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기준 세계 4위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제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각) 진행됐습니다.
같은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선거의 키워드로 석탄·니켈·팜유·열대우림 등 4가지를 꼽았습니다.
NYT는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이라며 “배터리와 청정에너지 전환에 매우 중요한 니켈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라고 소개했습니다. 동시에 팜유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이 빠르게 사라지는 곳이라고 덧붙였습니다.
NYT는 기후대응 측면에서 “인도네시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인도네시아에서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의 영향을 강조했습니다.
2억 500만 명 투표 인니 대선…“투표 결과 집계에만 1개월 소요” 🗳️
이를 알기 위해선 인도네시아의 투표 과정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1만 3,000여개 섬에 거주하는 유권자 2억 500만 명의 투표로 선거가 이뤄집니다. 투표소만 82만여개에 이르러 개표에만 1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최종 선거 결과는 오는 3월 20일께 발표됩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히퉁 츠팟(Hitung Cepat)’이라 불리는 표본 개표를 통해 미리 선거 결과를 예측합니다.
표본으로 지정된 투표소의 투표함을 선관위가 지정한 조사기관들이 개봉해 집계하는 방식입니다. 대개 ‘신속집계’로 불립니다.
투표에서 후보들은 최종 득표율이 50%를 넘고, 38개 전체 주 과반에서 20% 이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시 1위와 2위 득표자 간의 결선 투표가 오는 6월 예정돼 있습니다.
“신속집계서 과반 차지한 수비안토 후보, 당선 유력” ⚖️
신속집계 결과, 현재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후보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현 국방장관입니다.
2014년과 2019년에 이어 이번이 3번째 대권 도전인 수비안토 후보는 퇴임을 앞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주요 정책을 계승하겠단 뜻을 밝혀 왔습니다.
그는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후 선거를 치르며 지지율이 80%에 육박했습니다.
지난 14일 표본 개표 결과 득표율이 과반을 넘은 것이 확인되자, 수비안토 후보는 대선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수비안토 후보는 수도 자카르타 중부의 한 체육관 앞에 나타나 “표본 조사 결과 과반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독립 조사기관들의 잠정 집계 결과 90%의 개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수비안토 후보는 평균 57~60%의 득표율을 기록해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후보인 간자르 프라노워 전(前) 중부자바 주지사와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바 주지사 등은 최종 결과를 기다려보겠단 입장입니다. 이들 후보는 대선 기간 중 부정행위가 발견됐다며 불복할 수 있단 반응입니다.
모나쉬대 “2024년 인니 대선은 기후선거가 아니다”…기후 언급 1% 그쳐 📊
대선 전날(13일) 모나쉬대학 인도네시아 캠퍼스는 “2024년 인도네시아 선거는 기후선거가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대학 내 기후변화커뮤니케이션연구허브(MCCCRH)가 대통령 후보 3인의 공약과 문서를 분석한 결과, 환경·기후·생태·에너지 등 4개 단어 언급 비중은 1%에 그쳤습니다.
그중에서도 수비안토 후보가 가장 낮은 44회(0.58%) 언급에 그쳤습니다.
MCCRH는 “인도네시아 유권자들이 기후변화의 위협과 영향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정치인들에게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수비안토 후보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의 주요 정책이 향후 기후대응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 석탄|세계 최대 석탄수출국 인니…2022년 배출량 20% ↑
2000년대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인도네시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에서 세계 9위를 차지합니다.
이 기간 인도네시아 내 에너지 부문 배출량은 약 6억 톤으로 집계됐습니다. 에너지 부문 배출량이 수요보다 빠르게 증가했단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전력의 대다수를 석탄화력발전소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석탄은 단일 배출원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2021년 기준 인도네시아 전체 발전소 용량은 약 74GW(기가와트)입니다. 이중 37GW가 석탄발전소에서 생산됐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 등 주요7개국(G7)이 주도하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파트너십(JETP)’을 통해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조기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재원 조달 문제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못한 상황입니다.
수비안토 후보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 모두 JETP를 지지하면서도, 각기 다른 청정에너지 전환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인도네시아가 석탄을 포기할 의사가 없어 보인단 것이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석탄 수출국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도 석탄을 이유로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에 반대 의사를 내비친 바 있습니다.
기후정책 분석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2022년에 배출량이 약 20% 이상 급증했다”며 “인도네시아의 기후목표가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했습니다.
⛏️ 핵심광물|니켈·구리 등 원광 형태 수출 금지…제련에 석탄발전소 필요
여기에 니켈 제련 등 산업단지와 제련소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추가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단 점도 우려됩니다.
니켈 생산 1위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니켈을 원광 형태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 대신 자국 내 제련소를 거쳐 제품 형태로 가공한 뒤 수출하도록 했습니다.
이차전지 등 청정에너지 전환서 핵심광물인 니켈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과정에는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개 석탄이 사용됩니다. 현재 당선이 유력한 수비안토 후보 또한 자국 내 니켈 제련 산업 확장을 위해선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이 필요하단 입장입니다.
이밖에도 올해 5월부터 구리 정광(불순물을 제거한 구리 광석) 등 주요 핵심광물 수출도 중지됩니다. 보크사이트, 주석 같은 핵심광물은 이미 지난해부터 정광 형태로 수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니켈과 마찬가지로 이들 핵심광물들도 자국 내 제련소에서 정제한 후 제품으로 수출한단 것이 인도네시아 정부의 계획입니다.
이와 관련해 스탠다드앤푸어스(S&P) 글로벌은 인도네시아 대선과 관련해 “핵심광물 수출 정책 금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외부 투자 유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 팜유|수비안토 후보 “팜유 산업 확장 위해 열대우림 개간 불가피”
팜유 생산에 따른 열대우림 개간을 두고도 이목이 쏠린 상태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널리 소비되는 식용 기름인 팜유의 56%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됩니다.
문제는 팜유가 삼림벌채의 주요 원인이란 점입니다. 팜나무 재배를 위해 열대우림을 개간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기술컨설팅 기업 더트리맵(TTT)이 내놓은 최신 분석에 의하면, 팜유 산업으로 인한 인도네시아 내 삼림벌채는 2년(2022~2023년) 연속 증가했습니다.
작년에 사라진 열대우림 면적만 약 300㎢로 추정됩니다. 서울시(605㎢) 면적의 절반가량이 사라진 것입니다. 팜유 산업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내 열대우림의 67%가 파괴됐단 조사도 있습니다.
수비안토 후보는 팜유 산업 육성을 위해 열대우림을 더 개간해야 한단 입장입니다.
여기에 사탕수수·카사바 등 열대작물을 바이오연료로 생산해야 한단 입장도 내비쳤습니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훼손과 생물다양성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국제앰네스티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시민사회 탄압 우려 목소리 ↑ 🤔
한편, 수비안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나옵니다.
수비안토 후보는 독재자 수하르토 대통령(1967년 3월~1998년 5월)의 사위입니다. 수하르토 정권 시절 코파수스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재직했습니다.
이 특수부대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정적을 납치·고문·살해한 곳입니다.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 시위가 극에 달한 1998년에 납치된 22명 중 13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나아가 1983년 인도네시아군이 이웃나라 동티모르 비께게시의 크라라스 마을에서 200여명을 학살한 사건 등에도 수비안토 후보가 연류됐단 의혹이 있습니다. 이에 수비안토 후보는 일단 부인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지부 이사장인 우스만 하미드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며 미래를 어둡게 내다봤습니다.
국제환경단체 350.org 인도네시아지부 팀장인 피르다우스 카야디는 NYT에 “후비안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기후환경 운동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시민사회 운동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