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모델은)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전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위기의 시대, 전환을 도와준다.”
도넛경제학액션랩(DEAL)의 레오노라 그라체바 박사가 남긴 말입니다.
그라체바 박사는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넛도시’ 포럼에 참석해 해외의 도넛경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행사는 녹색전환연구소·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공동 주최했습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워크숍에는 약 170명이 참석했습니다.
도넛모델은 공동체와 지구 모두의 공존을 추구합니다.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 동시에 지역 공동체가 사회·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위한 전환 모델입니다. 영국 경제학자인 케이트 레이워스 박사가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도넛모델, 지역 전환·생태보존 모두 돕는 ‘나침반’ 역할” 🧭
도넛모델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행성경계(Planetary Boundaries)’를 알아야 합니다. ‘지구위험한계선’으로도 불리는 행성경계는 인류가 지속가능하게 생존하기 위해 지구 환경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찾는 개념입니다.
기후변화·생물다양성·해양산성화 등 총 9개 지표로 구성돼 있습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등 국제연구팀에 의하면, 2023년 행성경계 9가지 지표 중 6가지가 안전 기준을 벗어났습니다.
도넛 바깥으로는 지구의 생태한계를 넘지 않는 행성경계의 9개 지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도넛 안쪽으로는 식량·보건·교육·성평등·에너지·정치적 발언권 등 모든 이가 누려야 할 최소 수준의 12가지 지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사회적 기초를 충족하는 동시에 지구의 생태한계를 넘지 않는 두 경계 사이의 최적 지점이 도넛과 비슷해서 도넛모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라체바 박사는 “도넛모델은 (안전 기준을 벗어난) 지표를 다시 안쪽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는 국가와 도시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도넛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각화와 소통에 있습니다. 국가·도시·마을의 주요 데이터를 도넛모델에 대입하면, 해당 지역의 사회적 기초와 생태환경의 관계를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도넛경제액션랩은 이 작업을 지역의 초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라체바 박사는 도넛모델을 만드는 과정에 정답이 없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지리·문화·경제·인구구조 등 지역 구조에 따라 구현된 도넛모델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그는 도넛모델을 ‘나침반’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도넛모델을 만들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며 “해당 지역이 해야 할 과제를 집약해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90여곳서 도넛모델 활용…시각화·결속력 장점 🤔
그는 “오늘날 80~90여개 지역에서 도넛모델을 활용 중”이라며 “이중 40개국이 도넛경제를 자국 전략이나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네덜란드·덴마크·벨기에 등 유럽에 주로 활용도가 높긴 하나, 현재 남미와 아시아에서도 많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영국 글래스고가 대표 사례로 각각 소개됐습니다.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초로 도넛모델을 구현한 도시입니다. 시 당국은 해당 모델을 기반으로 순환경제 전략을 구현했습니다. 나아가 도시가 행성경계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글래스고의 경우 도시가 직면한 모든 문제와 계획을 한곳에 모음으로써, 지역경제와 정책 전반을 새로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라체바 박사는 이 작업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효과는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도넛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 행정 부서와 시민사회, 기업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결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넛모델이 복잡한 문제에 대해 설득과 소통이 가능해지는 강력한 시각화를 제공할뿐더러, 진행상황과 의사결정의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론도 제공한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전환 위한 ‘상상력’의 출발점”…시민·당국 참여 필수 ⚖️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장은 도넛모델을 지역 전환을 위한 ‘상상력’의 출발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넛(모델)을 통해서 지역에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란 고민을 가지고 시작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배 팀장은 도넛모델이 크게 3가지가 결합한 개념이라고 짚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①행성경계에 더해 ②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그리고 ③사회의 안전한 위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란 개념이 섞여 있습니다.
이에 그는 도넛모델을 “순환하고 정의로운 역동적인 균형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에서도 도넛모델을 적용하려는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서울 노원구와 충남 보령, 2곳입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1여년간 이들 지역에서 도넛모델 청사진을 도출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두 지역의 지표를 기반으로 시민참여 워크숍을 수차례 진행해 도넛모델의 청사진을 그렸다고 기관은 밝혔습니다.
53만여명이 거주하는 노원구는 서울에서도 에너지 다소비 지역이며, 보령은 인구소멸과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예정이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례로 노원구의 경우 인구 대비 자원이 너무 집중돼 과잉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됐습니다. 보령의 경우 인구감소 문제가 도시 인프라와 온실가스 감축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됐습니다.
1여년간 노원과 보령에서의 실험 결과, 여러 한계와 성과를 모두 느꼈다고 배 팀장은 밝혔습니다.
도넛모델을 도시와 지역의 비전으로 수용할 주체들이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먼저 언급됐습니다. 여기서 주체는 시민은 물론 시의회와 시 당국이 모두 포함됩니다.
배 팀장은 “행정의 참여가 전제돼야 구체적인 실행전략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지역에서도 부문별로 흩어진 수많은 계획을 기후대응과 복지정책 차원에서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시민참여 역시도 전제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도시 통계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주민들의 삶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생각하게 됐다”며 “인구감소와 기후위기 그리고 경제문제가 혼합한 이 상황에서는 (도넛모델이 제시하는) 질문이 매우 필요한 것 같다”고 피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