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옷이 미세플라스틱 배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니엄에서 전해드린 적 있죠. 또 수거된 헌옷이 재활용되지 않고 개발도상국에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폐의류·폐원단 등 섬유 폐기물을 다시 옷을 만들 수 있는 소재로 ‘업사이클링’하는 기업이 있다는데요. 이번 콘텐츠에서는 진정한 순환 패션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업의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옷에서 옷으로? 의류 재활용이 쉽지 않은 이유 👕

의류 폐기물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재사용’입니다. 깨끗하게 입은 옷을 그대로 또는 수선해서 다시 입는 거죠. 다른 방법은 기계적 재활용인데요. 단추나 지퍼 등 소모품을 분리하고, 옷은 잘게 파쇄해 다른 제품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섬유가 잘게 쪼개지기 때문에 다시 옷을 만드는 섬유로 활용하는 것은 까다로운데요. 이 경우 주로 솜으로 활용하거나 직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압축시켜 펠트 직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단열재, 담요, 카펫 등 특정 용도로만 활용할 수 있었죠.

이처럼 원래 재료보다 낮은 품질과 기능성으로 재활용되는 ‘다운사이클링’은 폐기물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자원으로 순환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2·3차적 활용이 어려워 결국은 폐기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죠. 이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순환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계적 재활용이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합니다.

 

© (왼) 소재가 폐원단이었음을 알려준 서큘로오스의 태그 (오) 서큘로오스로 만든 재활용 섬유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레티시아 로카솔라노 스페인 왕비

스페인 왕비의 드레스가 된 재활용 섬유 펄프, 서큘로오스 👑

스웨덴의 섬유 업사이클링 기업인 리뉴셀(Renewcell)은 낡은 청바지를 다시 옷으로 만든 방법을 찾아낸 기업입니다. 재활용 섬유라서 품질이 안 좋을까 걱정되신다고요? 리뉴셀은 재활용 섬유 펄프인 서큘로오스(Circulose)는 무려 스페인 왕비의 드레스에도 사용됐습니다. 위 사진은 지난해 11월, 스페인 국왕 부부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인데요. 레티시아 로카솔라노 스페인 왕비가 입었던 짙은 파란색 드레스가 바로 서큘로오스가 사용된 옷이었단 것.

해당 드레스는 유명 패션 브랜드인 H&M의 컨셔스 컬렉션(Conscious Collection)에서 선보였는데요. H&M은 지속가능한 산림 인증인 FSC 인증을 받은 목재로 만든 비스코스 섬유 50%와 리뉴셀의 서큘로오스 원단 50%를 혼합해 해당 컬렉션을 제작했죠.

사실 H&M은 일찍부터 리뉴셀의 잠재력을 알아봤는데요. H&M은 리뉴셀이 설립된 2012년부터 긴밀하게 협력해 왔고, 2017년에는 아예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 Circulose 제공

H&M이 주목한 리뉴셀의 기술은? 🇸🇪

리뉴셀의 창립자는 스톡홀름에 있는 KTH 왕립 공과 대학의 과학자 그룹으로,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연구를 하던 중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셀룰로오스는 식물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주요성분입니다. 기존의 섬유 기업들은 목재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 펄프로 비스코스 원단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리뉴셀은 면에도 셀룰로오스가 풍부하단 점에 착안했습니다. 면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가장 순수한 유형의 셀룰로오스이기 때문인데요. 순환(Circularity)과 셀룰로오스(Cellulose)를 합친 이름인 제품명 서큘로오스(Circulose)에서도 지속가능한 섬유에 대한 리뉴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리뉴셀은 비스코스 섬유와 폐원단·폐섬유를 분해해 서큘로오스를 생산합니다. 낡은 청바지, 의류 공장에서 발생한 자투리 원단 등 재사용 불가능한 의류폐기물이 리뉴셀에겐 풍부한 원료가 된단 것! 리뉴셀은 의류폐기물을 수거해 단추와 지퍼를 제거하고, 이후 파쇄하는 공정을 거치는데요. 이후 친환경 화학물질을 활용해 폴리에스테르, 플라스틱 등 비(非)셀룰로오스 물질과 기타 오염물을 제거합니다. 마지막으로 셀룰로오스만 남은 혼합물을 건조하면 서큘로오스가 탄생하는데요. 전체 공정은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로 구동된다고. 이 서큘로오스는 공장으로 보내져 원사와 원단으로 제작돼 다양한 패션 브랜드에 사용되죠.

 

+2020년 타임지 선정 최고의 발명품에 선정돼 🖐️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20년 ‘최고의 발명품 100선’에 리뉴셀의 서큘로오스를 선정했는데요. 매년 전체 직물의 85%가 매립지로 보내지는 상황. 리뉴셀이 개발한 서큘로오스는 의류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Alexander Donka, Circulose 제공

‘보틀 투 보틀’, 옷에서 옷으로 순환되도록 👗

리뉴셀이 서큘로오스를 만드는 방식처럼, 섬유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새로운 섬유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화학적 재활용’이라 부르는데요. 리뉴셀 외에도 여러 기업이 화학적 재활용을 시도하고 있으나, 섬유는 기본적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입니다. 다채로운 모양, 형형색색의 염색, 다양한 소재의 종합체이기 때문이죠.

오늘날 상당수 패션 브랜드가 폐페트병을 가지고 재생 섬유를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폐페트병을 녹여서 형태를 바꾸기 쉬워 섬유로 생산하기 용이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틀 투 보틀,’ 폐페트병은 페트병으로만 재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폐페트병이 섬유로 재활용된 이후에는 그 옷이 다시 재활용이 어려워 결국에는 폐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페트병으로 다시 만들어져야 할 자원이 옷으로 가기 때문에 새로운 페트병을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자원이 투입된단 문제들로 이어지죠.

그간 우리나라는 교차 오염의 우려로 폐페트병으로 페트병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농약이나 기타 화학물질이 담긴 페트병이 식용품에 쓰이면 어떡하냐는 우려가 있었죠. 그러나 지난해인 2021년 12월, 환경부가 폐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순환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행정 예고했습니다. 이는 2020년 12월에 깨끗한 폐페트병만 수거할 수 있도록 투명페트병 별도배출제를 시작한 지 1년 즈음 될 무렵이었죠. 즉, 우리나라도 보틀 투 보틀이 가능해진 상황.

패션산업도 이제 폐페트병을 페트병에 양보하고. 옷에서 옷을, 진정한 순환 패션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