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판가이아·켈빈클라인 등 유명 패션 브랜드가 러브콜 보낸 재생섬유 ‘인피나’, 그 이유는?

“패션 브랜드 러브콜 잇따라”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패션 전문지 보그비즈니스(Vogue Business)는 세계 패션산업에 영향을 끼친 ‘혁신가 100인’을 선정해 공개했습니다.

혁신가 100인에는 핀란드 재생섬유 스타트업인 인피니티드파이버(Infinited Fiber)의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페트리 알라바가 포함됐는데요. 보그비즈니스는 “인피니티드파이버가 섬유 및 종이폐기물을 섬유로 다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패션산업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촉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2015년 설립된 인피니티드파이버는 오늘날 순환패션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입니다. 폐의류를 비롯해 짚과 같은 농업폐기물을 재생섬유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섬유를 ‘인피나(Infina)’라 부르는데요. 회사 사명(社名)에 들어간 ‘무한하게(Infinite)’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인피나는 계속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자라(ZARA)의 모기업인 인디텍스(Inditex), H&M그룹 등 주요 패션 브랜드는 인피니티드파이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데요.

인피니티드파이버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그리니엄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 핀란드 최대 일간지인 ‘헬싱잉 사노맛(Helsingin Sanomat)’의 종이 신문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도 재생섬유인 ‘인피나(Infina)’의 원료가 될 수 있다. ©Eeva Suorlahti

재활용? 의류폐기물 중 새 옷 되는 비율 1%도 안 돼!👕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이 2018년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연간 9,200만 톤의 의류폐기물이 배출됩니다. 아울러 재활용 가능한 의류가 폐기돼 겪는 경제적 손실 규모만 연간 5,000억 달러(약 580조원)에 이릅니다.

문제는 의류폐기물을 재활용·재사용하는 일이 쉽지 않단 것입니다. 의류폐기함 속에서 일일이 재사용 가능한 옷만 선별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의류 상당수가 면과 폴리에스터(PET) 등 여러 소재가 혼합돼 재활용이 힘듭니다.

설사 재활용되더라도 기존 의류보다 낮은 품질과 가능성으로 재활용되는 ‘다운사이클링’이 되는 경향이 큰데요. 다운사이클링된 의류들도 결과적으로는 다시 폐기물로 변해 매립지로 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엘렌맥아더재단(EMF)는 의류폐기물 중 새 옷이 되는 비율은 채 1%도 안 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 인피니티드파이버의 공동설립자인 페트리 알라바CEO(왼)와 알리 할린 VTT 교수(오)가 인피니티드파이버 공장에서 재생섬유 ‘인피나’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Infinited Fiber

30여년간 연구 끝에 “의류폐기물에서 셀룰로오스 추출” 🧪

패션 기업들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습니다. 이에 수십여년전부터 의류폐기물을 해결하려는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인피니티트파이버도 의류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 중에 탄생한 기업입니다. 핀란드 국립기술연구센터(VTT)의 알리 할린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의류폐기물를 다시 섬유로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할린 교수는 2010년대 의류폐기물 속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다시 섬유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냅니다. ‘셀룰로오스 카바메이트 기술(Cellulose Carbamate Technology)’의 발견이었는데요.

할린 교수는 당시 폐기물 관리 전문가로 활동 중이던 페트리 알라바를 만납니다. 이후 두 사람은 기술 상용화 및 의류폐기물 문제 해결이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피니티드파이버를 설립합니다.

 

▲ 재생섬유 ‘인피나’는 크게 6개의 공정을 거쳐 제작된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수거된 폐의류를 파쇄한다. 이후 비셀룰로오스 성분만 추출해 분말 형태로 만드는데, 이 분말을 용해하면 꿀과 같은 노란 용액이 된다. 회사는 이 용액을 습식방사를 거쳐 재생섬유를 만든다. ©Infinited Fiber

재생섬유 ‘인피나’ 어떻게 생산되나? 🤔

셀룰로오스는 식물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주요성분인데요. 인피니티드파이버는 셀룰로오스 카바메이트 기술을 활용해 의류 및 농업폐기물 속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재생섬유인 ‘인피나’를 만듭니다.

인피나는 크게 6개의 공정을 거쳐 제작됩니다. 먼저 폐의류를 수거하는데요. 수거된 의류에서 단추, 지퍼 등 비섬유 재료를 분해한 후 의류만 잘게 파쇄합니다. 그리고 분리 단계에서 폴리에스터 및 염료와 같은 비셀룰로오스 성분을 제거합니다. 비셀룰로오스 성분들은 인피나 생산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 생산에 사용됩니다.

