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역내 유통되는 제품에 재활용 원료 비중이나 탄소발자국 등 지속가능성 정보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에코디자인 규정안(ESPR)’이 유럽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이와 함께 소비자에게 제품을 수리할 권리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침도 유럽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른바 ‘수리권’을 보장함으로써 EU 내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EU의 환경 규제가 연이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대비가 필요하단 제언도 나옵니다.
1️⃣ 에코디자인 규정|디지털제품여권 등 역내 모든 제품에 지속가능성 ↑
🔻 2022년 3월 | EU 집행위, 에코디자인 규정 개정안 발표
🔻 2023년 12월 |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3자 간 잠정 타결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남아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표결 결과, ESRP는 찬성 455표·반대 99표·기권 54표로 최종 승인됐습니다.
ESRP는 2022년 3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것입니다.
순환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2009년 발효된 에코디자인 ‘지침’을 ‘규정’으로 개정한 것입니다. 규정은 모든 내용이 구속력을 갖고 있어 국내법으로 수용 절차 없이 EU 27개 회원국에 즉시 적용됩니다.
ESPR이 도입될 시 EU 역내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는 ▲내구성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수리용이성 ▲환경발자국 등의 정보가 추가돼 공개돼야 합니다.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폐기하면 그 사유와 수량도 공개해야 합니다. 소각 등으로 재고 처리에 나선 패션 업계를 겨냥한 정책으로 해석됩니다. 단, 향후 폐기 금지 품목이 더 확대될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투명성 확보를 위해 ‘디지털 제품여권(DPP)’을 도입해야 한단 것입니다.
이는 상품의 생산부터 유통과 소비 나아가 재활용 등 제품 전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로 수집하여 제품에 부착하는 표식입니다.
제품별로 여권과 유사한 번호를 부여받으며, 소비자는 제품에 인쇄된 QR코드나 바코드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이를 통해 구매하려는 제품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파악·판단하고, 이를 토대로 구매 결정할 수 있단 것이 EU의 설명입니다.
ESPR은 향후 EU 이사회의 공식 승인과 관보 게재 절차를 걸쳐 발효될 예정입니다.
대상품목 선정과 세부규정 마련 나아가 DPP 형태와 포함될 정보 범위를 확정하는 일에만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규정 위반 시 제재 여부는 각 회원국이 결정하며, 영세기업은 적용에서 면제됩니다.
EU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수출 기업은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시 거래가 제한돼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한국무역협회는 ESPR와 관련해 국내 기업에 끼칠 영향이 “매우 높다”고 내다본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가 수출기업 205개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ESRP는 EU의 주요 환경규제 중에서도 인식 수준이 100점 만점에 34점에 그쳤습니다.
기업들의 대응 수준도 32점에 그쳤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ESRP 인식 수준(32점)과 대응 수준(29점) 모두 대기업에 비해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우리 기업에 대한 잠재적 부담 최소화를 위해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2️⃣ 소비자 수리권 보장 법안 |삼성전자·LG전자 등 영향 불가
🔻 2023년 4월 | EU 집행위, 수리 지침 제안
🔻 2024년 2월 |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3자 간 잠정 타결
🔻 2024년 4월 |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 통과
🔻 미정 | EU 이사회 승인 여부 남아
같은날 소비자 수리권 보장을 골자로 한 ‘제품 수리 촉진 공동 규칙에 관한 지침(이하 수리 지침)’ 역시 유럽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수리 지침은 유럽의회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584로 압도적 찬성 속에 통과됐습니다. 반대와 기권은 각각 3표와 14표에 그쳤습니다.
마찬가지로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과 관보 게재만 앞둔 상황입니다. 규정이 아닌 ‘지침’인 관계로 각 회원국은 법안 발효 후 24개월 이내에 자국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해당 지침은 2023년 3월 EU 집행위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수리가 가능함에도 조기 폐기되는 제품으로 인해 역내에서만 2억 6,100만 톤 분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단 것이 EU 집행위의 설명입니다. 이는 3,500만 톤에 이르는 폐기물 발생과도 연관됩니다.
수리 지침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수리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EU 역내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동시에 제품 수리 시장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위해선 기업들은 제품 수리를 용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제품 수리를 위한 부품과 수리 도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합니다. 수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사용 등은 금지됩니다.
아울러 중고 또는 3D프린팅으로 생산한 부품도 수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제품 보증기간 이내에 수리된 제품에 대해서도 1년의 추가 보증기간이 부여됩니다.
또 제품 보증기간이 이미 만료된 일반 가전제품에 대해서는 EU 법령에 따라 제조사에게 수리 의무를 부담할 계획입니다. 제품 목록은 향후 추가될 예정입니다.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있습니다. 제품 수리 기간 중 제조사는 소비자에게 대체품을 제공해야 합니다. 수리 불가 시 신품 교환을 요구할 권리도 소비자에게 부여됩니다.
EU 집행위는 소비자가 지역별 수리업체나 수리 촉진 이니셔티브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각 회원국별 정보를 취합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법 시행 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유럽 수출이 많은 국내 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