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명 완성차업체인 혼다자동차와 닛산자동차가 합병 추진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양사는 지난 23일 일본 도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합병 추진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혼다와 닛산이 합병할 경우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세계 3위 완성차업체가 될 수 있단 전망이 나옵니다.
이들은 합병 추진 배경으로 비야디(BYD) 등 중국 기업의 경쟁과 전기자동차 전환 극복을 꼽았습니다. 기존의 경영 효율화 방식으로는 완성차업계의 거대한 변화에 따라가기 어렵단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온다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 시기”라며 “(양사는) 대담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혼다·닛산, 협상 통해 2026년 신규 지주사 설립 목표 🎯
양사는 우선 2025년 6월까지 합병과 관련된 협상을 마친다는 계획입니다.
약 1년간 절차를 밟아 이듬해(2026년) 8월경 새로운 지주회사를 설립합니다. 이후 도쿄 증권시장에 상장한다는 구상입니다. 두 기업이 신규 지주회사 산하 자회사로 들어가는 형태를 취할 것이라고 양측은 밝혔습니다.
이 경우 각 기업의 상장은 폐지되나 혼다와 닛산 브랜드는 유지됩니다. 신차 개발의 경우 각각 주도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미쓰비시자동차 역시 합병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의 합병 여부는 내년 1월 말 이전에 발표될 것이라고 양사는 밝혔습니다.
혼다와 닛산이 계획대로 합병에 성공하면 작년 판매량 기준으로 735만 대 규모의 완성차그룹이 탄생하게 됩니다. 같은 기간 판매량 약 730만 대로 세계 3위를 차지한 현대차를 앞섭니다.
2021년 이래 최대 개편 “중국·전기차 대응 손잡아야” 🤝
양사의 합병 예고는 2021년 스텔란티스 출범 이후 자동차업계 최대의 개편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당시 이탈리아·미국 합작사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 그룹 PSA가 합병하며 세계 4위의 자동차업체가 탄생했습니다. 유럽과 북미 시장 영향력 확대가 합병의 주요 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은 자동차 산업의 신흥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바로 중국과 전기차입니다.
기자회견에서 도시히로 사장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등 새로운 참여자의 부상이 자동차 산업을 상당히 변화시켰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는 2030년까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패배할 것”이라며 위기의식을 드러냈습니다.
앞서 양사는 올해 3월 전기차 관련 협업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배터리·소프트웨어 등 전기차 관련 핵심 구성요소 개발에 협력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일본 2·3위 기업이 손을 잡으면 전기차 개발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전략이 깔렸습니다.
2023년 실적 부진 악화에 ‘합병’ 선택 📉
혼다와 닛산, 양사가 협력을 넘어 합병에 나선 것은 급격한 사업 실적 악화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일본 완성차업계는 2000년대부터 일찍이 중국 정부에 진출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습니다. 2020년에는 중국 시장의 국가별 승용차 점유율에서 일본이 2위를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BYD 등 중국 기업이 성장하며 상황은 역전됐습니다.
혼다의 경우 올해 3분기까지(1~9월)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습니다. 3분기(7~9월) 영업이익은 2,579억 엔(약 2조 3,900억 원)입니다. 마찬가지로 전년 동기 대비 15%가량 줄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은 7분기 만에 처음입니다.
이는 중국 내 판매량이 29% 감소한 영향이 컸습니다. 지난 3년간(2020~2022년) 혼다의 주요 자동차 시장이 중국이었단 점에서 향후에도 타격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닛산의 실적 부진은 더 심각합니다. 2020년 연간 700만 대였던 생산용량은 현재 500만 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닛산은 지난달 애널리스트 설명회에서 2024년 생산량이 회계연도 기준으로 연간 320만 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측은 같은달 세계 생산용량 20%와 직원 9,000여 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도 발표했습니다.
업계 관계자, 혼다·닛산 합병에 ‘가시밭길’ 경고 🚨
즉, 두 기업은 합병을 통해 실적 부진 등 위기에 대응한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이 성공하기 어렵단 전직 관계자의 분석이 나옵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전(前) 회장은 같은날(23일) 일본 기자들과의 화상 기자회견에서 합병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밝혔습니다. “두 기업은 비슷한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어 사업에서의 보완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분석입니다.
물론 닛산과의 악연이 곤 전 회장의 발언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곤 전 회장은 2019년 ‘회사법’을 위반한 특별배임 혐의로 기소를 당한 바 있습니다. 이후 그는 일본 당국을 피해 레바논으로 탈출한 상황입니다.
이와 별개로 기업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합병이 어려울 수 있단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닛산의 임원 구조로 인해 구조조정 등 내부 개혁이 더디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혼다·도요타보다 임원이 많을뿐더러, 프랑스 등 외국 국적의 임원도 다수 포함돼 내부 소통이 지연되고 있단 설명입니다.
이에 내년 1월 인사 발표 등에서 닛산이 내부 혁신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혼다 측에서 합병 반대에 나설 수 있다고 매체는 보도했습니다.
스기우라 세이지 토카이도쿄연구소 분석가 역시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혼다가 닛산의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를 보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베 사장이 합병 과정에서 내부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2026년 8월까지 합병을 완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