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국제협약 체결을 위한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가 4월 30일(이하 현지시각) 총회를 끝으로 폐막했습니다. 예정됐던 마감시한을 하루 넘겨 끝난 것입니다.
4차 회의는 4월 23일부터 약 일주일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렸습니다. 회의는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열립니다. 마지막 5차 회의(INC-5)는 오는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립니다.
회의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175개국이 회의에 참여 중입니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 이후 최대 규모의 다자간 환경협약이자, 가장 중요한 협약으로 불립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협상은 다산다난했습니다. 국가별로 플라스틱 오염 원인에 대한 시각과 감축목표 설정 여부, 이행방식 등에 대한 이견이 첨예하기 때문입니다.
‘부산행’을 앞둔 플라스틱 국제협약 회의.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그리니엄이 취재했습니다.
[편집자주]
“플라스틱 국제협약 4차 회의, 석유화학계 로비스트가 EU 대표단보다 多” 🤔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논의하기 위한 4차 회의가 석유화학계 로비스트들로 인해 난항을 겪었단 주장이 나왔습니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에 의하면, 이번 4차 회의에는 196명의 석유화학계 인사가 로비를 위해 등록했습니다. 작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3차 회의(INC-3) 당시 로비스트 수(143명)보다 37% 더 늘어난 것입니다.
CIEL은 석유화학계 로비스트 수가 “유럽연합(EU) 대표단을 모두 합친 180명보다 많았다”고 꼬집었습니다. 태평양군소도서개발도상국(PSIDS) 대표단(73명)이나 원주민간부회의 대표단(28명)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명확합니다.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해야 한단 국제사회의 요구가 강한 만큼, 이에 반대하는 로비스트 활동도 늘어났단 것이 CIEL의 설명입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미국지부의 그레이엄 포브스 플라스틱 캠페인 리더는 “5번의 회의 중 4번째 회의인데 화석연료 로비가 플라스틱 위기를 종식할 국제협약의 협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어 “화석연료와 석유화학업계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기후대응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들 업계가 각국 정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플라스틱 국제협약 진전을 방해하고 있단 것이 시민사회의 지적입니다.
실제로 미국 비영리단체 생물다양성센터(CBD)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작년 3차 회의에 참석한 석유화학업계 인사들이 2022년 미국 중간선거 당시 제출한 로비 및 정치 기부금만 8,500만 달러(약 1,175억원)였습니다.
엑슨모빌·셰브론 같은 에너지 기업이 대표적입니다.
센터 소속 변호사인 데이비드 데릭은 “치명적인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것”이라며 “그러나 업계는 이익을 보호하고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성토한 바 있습니다.
“석유화학계 로비스트 각국 대표단과 만나 의견 피력” 🚨
4차 회의에 참석한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이하 오션)의 이유나 국제협력팀 팀장은 플라스틱의 ‘긍정적’ 역할을 옹호하는 업계의 문구를 예시로 소개했습니다.
이 팀장은 그리니엄과의 인터뷰에서 “플라스틱 옹호는 오타와 공항 내 수하물을 찾는 TV 광고에서 시작한다”며 “(도시 내) 차량 지붕에 플라스틱 옹호나 홍보 문구를 내건 승용차가 맴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구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플라스틱, 코로나19 영웅(Plastic, COVID HERO)”이나 “플라스틱은 생명은 살린다(Plastic save lives)” 등의 문구입니다.
이 팀장은 “(로비스트 196명 중) 16명은 국가대표단에 포함돼 있다”며 “이보다 더 많은 로비스트가 환경단체인 것처럼 시민단체(NGO)를 설립하여 옵서버(참관인) 자격을 가지고 참여 중이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들 로비스트가 각국 대표단과 접촉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있단 것이 이 팀장의 지적입니다.
그는 “(로비스트가) 가진 협상력 자체가 매우 강력하다”고 우려했습니다.