추출된 셀룰로오스는 요소와 혼합되는 카바메이션(Carbamation) 공정을 거쳐 분말 형태로 거듭납니다. 회사 측은 이를 ‘셀룰로오스 카바메이트 분말’이라 부르는데요. 최대 2년간 보관할 수 있을뿐더러, 의류는 물론 농식품·건설 등 여러 산업에서 재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 카바메이트 분말은 용해된 후 습식방사를 거쳐 결정화돼 재생섬유 ‘인피나’가 된다. 인피나는 제작 후 세척과 건조를 거쳐 주요 공급업체에 전달된다.©Infinited Fiber

이 분말을 용해하면 꿀과 같은 색상과 질감을 가진 액체로 변하는데요. 이후 습식방사(wet spinning)*를 거쳐 셀룰로오스 용액이 결정화되면서 새로운 섬유 ‘인피나’가 탄생하는 것. 인피나를 세척 및 건조만 하면 끝인데요.

인피니티드파이버는 인피나 생산 공정에 화학물질이 투입되지 않을뿐더러, 질적으로도 기존 섬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또 인피나의 수명이 다하면 다른 폐기물과 함께 동일한 제작 과정을 거쳐 재활용될 수 있는데요. 기존 물질(폐기물)이 순환하는 덕에 생물다양성 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합니다.

*습식방사(wet spinning): 섬유를 만드는 방법 중 방법 중 하나로 ‘용액방사’로도 불린다. 말 그대로 용액을 이용해 실과 같은 섬유를 뽑는 기술이다.

 

▲ 재생섬유 ‘인피나’로 만든 패딩을 입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Fanny Haga, Infinited Fiber

50여개 기업 재생섬유 ‘인피나’에 관심 보여…“패션 브랜드 러브콜 잇따라” ❤️

할린 교수가 연구 인피나 개발 당시 직면한 고민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복잡한 생산 공정을 단순화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패션 기업들이 이 기술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할린 교수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인피나를 처음 선보였을 당시 50개 이상의 기업이 관심을 보였는데요.

앞서 설명한 대로 H&M그룹, 판가이아(Pangaia), 인디텍스(Inditex) 등 주요 패선 기업들이 잇따라 인피니티드파이버에게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 재생섬유 인피나로 H&M이 만든 청바지(왼), 판가이아가 만든 티셔츠(중)의 모습. 마리아 오히살로 핀란드 전(前) 내무장관은 2019년 인피나로 만든 드레스(오)를 입고 핀란드 대통령궁의 연례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Infinited Fiber

지난 4월 미국 유명 패션 브랜드 켈빈클라인과 타미힐피거의 모기업인 PVH는 인피니트파이버와 다년간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PVH는 유럽의 타미힐피거 제품을 시작으로 인피나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추후 켈빈클라인 제품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같은달 스포츠 브랜드 판가이아는 인피나 100%로만 만든 티셔츠를 공개했는데요. 덴마크 패션 브랜드 가니(GANNI)도 올해 코펜하겐 패션 위크에서 인피나로 만든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자라의 모기업인 인디텍스는 인피니티드파이버와 지난 6월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인디텍스는 오는 2024년부터 3년간 인피나를 공급하는데요. 당시 인디텍스는 인피나 전체 생산량의 약 30%를 구매할 것을 약속했는데, 계약금으로만 1억 유로(약 1,374억원)로 알려졌습니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패션 포 굿(Fashion for Good)’ 박물관에 전시된 ‘뉴 코튼 프로젝트’의 모습. 왼쪽에 있는 운동복은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가 재생섬유 인피나로 만들었다. ©Infinited Fiber, 트위터

이밖에도 인피니티드파이버가 주도하는 ‘뉴 코튼 프로젝트(New Cotton Project)’에는 아디다스, 나이키, 스텔라 맥카트니 등 주요 패션 브랜드를 포함해 총 12개 기관이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3년간(2020~2022년) 인피니티드파이버가 재생섬유인 인피나를 제공하고, 패션 브랜드들이 해당 소재로 의류와 수거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인데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요 브랜드들은 순환패션 생태계의 잠재성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인피니티트파이버는 2020년부터 소규모 분량의 인피나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운영 중입니다. 스웨터, 티셔츠 등 제조사에게 인피나를 공급 중인데요.

현재는 4억 유로(약 5,523억원)를 투자받아 핀란드 북부 해안도시 케미에 인피나 생산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새로운 공장의 연간 재생섬유 생산 능력은 약 3만 톤인데요. 회사 측은 “약 1억 장의 티셔츠를 만드는데 필요한 섬유와 같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공장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예정인데요.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도 정수를 거쳐 다시 재사용할 계획이라고 회사 측은 이야기했습니다.

해당 공장은 당초 202년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2026년으로 가동이 1년 연기됐습니다.

 

👉 핀란드에 ‘인피나’가 있으면, 스페인에는 ‘리뉴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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