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주요 의제인 글로벌기후적응목표(GGA) 논의가 파행을 겪고 있습니다.
GGA란 기후적응 진척도를 평가하기 위한 목표입니다. 크게 ▲기후적응 역량 강화 ▲기후변화 취약성 저감 ▲기후탄력성 강화 등을 목표로 합니다.
앞서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 GGA 프레임워크 수립을 위한 ‘글래스고-샤름엘셰이크 작업프로그램(이하 작업반)’이 합의됐습니다. 작업반은 이후 2년간 GGA를 설정하는 방법론과 지표 등을 구체화하는 논의를 이어왔습니다.
COP28에서는 논의 결과물에 따라 GGA 프레임워크가 최종 채택될 계획이었습니다. 관련 내용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에 반영될 제1차 전지구적 이행점검(GST) 최종안에도 담깁니다.
허나, GGA 프레임워크 논의는 지난 4일부터(이하 현지시각) 초안 공개와 수정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초안 공개 직후 10일까지 2차례의 수정이 이뤄졌습니다.
이 때문에 COP28에서 GGA 프레임워크가 합의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옵니다.
글래스고서 시작된 GGA 작업반, 2년만에 초안 공개 📜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은 감축과 더불어 적응과 관련된 글로벌 목표가 수립돼야 한단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COP26 이후 2년간의 작업반 논의 끝에 지난 4일 GGA 프레임워크 초안이 공개됐습니다.
이행 방식은 크게 2가지 선택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2025년까지 국가별 기후변화 취약성을 평가하고 2027년까지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한단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사국이 2030년까지 자체적인 국가적응계획 및 국가적응목표를 수립해 이행한단 것입니다.
이밖에도 물·식량·건강·농업 관련 2030 적응목표 7가지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기후탄력적 수자원·식량 공급, 생태계 최소 30% 유지·복원 등입니다.
GGA 수립에 반영돼야 할 구체적인 목표와 보고 방법, 재원 마련 및 운영 방법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와 함께 기후적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 및 노력이 부족하단 점도 강조됐습니다.
GGA 프레임워크 초안은 “기후재원 제공의 진전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동시에 “현재 기후적응을 위한 기후재원이 개발도상국의 악화하는 기후변화 영향에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고 명시됐습니다.
그러면서 “선진국 당사국이 개도국 당사국에 적응을 위한 기후재원을 2025년까지 2019년 수준에서 최소 2배로 늘릴 것”을 재차 촉구했습니다.
1️⃣ 12월 4일|GGA 초안, 개도국 반발 부딪혀 “선진국 책임·재원 언급 X” 💰
GGA 프레임워크 초안이 공개된 직후 여러 개도국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개도국에서 요구해왔던 사항들이 초안에 반영되지 않았단 것.
개도국들은 ▲공통적이지만 차별화된 책임과 개별 역량 원칙(CBDR-RC) ▲적응재원 목표 ▲적응재원 격차 해소 ▲책임 관련 메커니즘 등에 대한 내용이 부실되거나 누락됐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CBDR-RC 원칙’입니다.
이는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수립 당시 명시된 원칙입니다. 기후대응에 있어 개별 국가의 다양한 역량과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쉽게 말해 역사적 배출량이 많은 선진국이 기후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고, 대응에 있어서도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단 뜻입니다.
현재 개도국들은 초안 문서에 CBDR-RC 관련 내용이 ‘대괄호([])’로 묶여 있단 점을 지적합니다. 정량화 가능한 재원 목표와 적응 격차 해소 시급성 등은 누락됐습니다.
UNFCCC 문서 상에서 ‘대괄호’로 표시된 내용은 아직 모든 당사국에 의해 합의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이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협상국들은 수많은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시작하라’고 요청하는 등 무자비한 반응을 보였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습니다.
2️⃣ 12월 5일|1차 수정안 공개, CBDR-RC 원칙·적응격차 등 일부 수정 🤔
GGA 프레임워크 초안 공개 다음날(5일) 작업반 공동 진행국인 스웨덴과 벨리즈가 수정안을 공개했습니다.