CIEL에 의하면, 4차 회의에 등록한 로비스트 196명 중 16명은 중국·튀르키예·우간다 등 국가 대표단에 등록돼 있습니다. 각국 대표단에 석유화학업계 로비스트가 포함됐단 뜻은 해당 국가가 협상에서 산업계 의견을 반영하고 있단 뜻입니다.
아울러 해당 수치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단 것이 CIEL의 지적입니다. 해당 수치는 석유화학업계를 대표하거나, 업계로부터 금전적 지원받은 인사만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NGO 등을 통해 참관인 자격으로 들어온 로비스트는 집계에서 제외됐습니다.
기관은 “회의에 참석한 일부 로비스트들은 업계와의 연관성을 은폐했을 수 있다”며 “196명이란 수치가 보수적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FT, 플라스틱 국제협약서 엑슨모빌 등 석유화학업계가 반대 피력 🏭
현재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쟁점 중 하나는 생산 자체를 감축할지 혹은 재사용·재활용을 확대할지입니다. 해당 쟁점은 이번 회의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EU나 영국 등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 연합(HAC)’은 2040년까지 신규 플라스틱 생산을 기존의 30%까지 줄여야 한단 입장입니다. 또 생산 과정에서 과불화화합물(PFAS) 같은 독성 화학물질 사용을 규제해야 한단 주장입니다.
반면, 이란·중국 등 산유국들은 협약 초안에 담긴 신규 플라스틱 생산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석유화학 부산물이자 플라스틱의 1차 소재인 ‘폴리머’ 규제 역시 반대합니다.
석유화학업계 이들과 같은 입장입니다.
최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에 반대하고 있단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FT는 그중에서도 “에너지 기업 엑슨모빌이 업계의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엑슨모빌은 지난해에만 1,120만 톤이 넘는 폴리에틸렌(PE)을 생산했습니다.
회사 제품 솔루션 책임자이자 국제화학산업연합회 회장인 카렌 맥키는 FT에 “문제는 오염이지, 플라스틱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맥키 회장은 이어 “오염 관리와 환경 보호 측면에서 플라스틱 생산 제한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FT에 의하면, 엑슨모빌에서는 임원진 최소 5명이 4차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의 키르티 바스타 연구원은 “플라스틱 수요는 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들이 집중하고 있는 산업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원주민·도서국, 플라스틱 오염 취약 당사자보다 로비스트 입김 ↑ 📢
다만, 석유화학업계가 로비스트로 참여한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국제 환경·개발 연구단체인 국제지속가능개발연구소(IISD)는 한 참가자의 말을 인용해 “국제협상장에 로비스트가 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예컨대 산유국 정부 역시 자국 이익을 위한 로비스트와 다르지 않단 것. 그럼에도 IISD 역시 “우려스러운 추세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힘의 불균형’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주민·도서국 등 플라스틱 오염에 취약한 이들의 목소리보다 로비스트의 입김이 더 크단 것이 이들의 지적입니다.
원주민간부회의 소속 환경단체 ‘키퍼스 오브 워터(KOW)’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토리 크레스는 영국 가디언에 “업계가 후원하는 플라스틱 광고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원주민 대표는 접근이 부족하다”며 “발언 시간도 매우 제한돼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델핀 레비 알바레즈 CIEL 활동가 역시 “각국 대표단에 참여한 로비스트들은 비공개로 진행되는 국가별 전용 세션에도 접근해 로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협상장에서 모든 이가 동등한 접근권을 누릴 수 있단 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우리 정부는 5차 회의 의장국으로서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올해 안에 반드시 성안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단 입장입니다.
[INC-4 결과 모아보기]
①: ‘부산행’ 출발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 4차 회의 성과는?
②: 석유화학계 ‘로비스트’ 몰린 플라스틱 국제협약 회의장
③: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 여부 韓에 달려…4차 회의서 29개국 ‘부산대교’ 선언
④: 현장에서 지켜본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11월 이전 사전 회의가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