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 대만, 물 보호조치 발표…“100년만의 가뭄 또 찾아올까”

2021년 최악의 봄 가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 대만이 물 보호조치에 나서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물 다소비 산업입니다. 주요 공정인 웨이퍼(원판) 표면 세척에 다량의 물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6인치 원판 한 장을 생산하는 데만 1.5톤의 초순수*가 사용됩니다.

문제는 반도체 기업 상당수가 몰려있는 대만 남부에 가뭄이 지속되고 있단 것입니다.

3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17일 기준 반도체 기업들의 핵심수원인 쳉웬(청문·Tsengwen) 저수지의 수량은 유효 용량의 11.2%에 불과했습니다.

대만의 물 부족 문제 심화될 경우 글로벌 기후대응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초순수: 물속에 포함된 불순물과 이온 등을 제거해 물 분자만 존재하는, 이론적인 순수(純水)에 가장 근접한 물. 10톤의 수돗물로 5톤의 초순수를 생산할 수 있다.

 

▲ 지난 2월 14일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진 쳉웬 저수지의 모습. 대만 경제부는 물 부족에 대비해 3월부터 상업용수 공급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South Region Water Resources Office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지, 대만에선 무슨 일이? 🇹🇼

현재 대만 정부와 업계는 물소비량이 많은 반도체 산업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타이난 시당국은 22일 물 경보를 황색 경보에서 주황색 경보로 상향했습니다. 이어 절수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TSMC와 대만 2위 파운드리 기업 UMC 제조시설이 타이난시 ‘서던사이언스파크(과학산업단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부 조치에 따라 월 1,000㎥(입방미터) 이상 사용하는 기업은 물소비량을 10% 감축해야 합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물 공급이 중단됩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반도체 제조허브인 가오슝시도 야간 공공 상수도 수압을 낮추는 절수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만 지역 당국이 물 절약에 나서는 이유는 대만 남부의 봄 가뭄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만 전체적으로 저수량 대비 저수율은 3월 말 기준 44.7%로 떨어졌습니다. 남부의 경우 더욱 심각합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쳉웬 저수지 수위는 11.2%에 불과했고, 가오슝과 타이난에 물을 공급하는 난화 저수지 또한 41.1%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기록적인 가뭄 피해가 발생했던 2021년 다음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 태평양 수온 상승에 따라 태풍 생성 지역이 북쪽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즉, 대만에 상륙하는 태풍 숫자가 감소하면서 대만의 봄 가뭄이 빈번해지고 있다. ©Greenpeace

“기후변화 날갯짓…한국엔 태풍 피해, 대만에는 가뭄 피해” 🌀

대만의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장 큰 이유로는 기후변화가 꼽힙니다.

원래 대만은 연간 강수량이 2,600㎜로, 한국의 2배에 달합니다. 대만은 세계에서도 강수량이 높은 지역에 속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대만에 비를 몰고 오던 태풍 상륙이 감소하면서 가뭄이 증가했습니다.

연간 3~4건이었던 태풍 상륙 횟수는 2010년 이후 2.5건으로 감소했습니다. 태평양 중부 수온이 상승하면서 대만 북동쪽 지역에서 태풍이 형성되는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북동쪽에서 생성된 태풍은 한국, 중국,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태풍 피해는 증가하고 대만의 강수량은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심지어 2020년에는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대만에 태풍이 단 한 차례도 상륙하지 않았는데요. 이는 그대로 그 이듬해인 2021년, 최악의 봄 가뭄으로 이어졌습니다.

2021년 당시 대만 정부는 반도체용 공업용수를 조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100만 가구에 물 배급제를 실시하고 농부들을 설득해 농업용수를 끌어오는 노력을 했습니다.

 

▲ 치파겟돈은 반도체(Chip)에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더한 신조어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산업계와 증권시장이 타격을 받는 현상을 뜻한다. ©Procurri, 트위터

가뭄이 낳은 반도체 공급부족…“기후변화x치파겟돈 악순환 우려도” 😟

대만의 반도체 생산 차질은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만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파운드리 분야는 70%가 넘고, 후공정과 팹리스 분야에서도 각각 40~50%, 20%대를 차지합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반도체칩 수요 폭증과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공장 폐쇄의 영향까지 더해졌는데요.

이에 반도체(Chip)에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더해 치파겟돈(Chipageddon)이란 신조어도 탄생했습니다.

문제는 반도체 부족이 단순히 대만 한 국가의 경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도체는 기후대응에 매우 중요한 부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탄소감축 솔루션으로 주목받는 전기자동차, 지능형전략망(스마트그리드), 태양광 패널에도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 부족이 지속될 경우 저탄소 전환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변화로 반도체 생산이 차질을 빚고, 저탄소 솔루션 도입이 늦어지며 다시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

더욱이 대만의 가뭄은 앞으로 더 악화될 전망입니다. 대만 국립방재재난과학기술센터는 2050년까지 대만의 건기 강우량이 10% 더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지난해 12월 가동을 시작한 융캉 폐수처리시설은 하루 8,000톤의 재생수를 공급하기 시작해 향후 1만 5,500톤까지 늘릴 예정이다. ©Chien-Ying Chiu

수자원 순환 핵심 이슈로 떠올라…워터테크 주목 필요” 💦

물 부족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만 정부 및 기업들은 다종다기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대만 정부는 비교적 강수량이 많은 대만 북부에서 물을 끌어오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북부 신베이시의 쉬먼저수지와 TSMC 본사가 위치한 중부 신주시를 잇는 25km의 파이프라인이 대표적입니다.

물 부족이 장기화되는만큼, 수자원 순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솔루션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12월 가동을 시작한 타이난의 융캉(Yongkang) 폐수처리시설을 포함해, 타이난과 가오슝 지역에 6개의 물재활용센터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현재 4곳이 가동 중이며, 모두 완공되면 총 21만 톤 이상의 물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TSMC의 경우 자체적인 재생수 공장을 서던사이언스파크 내에 건설했습니다. 지난해 9월 가동을 시작했는데요. 공업용수 재활용을 통해 하루 물 1만 톤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2026년에는 하루 공급량을 3만 6,000톤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수자원 관리를 위한 워터테크(Water tech) 투자를 더욱 늘려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반도체 공정이 정밀해질수록 물소비량은 더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워터테크 투자는 저조한 상황입니다. 기후테크는 2021년 상반기에만 270억 달러(한화 약 34조원)가 투자된 데 비해 2021년 한해 워터테크 스타트업이 조달한 투자액은 5억 달러(약 6,5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 SK하이닉스가 투자해 용인시 원삼면의 145만㎡(제곱미터) 부지에 조성될 예정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난 15일에는 삼성전자 또한 용인시 남사면 일대에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경기도청

가뭄 위기, 반도체 강국 한국도 예외 아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이천 공장의 하루 물 사용량은 각각 22만 톤과 23만 톤에 달합니다. 지난해 봄에는 강우 부족으로 저수율이 40%까지 떨어지면서 우려를 빚기도 했는데요.

수자원 문제로 반도체 시설 건설이 지연된 사례도 있습니다. 2024년 구축 예정된 경기도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입니다. SK하이닉스가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여주시의 반발로 설립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지난 30일 반도체 시설 투자에 세제 혜택을 포함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일명 ‘K칩스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생산라인 증설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삼성전자, 물 취수량 증가 제로화 추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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