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가격이 급락하며 주요 광산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침체가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20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철광석 가격은 톤당 96.74달러(약 12만 8,8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연초 대비 30% 넘게 급감한 것입니다.
철광석 업계는 톤당 가격 100달러(약 13만원)을 수출 마지노선으로 봅니다. 10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면 생산 비용이 판매 비용보다 더 커집니다. 톤당 100달러까지 철광석 가격이 떨어진 것은 2022년 이후 처음입니다.
이로 인해 ‘철광석 빅4’로 불리는 ①BHP ②리오틴토 ③발레 ④포테스큐의 시가총액이 1,000억 달러(약 134조원) 넘게 증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들 기업의 수출 감소로 인해 수조 원 규모의 세수 구멍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 부동산 경기침체로 철광 수요 둔화 → 가격 급락 💸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중국의 부동산 경기침체를 계기로 줄곧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1~6월) 중국의 건물 착공 면적은 전년 동기 대비 23.7% 줄었습니다.
부동산 침체 여파로 건설자재인 철강 제품의 수요도 둔화했습니다. 중국 금속데이터 제공기관 스틸홈에 의하면, 올해 중국 항구의 철광석 재고량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1억 540만 톤으로 추정됩니다.
중국 제철소들 역시 건설용 철강 공급 과잉으로 인해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업 생존을 위해 중국 제철업체들은 철강 제품 생산량을 줄여야한다는 압박을 받는 상황입니다.
이 가운데 내수 부진으로 중국 시장이 침체되자 중국 철강 기업들이 타개책으로 저가 철강 수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업체 바오우스틸의 후왕밍 회장 또한 “철강 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며 “2008년과 2015년의 침체 때보다 더 길고, 더 춥고, 더 어려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08년과 2015년은 주요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해 중국 증시가 폭락한 시점과 일치합니다.
BHP 등 업계 주가 하락세…호주 예산 세수 구멍 경고도 🚨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자 주요 광산업체들 역시 기업경영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호주 광산업체 BHP와 리오틴토가 대표적입니다. BHP는 시가총액이 1,340억 달러(약 178조원)에 이르는 업계 최대 기업입니다. 리오틴토는 업계 3위입니다.
두 기업 모두 호주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습니다. 두 기업의 주가는 최근 4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국제 철강석 가격이 계속 떨어진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두 기업은 새로운 매출원을 찾으려 나섰으나 이마저도 상황이 여의치는 않습니다. 청정에너지 전환에 힘입어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구리 역시 2개월 사이 가격이 20%가량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리튬 가격 역시 수요 둔화로 인해 떨어졌습니다.
호주 정부 역시 세수 부족 사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2023년 호주 철광석의 약 85%가 중국으로 수출됐기 때문입니다.
호주 재무부가 철광석 가격 하락으로 30억 호주달러(약 2조 6,900억원) 규모의 예산 부족이 생길 수 있다고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경고했습니다.
짐 차머스 호주 재무부 장관은 “중국 경제의 부진과 최근 철광석 가격 하락은 세계 경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상시시켜 준다”며 “현 상황의 여파를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철광석 가격 하락, 톤당 90달러 이하까지 떨어질 수도” 📉
일부에서는 철광석 가격이 현재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중국 금속데이터 제공업체 SMM의 철강 부문 신잉 야오 이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철광석 가격이 톤당 90달러(약 11만원)까지 내려갈 여지가 남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토지 매입부터 건설까지 전반적인 소요 시간을 고려할 때, 중국 부동산 부문의 철강 수요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야오 이사의 말입니다.
호주 최대 상업은행 커먼웰스은행(CBA) 역시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은행에서 광업·에너지팀의 비벡 다르 팀장은 “시장에서는 철광석 가격이 당분간 톤당 100달러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산 저가 철강 물량에 주요 철강 기업 비상 🏭
철광석 가격이 떨어지자 업체들 역시 생산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호주와 브라질은 철광석 생산량을 7월부터 이미 감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제 철강석 가격 하락의 여파가 세계 주요 철강 기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칠레 최대 철강업체인 CAP그룹은 오는 9월 15일부로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칠레 당국이 중국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할 것을 밝혔음에도 사측은 폐쇄를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가격경쟁 면에서 중국의 저가 철강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유럽 최대 철강 기업인 아르셀로미탈 역시 중국의 철강 수출로 인해 역내 시장이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독일 주요 철강 제조 기업인 잘츠기터AG는 올해 상반기 1,860만 유로(약 227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1억 6,200만 유로(약 2,395억원) 규모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이미 순손실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군나르 그로벌러는 블룸버그통신에 중국의 철강 과잉생산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는 “최근 수십년을 통틀어 올해가 독일 철강 산업에게 가장 어려운 해”라고 평가했습니다.
인도 철강업계 역시 중국산 철강의 저가 수출로 어려움이 크단 점을 정부에 호소했습니다.
“중국산 철강 저가 물량 공세에 고전하는 한국 철강업체” 🤔
한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국의 저가 철강 중 일부가 한국으로 수입되고 있습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수입 철강재 물량은 788만 3,000톤입니다. 이중 중국산이 472만 5,000톤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7만 6,000톤 늘어난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5월 미국이 중국의 철강 관세를 25%까지 더 높이며 유입 물량이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기존 7.5% 관세보다 17.5%p(퍼센트포인트) 오른 것으로 올해 8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국내 철강 제품이 중국보다 비싼 편입니다.
하나증권은 “(8월 2주차 기준) 중국산 후판의 공급 가격이 (국내에서) 70만 원대에 거래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국산 제품보다 10만 원 낮은 가격입니다.
하나증권은 “중국 철강업체들의 저가 제품 수출도 국내 철강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제품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철강업계 수익성 개선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미 국내 철강업계는 올해 상반기 내내 부진을 이어왔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5,830억 원과 7,52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두 분기 모두 전년 같은 분기 대비 크게 급감한 것입니다.
현대제철소 역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감소했습니다. 사측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558억 원, 2분기는 98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