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필요하단 제언이 나왔습니다.
순환경제 싱크탱크 엘렌맥아더재단(EMF)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공개했습니다. ‘섬유에 대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정책 경계 확장’ 보고서입니다.
패션업계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0%를 배출합니다. 2017년 세계자연기금(WWF)은 세계에서 발생하는 섬유폐기물이 연평균 21억 톤에 달한다고 추산한 바 있습니다.
재단은 보고서에서 현재 전 세계 섬유폐기물 수거율이 평균 14%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폐기되는 섬유가 80% 이상이란 뜻입니다.
더욱이 수거된 섬유마저도 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 향합니다. 결국은 장소만 바뀌어 매립·소각됩니다.
재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PR 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섬유폐기물 문제 원인 “박리다매·일회용 디자인·수거 인프라 부족” 🗑️
보고서는 막대한 섬유폐기물이 발생하는 원인을 3가지로 꼽았습니다.
먼저 패션 산업 자체가 생산량과 수익이 연동돼 있습니다. 일종의 ‘박리다매(薄利多賣)’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패스트패션의 등장으로 더 공고화됐습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쉬인이 대표적입니다. 쉬인은 하루 최대 1,000개 이상의 신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둘째, 섬유는 기본적으로 재사용·재활용이 어렵습니다.
섬유 제품이 순환하기 위해선 설계부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형경제에서는 비경제적인 행위입니다. 판매가 계속되기 위해선 수선·재사용·재판매보다 폐기가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패스트패션의 별명이 ‘일회용 패션’인 것도 이와 연결됩니다.
셋째, 섬유의 순환을 위한 분류와 수거 인프라(기반시설)가 모두 부족합니다.
분류·수거는 섬유폐기물의 매립·소각을 막기 위해 중요합니다. 오늘날 대다수 섬유폐기물은 일반폐기물과 섞여 배출됩니다. 이 경우 오염되기 쉬워 재사용·재활용이 어려워집니다.
보고서에는 3가지 원인 중에서도 분류 ·수거 인프라 부족 문제가 강조됐습니다. 여러 산업과 정책의 영역이 얽혀있어 해결이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서 두 가지 문제에서는 패션업계가 이미 주도적으로 나선 모습과 비교됩니다. 재판매 활성화, 재생소재 개발 등이 대표적입니다.
수거된 섬유폐기물 “개도국서 결국 모두 매립·소각行?” 🔥
재단은 섬유폐기물이 모두 분류·수거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짚었습니다.
현재 선진국에서 수거된 섬유폐기물 대부분은 중고의류란 명목으로 개도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입니다. 재활용 인프라가 부족해 수입된 중고의류 대부분은 결국 폐기됩니다. 이는 개도국에 과도한 폐기물 관리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가나의 세계 최대 중고의류 시장 인근에 거대한 쓰레기 산이 위치해 있단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재단은 이러한 현재 섬유폐기물 구조를 ‘누출 시스템’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모습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탄소누출’ 현상과 유사합니다. 이는 온실가스 규제가 강한 선진국에서 규제가 약한 개도국으로 산업 기반이 이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개도국에 더 많은 탄소감축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섬유폐기물 문제 역시 글로벌 경제의 가장 끝단, 개도국으로 쏠리는 상황입니다. 이에 주요 기후환경단체에서는 탄소누출과 섬유누출 모두 새로운 식민주의라고 지적합니다.
EMF “섬유누출 저지, 경제성 확보에 달려” 💸
이러한 섬유누출을 막고, 섬유 산업의 순환을 구축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재단은 섬유폐기물의 낮은 경제성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이를 위해선 선진국이 개도국으로 섬유폐기물을 수출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유는 매우 명확합니다. 재사용·재활용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즉, 비용 대비 섬유폐기물의 경제적 가치가 낮습니다. 선진국의 섬유폐기물 수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돼야 한단 뜻입니다.
개도국이 수입한 섬유폐기물을 끝내 매립·소각하는 것도 경제적 이유에 있습니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개도국에 수출된 섬유폐기물은 경제적 가치가 더 하락하는 경향이 있단 것.
선진국 대비 분류·수거 인프라가 부족해 오염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또 기술력과 인력 부족으로 섬유폐기물 대부분은 결국 다운사이클링됩니다. 선진국에서는 재생소재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업사이클링이 가능했을 자원들입니다.
쉽게 말해 개도국으로 수출된 섬유폐기물은 구조적으로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더 어렵단 말입니다.
“새로운 해결책, ‘국경을 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상상하다” 🌐
따라서 재단은 “의무적인 정책에 의해 지원되는 집단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의무적인 정책은 EPR 의무화를 말합니다. EPR은 자원순환을 촉진하고자 제품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자는 분담금의 형식으로 재활용 비용을 부담합니다.
쉽게 말해, 폐기에 대한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재활용의 경제성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동시에 EPR 의무화는 산업계에 보내는 강력한 정책적 신호입니다. 재활용 인프라 관련 투자 유치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재단의 설명입니다.
물론 EPR 개념 자체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적용 범위는 전자제품·포장재 등에 한정됐습니다. 현재 의류에 EPR 의무화를 시행하는 국가는 프랑스·네덜란드·헝가리 뿐입니다.
재단은 더 많은 국가가 섬유에 EPR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국경과 관할권을 넘어 체계화 된 방식으로 EPR 정책을 광범위하게 적용할 것”을 재단은 제안했습니다. EPR이 국경 내로 제한되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된 책임을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발레리 보이튼 재단 수석책임자는 “(선진국 수출국의) EPR 자금이 섬유의 최종 도착지(개도국)의 수거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며 “(그러면) 국경을 넘어선 순환경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섬유폐기물 수입국에 자금을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재단은 덧붙였습니다.
EU, 27개국 포괄 EPR 도입…“플라스틱 국제협약도 좋은 기회” 🤝
‘국경을 넘어서는 EPR’ 개념은 생소합니다.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유사한 사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3년부터 EU 차원의 섬유 EPR 의무화를 추진 중입니다.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 논의에서는 EPR 범위를 중고의류 수출까지 확대하잔 제안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SPR은 유럽 패션 기업은 EU 역내에 판매되는 의류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기재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적용 범위를 중고의류 수출까지 확대할 시 국경을 넘어 EPR 분담금을 전달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한편, 재단은 현재 논의 중인 플라스틱 국제협약도 섬유 EPR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일환으로 국가 간 EPR 기술 공유·재정 지원이 확대될 수 있단 것. 이는 현재 섬유 대부분이 플라스틱 기반이란 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작권자(©)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