품군은 규제 시 회원국별로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산업군입니다.
3️⃣ PFAS 식품 포장재 퇴출
과불화화합물(PFAS)은 열과 부식에 강한 화학물질로 계면활성제로 사용됩니다. 식품 포장재를 비롯해 배터리와 반도체 등 광범위한 제품에 사용됩니다. 문제는 PFAS는 안정적 화학물질로 잘 분해되지 않아 인체내 잔류되는 등 환경과 인체 모두에게 유해합니다. 이 때문에 ‘영원한 화학물질’ 또는 ‘좀비 화학물질’로도 불립니다.
PFAS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저체중이나 면역체계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앞서 지난 2월 28일 미국 식품의약청(FDA)도 PFAS를 퇴출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EU 또한 이같은 규제에 동참했습니다. 이번 잠정 합의된 포장재 규제안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식품 포장재에 사용되는 PFAS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포장재 규제안,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공방 예상 ⚖️
법안 협상을 주도한 중도성향 정치그룹 리뉴유럽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프레데리크 리스는 “환경법에서 최초로 EU가 포장재를 줄이기 위한 목표를 정했다”며 “역사적인 합의”라고 밝혔습니다.
포장재 규제안은 잠정 합의된 상태로 EU 이사회 회원국과 유럽의회 과반의 최종 승인이 필요합니다.
잠정 합의는 승인을 위한 통상적인 관례 절차로 여겨지긴 하나,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가 임박한 만큼 승인이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잠정 합의 이튿날(5일) 유럽신선과일·채소생산협회인 프레쉬펠은 “과일·채소 부문이 EU 집행위의 부당한 표적이 됐다”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습니다.
역내 포장협회인 유로피언 또한 이번 포장재 규정안에 반발했습니다.
‘외국산 재활용 플라스틱 수입’시 EU 생산 기준 적용? 회원국 간 대립 첨예 ♻️
이 가운데 일부 회원국들도 포장재 규제안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외국산 재활용 플라스틱’을 둘러싼 갈등이 핵심입니다.
지난 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규제안 협상 과정에서 프랑스는 외국산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에도 EU의 규제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는 ‘거울 조항(Mirror clauses)’을 끼워 넣었습니다. 거울 조항은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상호주의 기반으로 수입 제품에도 자국의 동등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조항이 채택될 경우 EU 기준에 미달인 재활용 플라스틱은 수입이 전면 금지됩니다.
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과 EU 집행위 모두 이 조항이 포함된 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으로 판정될 소지가 있을뿐더러, 재활용 플라스틱 가격 상승을 부채질해 소비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입니다.
EU 집행위는 해당 조항과 위반 소지를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고 FT는 전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역내 생산자들의 추가 부담을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단 입장입니다. 프랑스 출신 파스칼 캉팽 유럽의회 환경위 의장은 “이 규정을 통해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을 새로 창출하고 역내 산업계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하길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활용 플라스틱 업체들도 프랑스의 제안을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업계와 회원국 간의 갈등이 더해짐에 따라 포장재 규제안이 최종 합의해 발효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