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양자컴퓨팅과 첨단반도체 제조 제품 등 첨단기술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확대했습니다.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은 양자컴퓨팅과 첨단반도체 제조장비 등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임시 최종 규칙(IFR)’을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했습니다.
이는 다음날(6일) 관보에 게재되며 임시 발효됐습니다. 60일간의 의견수렴을 거친 뒤 최종 확정될 예정입니다.
앨렌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차관은 양자·첨단기술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적대국에 유입돼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같은 개정안을 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수출통제는 미국이 동맹국과의 다자간 합의를 기반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에 따라 대상 품목에 미국과 유사한 수출통제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수출 허가가 면제됩니다.
한국은 수출통제 면제 국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양자·첨단반도체, 美 수출통제 포함 💿
개정안에 포함된 신규 수출통제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자컴퓨팅 ▲첨단반도체 제조장비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반도체 공정 기술 ▲3D 프린팅(적층제조) 기술 24개 품목입니다. 이중 GAA 기술은 초미세 반도체 공정 기술의 일종입니다. 해당 기술들이 군사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상무부의 말입니다.
6일부터 관련 품목이 미국에서 다른 국가로 수출또는 재수출되려면 미 산업안보국으로부터 허가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동맹 또는 유사 입장국과 수출통제를 공조한다는 차원에서 ‘수출통제시행국(IEC)’ 허가 면제 제도도 신설했습니다. 이미 유사한 수출통제를 도입한 국가는 허가를 면제하는 제도입니다.
상무부는 규칙 발표와 함께 면제 국가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①이탈리아 ②영국 ③캐나다 ④호주 ⑤프랑스 ⑥독일 ⑦일본 ⑧스페인 등 8개국입니다. 국가별로 면제가 적용되는 품목은 상이합니다.
CNBC “국가안보 위해서? 中 겨냥했단 평가” 🎯
산업안보부는 수출통제 확대의 취지로 국가안보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군사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핵심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상무부가 국가안보의 적대국으로 중국을 명시한 것은 아닙니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문서에는 중국이 명확하게 언급되어있지 않다”면서도 “베이징(중국)을 제한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와 일맥상통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인공지능(AI)과 첨단반도체 생산 기술의 급격한 성장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지난 8월 일본 반도체연구 기업 테크나라이는 중국 화웨이와 대만 TSMC 간의 반도체 기술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분석에 따르면, 화웨이와 TSMC 생산능력 격차는 3년에 불과했습니다.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이자 미국 기업의 주요 반도체 위탁생산시설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즉각 이번 수출통제 품목 확대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이 시장원칙을 위반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 중극 측의 말입니다.
중국 상무부 또한 보도자료를 통해 “(수출통제의) 즉각 중단을 촉구한다”며 “중국 기업의 정당한 이익 수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韓 허가 면제국서 빠져…“中 수출통제 동참 두고 고심” 🇰🇷
한편, 한국의 허가 면제국 제외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에 나섰습니다.
산자부는 한국을 포함한 ‘바세나르 체제’ 회원국에 대해서는 승인 추정 원칙이 적용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한국으로의 수출은 신청하면 기본적으로 승인으로 추정된다는 뜻입니다.
산자부는 “(승인 추정 원칙에 따라) 한국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이 명단에서 배제된 이유는 현행 ‘대외무역법’에 의해 독자적인 수출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도 중국·러시아 대상 수출통제에 동참이 어렵단 의견을 전달해 왔습니다.
산자부는 관련 법령 개정이 10월경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미국 정부와 통제 공조와 관련해 협의에 나설 방침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중국의 경제보복을 우려해 반도체 수출통제 동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인교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를 지키려는 기업에게 당근(인센티브)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네덜란드, 수출통제 강화 발표…반도체 공급망 앞날은? 🇳🇱
이번 수출통제 조치는 지난 7월부터 예정된 조치였습니다.
미국은 2022년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작해 이듬해 1월 네덜란드와 일본의 동참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양국에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은 대중국 수출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경우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시행까지 시사했습니다. 어느 국가에서 생산됐든 미국산 장비·기술이 일부라도 사용됐다면 수출 시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이에 네덜란드는 미국 발표 직후인 지난 6일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를 발표했습니다.
세계적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ASML의 구형 장비 2종의 수출을 직접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네덜란드는 2019년부터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에 참여해 ASML 첨단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해왔습니다. 이를 구형 모델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기술 발전으로 특정 제조장비의 수출로 인해 더 많은 안보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고 당시 이유를 밝혔습니다.
현재 일본은 추가 강화를 발표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로부터 추가 제재에 참여할 경우 경제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보복 방식으로는 중국의 핵심광물 수출통제가 거론됐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동중국해 영해 분쟁 당시 중국은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일시 중단한 바 있습니다. 작년에는 네덜란드와 일본이 미국의 수출통제에 동참하자 갈륨·게르마늄·흑연 등에 수출통제를 시행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추가 수출통제 참여를 위해서는 핵심광물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