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가죽과 털을 사용하는 대신 사람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옷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소재 디자이너인 조피아 콜라르가 던진 질문입니다. 그는 순환경제 전환에서 선두 주자로 꼽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년 유럽에서만 7만 2,000톤의 머리카락이 매립지에 버려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에펠탑(1만톤) 7개 무게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머리카락의 양은 약 220만 톤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이렇게 버려지는 머리카락의 잠재력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2021년 머리카락을 가공해 실과 직물 나아가 의류로 가공하는 기업을 설립합니다.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옷’을 현실로 만든 패션 스타트업 ‘휴먼머터리얼루프’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람의 머리카락을 재활용하려는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미국 비영리단체 매터오브트러스트(MOT)가 대표적입니다. 이 단체는 세계 17개국의 미용실과 개인으로부터 머리카락을 기증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 가 있었던 해변 청소에 사용합니다.
콜라르 대표는 머리카락이 가진 잠재력이 그 이상이라고 설명합니다.
머리카락은 무게 대비 강도가 강철과 비슷합니다. 탄력이 있어 섬유로도 활용성이 좋습니다. 또 단열성과 항균성, 수분조절 특성도 갖고 있습니다.
이에 그는 2016년 머리카락을 재료로 만한 태피스트리 작품을 공개합니다. 태피스트리란 일종의 장식용 양탄자를 말합니다. 양털 대신 금발을 엮어 만들었습니다.
독특한 점은 에센셜 오일을 뿌려 향기를 돋보이게 했단 것.
콜라르 대표는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머리 위에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잘려 나간 후에는 혐오스럽게 보는” 대중들의 인식을 180도 바꾸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콜라르 대표는 나아가 머리카락을 신소재로 다루기로 마음 먹게 됩니다.
이후 몇 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휴먼머터리얼루프를 설립합니다. 목표는 미용 사업의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의 작업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머리카락을 수거합니다. 현재 작업에 사용되는 머리카락은 네덜란드를 비롯해 벨기에와 독일 등 인접국의 미용실과 폐기물 처리 기업 그리고 가발 공장 등에서 기부받고 있습니다.
그다음 머리카락을 섬유로 가공하기 위해 세척과 가공에 들어갑니다. 화학 처리를 통해 색상과 질감을 바꾸게 됩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녹색화학 기술을 활용해 머리카락을 친환경적이면서도 여러 색상으로 염색한단 것이 콜라르 대표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머리카락은 단섬유와 함께 꼬아서 원사로 만들어집니다.
일반적인 니트나 직물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인데요. 커튼, 카펫, 가구용 직물 등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섬유로 재활용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콜라르 대표는 2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섬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섬유 생산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합성섬유는 화석연료를 원료로 합니다. 또 천연섬유인 목화나 양모는 생산 과정에서 토지 개간과 물과 화학물질 등으로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합니다. 이와 달리 사람의 머리카락은 화석연료나 추가적인 자원 투입 없이도 획득이 가능하단 것.
둘째, 머리카락이 매립·소각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지구의 80억 인구의 미용실·이발소에서 나오는 머리카락의 양은 상당합니다.
폐기될 소재라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저렴한 원료입니다.
다만, 처리 비용이 많이 들어 머리카락 직물은 아직 기존 직물들보다 비쌉니다.
콜라르 대표는 “본격적인 생산에 도달할 경우, 경쟁력 있는 가격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휴먼머터리얼루프는 설립 후 그간 여러 프로토타입(시제품) 의류를 선보였습니다.
2023년에는 한 탐험가가 휴먼머터리얼루프의 옷을 입고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산 정상 등반에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가 입은 옷은 솜이나 거위 털이 아닌 사람의 머리카락이 보온재로 사용됐습니다.
주인공은 영화 감독 겸 사진작가인 레오나르도 아베차노였는데요.
그는 휴먼머터리얼루프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아베차노는 이전부터 환경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표해왔습니다. 과거 해양폐기물 수거 비영리단체 오션클린업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습니다.
아베차노는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오염이 심한 섬유 산업의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도전에 나섰다”고 말했는데요.
정상 등반에 성공한 그는 머리카락 재킷과 바지에 매우 만족했다는 감상을 남겼습니다. 덕분에 감기나 바람에 시달리지 않고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휴먼머터리얼루프의 다음 목표는 연간 55만 톤 규모의 머리카락 직물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세계 양모 시장(200만 톤)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사측은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본격적인 상품화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제작된 옷들 대부분은 시제품이었습니다. 일회성으로 전시회나 행사에 소개되는데 그쳤던 것.
이에 휴먼머터리얼루프는 올해 상용 파일럿(시범)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위한 직물 라이브러리(견본)도 만들 계획입니다. 나아가 투명성 확보를 위해 소재 원산지와 목적지를 추적할 수 있는 공급망 추적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