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이상기후 현상이 증가하며 각국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그 일환으로 2025년부터 모든 기업의 재난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계획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각) 이같은 소식을 전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논평했습니다.
법안에 따르면, 이탈리아에 사무소를 둔 국내외 기업은 모두 자연재해로 인한 자산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정부, 기업 보호 위해 재난보험 가입 의무화 🏦
해당 법안은 작년 12월 30일 도입돼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지난해 이탈리아 정부는 재난 위험으로부터 국가 생산기반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산법’ 개정안을 제정했습니다. 개정안에는 모든 기업의 재난보험 가입 의무화 규정이 포함됐습니다. 규모나 인원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 가입해야 합니다. 단, 농업 경영인 등 일부 업종은 의무 가입에서 제외됐습니다.
기업은 홍수·산사태 등 재난으로부터 기업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취해야 합니다. 법을 준수하지 않은 기업은 재난 피해 시 구호금·공공 보조금 등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험사는 어떤 기업의 보험 가입도 허용해야 합니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즉 손해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가입을 거부할 수 없단 뜻입니다. 보험료와 보상 한도는 각 보험사가 정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가 특정 기업의 재난보험 가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과태료는 최소 10만 유로(약 1억 4,900만 원)에서 최대 50만 유로(약 7억 4,600만 원)에 달합니다.
당국은 이탈리아의 수출보험공사(SACE)를 통해 재보험을 제공합니다. 이를 위해 향후 3년간(2024~2026년) 약 50억 유로(약 7조 4,600억 원)의 기금이 새롭게 조성됩니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재정적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탈리아 기업, 지진·홍수 대비 5%에 불과🌊
법안의 배경으로는 유럽 대륙이 전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온도가 상승하는 지역이란 점이 자리합니다.
유럽환경청은 지난 14년간(2009~2023년) 기후재난으로 인한 유럽연합(EU)의 경제적 손실을 1,620억 유로(약 241조 원)로 추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가장 높은 경제적 손실을 입은 국가로 꼽혔습니다.
세계적 재보험사 스위스리의 올해 3월 보고서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지난 10년간(2014~2023년) 기후재난 보장격차도 80%에 달합니다. 보장격차는 보험으로 보호되지 않은 기후 관련 경제적 손실의 비율을 의미합니다.
같은기간 이탈리아는 EU의 평균 보장격차 75%보다 높은 편입니다.
현지 기업들의 재난보험 가입률은 현저히 낮습니다. 올해 9월 이탈리아 시민보호부는 자국 기업의 5%만이 지진과 홍수 위험에 대비한 정책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시민보호부는 재난보험 의무 가입을 향후 가정 단위로도 확대할 방침입니다.
2025년 1월 시행…기금 고갈·보험사 이전 등 우려 높아 😓
한편, 일각에서는 법안 시행이 연기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옵니다.
매체는 대형 재해가 발생할 경우 재보험을 뒷받침하는 기금이 금세 고갈될 우려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페트라 힐케마 유럽보험연금청(EIOPA) 의장은 보험사의 가입 거부 불가 조항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모든 고객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곧 손실에 상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보험사들이 이를 보험료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손실 부담을 피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떠날 수 있단 분석도 있습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최대 보험사인 스테이트팜은 작년 5월 주 전역에서 주택 소유자에 대한 신규 손해보험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가뭄과 이상고온으로 캘리포니아주 산불이 더 빈번해지고 대형화되며 피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남부 루이지애나주에서는 2020년대 들어 허리케인 피해를 연이어 겪으며 민간보험사 12곳이 폐업했습니다.
한편, 산업계에서는 재난보험 의무화가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에마누엘레 오르시니 이탈리아산업총연맹 회장은 “문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기업가들이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높은 보험료를 우려해 지역 기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단 뜻입니다.
유럽 금융기관 “재난 대비 보험료 할인 등 대처 필요” 💰
결국 기후변화가 심화함에 따라 재난보험은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난의 빈도·규모 증가로 피해보상 규모의 증가는 불가피합니다. 보험료가 너무 낮으면 보험사의, 너무 높으면 피보험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앞서 작년 9월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보험연금청은 보고서에서 보험사들이 피보험자들에게 재난 대비 조치를 촉구할 수 있는 보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임팩트 언더라이팅(Impact Underwriting)’입니다. 재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정책입니다. 홍수 방지시설이나 실시간 조기경보 시스템 설치 등이 해당됩니다.
기관들은 또다른 대안으로 ‘대재해채권(Catastrophe Bond)’ 활성화도 제언했습니다. 재해보험의 지급 위험을 헤지펀드 등 민간 시장으로 이전해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쉽게 말해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투자자는 수익을 얻습니다.
재해가 발생할 경우 채권 발행 대금은 보험사의 보상금 재원으로 활용됩니다. 유럽중앙은행과 유럽보험연금청은 미국 시장에서는 지난 2년간 대재해채권이 확산된 것과 달리 유럽은 뒤처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힐케마 의장은 이같은 조치가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