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알고도 은폐했다…석유기업 ‘수십 년의 기만’ 드러나다

1959년 경고 무시, 2025년까지 왜곡…美 40여 지자체, 쉘·엑손 등 소송 진행 중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수십 년간 기후 위기 정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왜곡했다는 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

미국 과학자연맹(UCS)은 2025년 5월 14일 ‘Decades of Deceit(수십 년의 기만)’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 BP, 엑손모빌, 쉐브론 등 주요 기업들이 이미 1950년대부터 기후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관련 과학 정보를 축소하거나 혼란을 조장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이들 기업이 미국석유협회(API)와 공조해 과학의 불확실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정책 결정을 지연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입증하는 내부 문서와 증언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결국 이 같은 조직적 은폐와 방해 전략은 전 세계의 기후 대응을 수십 년간 늦추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미국 내 하와이, 미시간, 뉴욕, 버몬트 네 개 주와 40여 개 지방정부는 해당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해당 소송이 기후 책임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2024년 5월 연방법원을 통해 사건을 연방 차원으로 이관하려는 법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책임 회피가 궁극적으로 ‘기후정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하며, 관련 기업들이 기후 피해 비용을 분담해야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석유기업들이 기후 대응을 지연시킨 대표적인 네 가지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 A는 1982년 엑손 과학자들이 보고한 지구온난화 예측과 비교하여 역사적으로 관측된 온도 변화(빨간색) 및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파란색). B는 1977년부터 2003년 사이 회사 내부 메모 7개와 상호 검토 간행물 5개를 예측 요약(회색선)한 그래프. C는 과거 지구평균 온도 기록을 15만년 도안 모델링한 시뮬레이션 그래프. ©Supran et. al.

 

조기 인식과 조직적 은폐

석유기업들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온실가스 배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1959년, 미국석유협회(API)가 콜롬비아대에서 주최한 회의에서 과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과 대도시 침수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엑손과 쉘 등 주요 기업들이 내부 보고서를 통해 CO₂ 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과 함께,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내부 분석은 1988년 보고서에서도 반복됐으며, 보고서에는 “조치가 늦으면, 사후 대응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보는 공식 발표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동시에 기업들은 대중을 대상으로 기후과학에 대한 의심을 조장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쳐, 과학적 사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지연의 과학’으로 시간 끌기

보고서는 석유기업들이 과거에는 기후위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가, 이후에는 정책 결정을 늦추기 위한 점진적 지연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과학적 합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사회적 혼란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됐습니다. 1998년 미국석유협회(API)의 내부 문건에는 “대중이 기후과학에 의문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전략적 목표”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해당 문건은 지연 전략의 대표적 증빙으로 거론됩니다.

제3 조직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정보를 왜곡하는 방식은, 과거 담배 산업이 과학적 증거를 회피할 때 사용한 전술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보고서에는 2021년 엑손의 고위 임원이 프런트 그룹을 활용한 로비 활동과 혼란 조장 전략을 시인한 사례가 함께 담겼습니다.

정책 개입을 위한 방해 전략은 재정적 수단으로도 동원되었습니다. 2023년 셰브론은 캘리포니아주의 기후세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약 700만 달러(약 98억 원)를 투입했고, 2025년 유출된 해킹 문건에서는 엑손이 ‘독립 연구기관’에 자금을 제공한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➌ 기후 소송 확산과 트럼프 정부의 대응

현재 미국 내 약 40개 지방정부와 캘리포니아, 뉴욕, 미시간, 하와이, 메릴랜드 등 주요 주정부는 석유기업을 상대로 허위 광고와 공중 보건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이들이 대표하는 인구는 미국 전체의 4분의 1을 넘습니다.

이와 맞서 트럼프 행정부는 2024년 5월, 해당 소송들을 연방법원으로 이관하는 절차에 착수하며, 사실상 석유업계를 방어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석유업계 또한 연방 차원의 ‘책임 차단’ 전략과 면책 법안 추진을 병행하며 정치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보고서는 “정치 로비와 법적 지연 전략은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는 또 다른 장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과거 왜곡 바로잡기 위한 분기점

UCS는 “과거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은 정확한 책임 규명과 비용 분담”이라고 강조합니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캐시 멀비(Kathy Mulvey)는 “책임 있는 기후 대응을 위해 공공 정책은 기업이 아닌 사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UCS는 석유기업들이 과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기후 피해 복구와 적응을 위한 재원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와 함께 과학 왜곡의 중단, 그린워싱 근절, 배출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도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기후 대응 지연이 초래할 심각한 경제적 파장을 경고한 연구와도 연결됩니다. 2024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행동이 지연될 경우 글로벌 경제 손실이 3.6조 달러(약 5,040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UCS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 소송이 기업의 책임 전가를 차단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제 과거의 침묵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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