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2천억 달러 기부 후 재단 해산 선언

2045년까지 모든 자산 환원… 기후대응 약화 우려 속 ‘빈곤·보건’ 집중

빌 게이츠는 앞으로 20년간 자신의 재산 대부분인 2천억 달러(약 280조 원)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뒤, 2045년 12월 31일 재단을 영구 해산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8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의 결정은 재단이 지난 25년간 이뤄온 성과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게이츠 재단은 지금까지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이상을 인류 건강과 개발을 위해 지원했으며, 향후에는 이를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게이츠는 이번 기부 결정의 배경으로 철학적 신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 부자로 남는 사람은 불명예스럽다”는 철강재벌 앤드류 카네기의 말을 인용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본인의 블로그에서는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말하겠지만, ‘그가 부자로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게 하겠다”며 개인적 신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약 80% 삭감하고 글로벌 원조 재원이 크게 줄어든 시점에 이뤄졌습니다. 게이츠는 “현 상황에서는 시의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지난 25년간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이뤘다”며 낙관적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 빌 게이츠는 2045년까지 총 2천억 달러를 재단에 기부하고, 같은 해 재단을 해산할 계획이다. ©Gates Notes

 

기후변화 대응 약화 우려, 재단의 방향 전환

빌 게이츠의 2천억 달러 기부 계획이 발표되자, 일각에서는 그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게이츠는 기후 문제를 핵심 과제로 삼아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그는 기후 위기 해결을 주요 우선순위로 설정했으며, 2021년에는 『기후 재앙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초부유층 투자자들을 결집한 기후 기술 투자 펀드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가지 조치가 그의 기후 리더십 의지에 의문을 더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는 미국 기후 정책팀과 유럽팀, 그리고 파트너십 업무를 담당하던 인력들을 해고했습니다. 단순한 구조조정을 넘어선 이 같은 축소는, 게이츠가 기후 분야에 대한 관심을 점차 줄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이런 움직임이 그의 우선순위 변화 신호일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애틀의 기후 투자 파트너 수잔 수는 “게이츠의 결정은 부정적으로밖에 읽을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녀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1월 취임 직후 기후 추적·예방·대응 프로그램을 해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게이츠의 리더십 공백이 더욱 심각한 파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스텝체인지 공동 창업자이자 기후 투자 기업의 제너럴 파트너인 아나이 샤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는 “게이츠 재단이 그의 주요 기부 수단이 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기후 관련 자금이 대폭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하면서도, “기후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에 그는 간접적으로 여전히 이 영역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기후 분야에 대한 게이츠의 재정적 기여가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는 지난 7월 약 8억 3,900만 달러(약 1조 1,755억 원) 규모의 신규 펀드 조성을 진행 중입니다. 게이츠는 또 다른 기후 프로젝트인 테라파워(TerraPower)의 주요 투자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은 와이오밍에 첫 차세대 원자로 건설을 추진 중이며, 향후 글로벌 배치할 예정입니다.

 

기후 아닌 보건·빈곤에 방점 찍은 자선 전략 전환

게이츠 재단은 향후 20년간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추진할 계획이며, 이 중 일부는 기후변화와도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첫째, 예방 가능한 원인으로 인한 산모와 아동의 사망을 근절하는 것입니다. 1990년에는 5세 미만 아동의 연간 사망자가 1,200만 명에 달했지만, 2019년에는 50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둘째, 다음 세대가 치명적인 전염병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재까지 인류가 박멸한 질병은 천연두뿐이지만, 게이츠는 앞으로 소아마비와 기니웜도 이 목록에 추가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셋째, 수억 명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해방시켜 더 많은 국가가 번영의 길로 나아가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세 번째 목표에서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농업 혁신이 중요한 전략으로 제시됐습니다.

게이츠는 “소작농은 지역 경제와 식량 공급의 중추”라며, 기후 변화에 취약한 농민들이 열악한 조건에서도 더 많은 수확을 낼 수 있도록 회복력 있는 종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적도 인근에 사는 농부들보다 기후변화로 더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마크 서즈먼 게이츠 재단 CEO는 재단의 기후 관련 접근법에 대해 “우리는 자선 자본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교차점에 집중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 등으로 타격을 입는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저소득 농가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기후로 인한 말라리아 등 질병 확산 문제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재단의 이러한 접근은 온실가스 감축 같은 직접적인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그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고 적응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게이츠는 개인 차원에서는 브레이크스루 에너지와 테라파워를 통해 청정에너지 기술과 차세대 원자로 등 기후변화 완화에 초점을 맞춘 투자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단과 개인 차원의 전략은 방향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재단 자금 집중과 2045년 해산 결정은, 게이츠가 향후 기후변화보다는 글로벌 보건과 빈곤 퇴치에 더 우선순위를 둘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저작권자(©) 그리니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쓰기

관련 기사

기후·환경

전 세계 320억 달러 손실…2℃ 상승 시 수면 건강 부담 최대 3배 증가

기후·환경

대서양 거대 해류 둔화, 미국 동북부 해안 홍수 위험 증폭시킨다

기후·환경

기후위기, 알고도 은폐했다…석유기업 ‘수십 년의 기만’ 드러나다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