개도국들의 항의가 잇따랐던 CBDR-RC 원칙은 괄호가 아닌 본문에 선택지로 포함됐습니다.
재원 관련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구체적으로 GGA 재원 목표를 2030년까지 연간 최소 4,000억 달러(약 528조원) 규모의 다자기후재원을 제공한단 내용이 수정안에 명시됐습니다.
적응을 위한 양허 및 보조금 기반 재원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적응 금융이 개도국의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보장한단 내용도 수정안에 담겼습니다.
‘적응 격차’ 확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선진국의 2025년 적응재원 2배 확대 약속이 예상 비용의 5~10%에 불과하단 점을 지적하는 문구도 포함됐습니다. 해당 약속은 앞서 COP26 글래스고 합의문에 등장해 COP27에서 재확인 된 바 있습니다.
앞서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3 적응 격차 보고서’를 통해 세계 적응재원으로 연간 1,940~3,660억 달러(약 256~483조원)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1차 수정안에 구체적인 적응 격차 액수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1차 수정안에도 CBDR-RC 원칙이 본문으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 및 선진국의 기여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개도국의 항의가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 해당 논의는 지난 6일 COP28 내 ‘제5차 파리협정 당사국총회(CMA-5)’로 이관하기로 의결하며 작업반 논의를 마칩니다.
3️⃣ 12월 10일|4000억 약속 삭제된 2차 수정안, “선진국 기여 부족해” 📣
이후 논의 끝에 GGA 프레임워크 2차 수정안이 지난 10일 공개됐습니다.
2차 수정안에 개도국 및 기후활동가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2차 수정안 내용이 앞서 1차 수정안과 같거나 되려 일부 후퇴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적응재원에서 2030년까지 연간 4,000억 달러를 제공한단 내용이 삭제됐습니다. 적응 격차를 언급해야 한단 개도국의 요청은 2차 수정안에서도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초안부터 2차 수정안까지 선진국의 2025년 적응재원 2배 확대 약속은 공통적으로 담겼습니다. 그러나 적응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인 방안은 계속 빠졌단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유럽 기후싱크탱크 E3G의 아나 물리오 알바레즈 연구원은 “강력한 이행수단이 없으면 프레임워크는 텅 빈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여기서 이행수단은 선진국의 재정 및 기술 지원을 뜻합니다.
초안에서 언급된 생태계 최소 30% 유지·복원 목표도 2차 수정안에서는 삭제됐습니다.
산딥 참링 라이 세계자연기금(WWF) 기후적응 정책 수석 고문은 “(2030 적응목표 관련) 구체적인 목표도 빠져있다”며 “2030년까지 생태계의 30% 보호 목표가 삭제된 점도 우려스럽다”고 밝혔습니다.
몰디브 기후변화부 부국장이자 군소도서개도국(SIDS) 협상가인 티비아 이브라임은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화석연료 퇴출-GGA 프레임워크 ‘인질교환’ 우려도 😰
현 계획에 의하면 GGA 목표는 오는 2025년 30차 당사국총회(COP30)까지 만들어져야 합니다. 허나, 준비 단계인 GGA 프레임워크부터 논의가 지연되는 상황이 변수로 지적됩니다.
한편, COP28의 관심사가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에 쏠리면서 적응에 대한 관심이 줄었단 지적이 나옵니다.
아프리카 기후싱크탱크 파워시프트아프리카의 무하메트 아도우 이사는 “GGA는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더라도 빠르게 진행될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라며 적응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부 개도국과 선진국이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논의를 방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GGA 협상을 사용하고 있단 주장도 나옵니다.
아니 다스굽타 세계자원연구소(WRI) 소장은 지난 10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과 GGA가 기후외교의 상충점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GGA에 재원을 지원하는 대가로 개도국 및 산유국들이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에 대한 타협을 요구한단 것이 다스굽타 소장의 말입니다.
같은날 기후전문매체 클라이밋홈뉴스는 다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20개국으로 구성된 ‘강성개도국 협상그룹(LMDC)’이 일부러 GGA 논의를 방해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CBDR-RC 원칙 명시를 고집하며 논의가 파행되도록 부추기고 있단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LMDC 대변인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