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스타트업 에너드레이프(Enerdrape)가 도시 지하 인프라에 축적된 열을 활용해 건물의 냉난방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열 패널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2019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지반을 천공하지 않고도 설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특히 탈탄소화가 어려운 노후 다가구 주택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블룸버그NEF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난방 부문의 탈탄소화는 약 5천억 달러(약 700조 )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도시 지하공간이 에너지원으로…새로운 지열 기술 상용화
에너드레이프의 기술은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EPFL)의 리에스 랄루이(Lyesse Laloui) 교수가 이끈 수십 년간의 연구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다섯 개의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한 인물로, 지난 15년간 지하 구조물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연구해왔으며, 2015년에는 열교환 패널의 초기 프로토타입을 개발했습니다.
에너드레이프는 콘크리트로 된 지하 구조물에 부착 가능한 특수 패널을 통해 지열과 공기 중 열을 흡수합니다. 지하 공간이 뜨겁지 않더라도 지면 몇 피트 아래의 온도는 연중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여름에는 건물에서 발생한 열을 흡수해 냉방에 활용하고, 겨울에는 지면을 일종의 배터리처럼 열원으로 사용합니다. 이 시스템은 바닥 면적 약 10제곱미터당 1개의 패널을 설치해야 하며, 열매체를 통해 히트펌프와 연결되어 작동합니다.
에너드레이프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알레산드로 로타 로리아(Alessandro Rotta Loria)는 이 기술을 “태양광 대신 지열을 활용하는 지하 태양 패널”에 비유했습니다. 회사 측은 해당 패널이 최대 10층 높이의 건물에 대해 공간 난방, 냉방, 온수 공급까지 충족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기술의 실증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너드레이프는 유럽 최대의 유틸리티 업체 중 하나인 엔지(Engie)와 협력해, 프랑스 최대 공공임대주택 공급업체 파리 하비타트(Paris Habitat)의 72가구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총 145개의 패널을 통해 연간 70메가와트시(MWh)의 열을 생산해, 해당 가구의 온수 수요 중 25%를 충족시키고 매년 15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저감하는 효과를 냅니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수요는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뉴욕주에서는 캐시 호컬(Kathy Hochul) 주지사가 2030년까지 200만 가구를 전기화하거나 전기화 준비가 완료된 주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해, 뉴욕시 탄소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건물 부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NEF는 난방 부문의 탈탄소화가 전 세계적으로 약 5천억 달러(약 700조 원) 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기존의 지열 시스템은 높은 비용과 지반 천공할 공간이 부족해 도시 환경에서는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에너드레이프의 비굴착 방식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에너드레이프의 기술은 도시지역과 노후화된 기존 건물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존 건축물의 탈탄소화는 리모델링을 통한 단열재 보강, 고효율 냉난방 기구 설치, 단열 창호 교체 등으로 한정되어 감축 여력이 높지 않았습니다.
블룸버그NEF 인터뷰에서 기후 기술 액셀러레이터 ‘더 클린 파이트(The Clean Fight)’의 프로그램 책임자 태처 벨(Thatcher Bell)은 “저소득층 주택은 일반적으로 개조 비용이 높은 노후 건물이 많고, 재정적 제약과 다수의 이해관계자 때문에 새로운 기술 도입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에너드레이프를 노후 주택의 배출량을 저비용·저공사 방식으로 줄이면서도 주민들을 이주시키지 않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스타트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러한 솔루션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블룸버그NEF의 분석가 스테파니 디아즈(Stephanie Diaz)는 “이런 방식을 시도하는 기업은 드물다”며 “에너드레이프는 건물 탈탄소화에 있어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 시스템은 초고층 건물에는 적용이 제한적입니다. 로타 로리아는 “60층짜리 고층 건물에서는 성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