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국제협약을 만들기 위한 경주가 이제 중간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부터 19일(현지시각)*까지 7일간 케냐 나이로비에서 ‘플라스틱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이하 플라스틱 협약)’ 개발을 위한 제3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3)가 열렸습니다.
이번 회의에는 각국 정부와 시민단체, 산업계 등 2,5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교부 조홍식 기후환경대사와 환경부 이창흠 기후탄소정책실장 등을 비롯해 외교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했습니다.
5차례 회의 중 3번째 열린 이번 회의는 지난 9월 공개된 플라스틱 협약의 초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단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플라스틱 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둘러싸고는 이견이 계속됐습니다. 현지시각으로 19일 오후 6시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회의는 밤 11시까지 연장된 끝에 종료됐습니다.
INC-3에서 어떤 쟁점이 오갔는지 그리니엄이 정리했습니다.
*이하 현지시각
UNEP ‘나이로비 정신’ 강조했지만…장외 힘겨루기부터 난항 😓
INC-3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됩니다. 2022년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개발을 위한 결의안이 채책된 제5차 유엔환경총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합니다.
INC-3 개막식 연설에서 구스타보 메자-쿠아드라 벨라스케스 INC 의장이 “나이로비 정신과 합의, 야망”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또한 개막식 연설에서 “재활용이나 폐기물 관리만으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다룰 수 없다”며 더 높은 야망이 필요한 점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결의안에서 언급된) 전체수명주기를 다룬다는 것은 폴리머부터 오염물질, 제품부터 포장까지 가치사슬 전체에 걸쳐 모든 것을 재고하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기대에도 INC-3 시작 전부터 각국의 장외 힘 겨루기가 시작됐던 상황.
먼저 지난 3일 강경파 60여개국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 등 야심찬 조약 수립을 촉구했습니다. 뒤이어 11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러시아, 쿠바, 바레인 등 5개국이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을 출범했습니다. GCPS는 생산 감축보다 플라스틱 폐기물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첨예한 대립으로 INC-3 진행이 예정대로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도 나왔습니다.
이미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INC-2는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중국 등 3개국의 지연으로 회의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INC 의장 “500여건 요청, 초안에 반영될 것” 🥤
INC 사무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식 회의 개최에 앞서 지난 11일 준비 회의를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본 회의 또한 3개의 연락그룹(이하 그룹)이 초안의 부분들을 나누어 맡아 논의를 진행합니다. 각 그룹에서 논의된 내용을 전체회의에서 공유하고 다시 그룹별 논의를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벨라스케스 INC 의장은 INC-3 회의 마지막날(19일) 전체회의에서 각 그룹 논의에서 나온 국가들의 제안 및 300개 이상의 서면 요청을 포함해 500건의 제안이 초안에 통합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수백 건의 제안은 플라스틱 협약에 대한 논쟁이 그만큼 뜨겁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회의 내내 플라스틱의 정의부터 고위험 플라스틱**의 ▲범위 ▲규제 방식 ▲목표 시점 등 여러 쟁점에 논의가 쏟아졌습니다.
그간 INC-3의 주요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플라스틱 종식 vs 플라스틱 오염 종식
이번 회의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예상됐던 부분은 플라스틱 협약의 목표였습니다. 쉽게 정리하면 ‘플라스틱 종식(감축)’이냐 ‘플라스틱 오염의 종식(관리)’이냐 입니다.
INC 사무국의 초안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강조됐습니다. 허나, 주요 플라스틱 생산·소비국은 재활용 등 순환경제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는 방식을 지지해왔습니다. 이에 열띤 논쟁이 예상됐으나 여러 선택지를 모두 수합하는 방식으로 정리됐습니다.
오히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고위험 플라스틱의 기준과 범위였습니다. INC 사무국의 초안에서는 문제성 및 일회용 플라스틱을 규제 대상으로 명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규제 방법 ▲규제의 관할권 담당 ▲완전 금지 여부 등을 두고 국가 간의 대립이 팽팽했습니다.
INC-4 이전에 회기간 협상을 진행해 고위험 플라스틱에 대한 다양한 기준을 개발하는 작업이 필요하단 요청도 나왔습니다.
