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의 청소년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끝내 기각했습니다.
소송은 미국 비영리 로펌 ‘아워칠드런트러스트(Our Childrens Trust)’의 지원으로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지난 2015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했습니다.
해당 소송은 대표 청구인인 켈시 줄리아나의 이름을 따 ‘줄리아나 대 미국 소송’으로 불립니다. 일명 ‘줄리아나 사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청소년 vs 정부 : 기후정의를 외치다>를 통해 공개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전 세계 청소년 기후소송을 촉발했단 사건이란 점에서 기후소송의 교과서란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이하 연방항소법원)은 해당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미국 12곳에 있는 연방항소법원은 한국으로 치면 2심에 해당합니다.
지지부진했던 ‘줄리아나 기후소송’…美 법원 “기후변화는 정치적 이슈” 🤔
줄리아나 소송은 여러 절차적 문제로 인해 약 9년간 판결이 미뤄져 왔습니다.
원고들은 미 정부의 현 에너지 정책이 기후대응에 충분하지 않아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2100년까지 미 정부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50ppm을 넘지 않도록 배출량 감축 조처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1월 연방항소법원 재판관 3명 중 2명의 의견으로 소송파기가 결정됩니다.
연방항소법원은 기후대응은 입법부나 행정부의 정책 결정 사안이란 입장을 고수합니다. 사법부가 기후대응에 간섭할 권한이 없단 것이 요지였습니다.
미 법원은 기후문제에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2009년 9월 미 캘리포니아북부연방지방법원 판결과 연결돼 있습니다. 엑슨모빌 등 주요 온실가스 기업 24곳을 상대로 진행된 기후소송 결과, 당시 법원은 기후문제는 정치문제로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해당 판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연방항소법원 판결 직후 해당 소송은 오리건주 지방법원으로 파기 환송됩니다. 그리고 2023년 6월 오리건주 지방법원은 청구인 측이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결합니다.
이에 청구인 측은 2023년 6월 연방항소법원에 소송을 다시 제기합니다. 같은달 미 법무부 역시 연방항소법원에 해당 소송 기각을 요청합니다.
연방항소법원 “법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소송만 다뤄야” 🙅
이번 소송 검토에 참여한 연방항소법원 판사 3인은 2020년에 해당 사건이 소송파기가 아닌 기각됐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책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아야 한단 관례를 근거로 내린 판단입니다.
소송을 맡은 줄리아 올슨 변호사는 로이터통신에 “청구인들은 제9 연방항소법원 판사 11인 전원으로 구성된 판사진으로 하여금 사건을 재심리를 요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소장을 수정해 다시 제출하겠단 의사입니다.
허나, 연방항소법원은 “소송은 법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피해를 다뤄야 한다”며 소장 재접수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나아가 지방법원이 해당 소장을 수정해 다시 소송을 제기할 여지가 없음을 판결문에 분명히 판시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과거 판례를 미뤄볼 때 소장 재접수 요청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또 법원은 소송을 통해 결과가 나와도 원고들의 피해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줄리아 올슨 청구인 대표변호사 “비극적이고 불공정한 판결” ⚖️
올슨 변호사는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비극적이고 불공정하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소송을 지원한 아워칠드런트러스트는 성명을 통해 “어른들은 계속 심각하고 해로운 방식으로 청소년을 차별하고 있다”며 “비극적이고 부당한 판결이나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단체는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제9 연방항소법원 판사진이 소송을 재검토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청구인 중 한 명인 에이버리 맥레이는 “정부에게 10살 때부터 이 사건을 들어달라고 간청해 왔다”며 “이제는 거의 19살이 다 돼 간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같은 파괴적인 결정이 내릴 때마다 미국이 민주적이란 희망을 점점 더 잃어간다”고 그는 꼬집었습니다.
미 사법부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공식 입장 표명을 거부했습니다.
줄리아나 소송 기각 결정, 몬태나주 등 美 기후소송에 영향 주나? 🏛️
한편, 이번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이 미국 내 다른 기후소송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이목이 쏠립니다. 최근 스위스 여성 노인들이 유럽인권재판소에 낸 기후소송에서 승소한 판결과는 대치하기 때문입니다.
미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산하 사빈센터에 따르면, 2022년까지 미국 내에서 제기된 기후소송 건수만 1,522건에 이릅니다. 전 세계 기후소송의 약 70%가 미국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하와이주에서도 청소년들이 주축으로 주정부를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원고 측은 주당국의 고속도로 사용 홍보가 환경보호 의무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소송은 6월에 재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몬태나주에서도 청소년 청구인이 제기한 기후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작년 8월 몬태나주 법원은 원고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몬태나 주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화석연료 정책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주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단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해당 소송 역시 아워칠드런트러스트가 맡아 진행 중입니다.
이와 관련해 기후전문매체 인사이드클라이밋뉴스는 “(기후소송의 결과는) 각국의 법률 시스템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포함한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컨대 일부 미국 관료와 주정부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을 부정하는 반면, 유럽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기후변화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 오랫동안 폭넓은 합의를 해왔단 것이 매체의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