**고위험 플라스틱: 인체·환경에 직접적인 오염을 일으키는 유해 화학물질을 포함하거나, 수명이 짧아 플라스틱 오염을 가중시키는 일회용 플라스틱 등이 거론된다.
2️⃣ 신규 기금 설립 두고 찬반 엇갈려
재정 문제에서는 다자간 기금 신설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확대, 오염자 지불 원칙에 따른 자금 마련 등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도서국과 개발도상국 등은 다자간 기금 신설을 요구했습니다.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EPR과 오염자 지불 원칙을 지지했습니다. 한편, 많은 국가들은 국가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EPR을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새로운 기금 설립을 두고도 찬반이 갈렸습니다.
3️⃣ 플라스틱 협약 시점도 뜨거운 감자
플라스틱 협약의 서문을 두고도 논의가 뜨거웠습니다. 핵심은 구체적인 목표 시기의 명시 여부입니다.
논의에 참여한 안드레스 카스티요 국제환경법센터 선임 변호사에 따르면 해당 안건에 대해서만 360개 이상의 수정안이 제출됐습니다.
구체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 연합(HAC)’을 비롯한 강경파는 서문에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는 날짜를 2040년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가 짧고 간결한 서문을 지지했습니다. 이에 구체적인 조항은 추후에 개발되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추가적인 협상을 INC-4 이전의 회기간 협상에서 진행할 지를 두고도 논쟁이 길어졌습니다.
+ 한국 대표단 입장은? “순환경제 전환, 국가별 이행계획 필요성 강조” 🇰🇷
외교부는 이번 INC-3에서 한국 입장으로 순환경제로의 전환 필요성과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플라스틱 오염 예방 조치를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각국의 실질적 이행을 고려한 국가별 이행계획의 필요성을 피력했습니다.
아울러 이번 INC-3가 미국, 독일, 일본, 캐나다, EU 대표단과 양자 협의를 가졌습니다. 정부는 각국의 플라스틱 규제 동향과 협약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플라스틱 협상, 진정한 출발…“新 지연 전술이란 지적도” 🔥
마지막날 전체회의에서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개막식 연설을 다시 상기하며 플라스틱 전체수명주기를 다뤄야 한다는 명제에 “많은 국가들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우리의 협상은 이제 시작점에 섰지만, 다음 협상의 기초를 세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중요한 업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INC-2와 달리 협상 자체가 파행하는 것은 막았지만 너무나 많은 수정안이 제안 및 통합되면서 논의가 진전하지 못했단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7일간의 INC-3 회의 결과, 수정된 초안은 당초 31장에서 100장 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경단체는 다량의 수정안 추가가 화석연료 업계의 새로운 지연 전술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레이엄 포브스 그린피스 미국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우리 리더들이 석유화학기업의 의견만을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제환경법센터에 따르면, 이번 INC-3에 참석한 화석연료 및 화학업계 로비스트는 143명에 달합니다. INC-2 당시보다 36% 증가한 수치이며, 태평양 도서국 대표 64명보다 2배를 넘는 숫자입니다.
석유화학업계를 옹호하는 국제화학협회(ICCA)의 스튜어스 해리스 대변인은 INC-3 결과에 대해 “우리는 이제 다양한 아이디어를 훨씬 많이 포함하는 문서 초안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대해 세계자연기금(WWF) 미국 지부는 선택지가 증가함에 따라 핵심 우선순위를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낮은 목표에 대한 타협의 유혹을 조성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편, 대표단은 마지막까지 중단과 협상을 지속했음에도 회기간 협상에 대한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INC-3 이후 회기간 협상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정된 초안을 논의하는 과정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 남은 INC 회의 날짜 확정! INC-5 2024년 11월 부산서 개최 📅
INC-3 대표단은 남은 두 차례의 INC 회의 날짜와 장소를 승인했습니다. INC-4는 2024년 4월 21일부터 30일까지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립니다. INC-5는 2024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이밖에도 르완다, 페루, 에콰도르, 세네갈 등에서 별도의 회담이 개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