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기업 US스틸과 일본제철이 모두 혼란에 빠졌습니다.
조강 생산량 기준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이 US스틸을 149억 달러(약 20조원)에 매수할 계획이었으나 미 정부가 저지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까지 US스틸 매각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당에 관계없이 미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US스틸 매각에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이 가운데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인수할 경우 이사회 과반수를 미국 국적자로 채울 것이라고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각) 약속했습니다. 본사 소재지 역시 펜실베이니아를 유지하는 등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사측은 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금지할 것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입니다.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나선 까닭? 업계 4위 → 3위 📈
이번 혼란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려 나선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일본제철은 인구 감소에 따른 일본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해외 시장 개발에 나섰습니다. 이에 그간 해외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섰습니다. 2019년과 2022년에 사측은 인도와 태국의 철강업체를 각각 인수했습니다.
이후 작년 12월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로 미국 내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사장은 “새로운 시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해 일본의 성장력을 되찾겠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탈탄소화 기조에 따라 전기자동차 등 철강 수요가 일부 늘어나고 있어 일본제철이 이를 노리고 US스틸을 인수하려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US스틸이 일본제철에 매각될 경우 세계 철강 시장의 판도 역시 바뀝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2023년 조강 생산량 기준 철강 1위 기업은 중국 바오우스틸(1억 3,184만 톤)입니다. 이어 2위와 3위는 아르셀로미탈(6,889만 톤)과 안스틸(5,565만 톤)이었습니다.
일본제철은 4,437만 톤으로 4위에 머물렀습니다. 일본제철이 27위인 US스틸(1,449만 톤)을 인수하면 세계 3위로 오르게 됩니다.
US스틸은 조강 생산량 기준으로 미국 내 3위 업체입니다. 전성기였던 1950년대 한때 조강 생산량이 3,500만 톤에 이르렀습니다. 허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일본과 독일 그리고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었습니다.
시가총액도 계속 떨어져 2014년 미국 주요 500개 대기업으로 구성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서도 퇴출당했습니다.
US스틸 인수에 철강노조·기후단체·美 정치권 모두 반대 🤔
그런데 US스틸 노조들이 매각 소식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US스틸이 노조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채 일본제철과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 내 기후환경단체와 행동주의 투자자들 역시 US스틸 인수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자국 철강 기업이 인수될 경우 미국의 탈탄소화 비용이 현재보다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여기에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이든 대통령은 여러 차례 US스틸 매각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올해 3월 “(US스틸은) 국내에서 소유되고 운영되는 미국 철강기업으로 남아 있는 것이 필수”라고 밝혔습니다.
역내 산업과 일자리 보호 문제가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후 민주당 새 대선 후보로 등판한 해리스 후보는 지난 2일 US스틸 본사가 위치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찾아 일본제철의 인수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습니다,
트럼프 후보 역시 같은 입장입니다.
이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노동자의 표심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철강 노조의 지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US스틸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만 1만 4,000여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NYT·WP “美 정부, US스틸 인수 불허 방침 곧 발표” 🙅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인수하는 것이 미국 러스트벨트(몰락한 공업 지대) 활성화를 이끌어 미국 제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인수 반대 입장이 확고해 보입니다.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할 경우 미국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지난 5일 알려졌습니다.
CFIUS는 미 재무부 장관을 의장으로 행정부 9개 부처 장관급 이산들이 참여해 외국인 투자의 적절성 여부를 심의하는 곳입니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작년 12월 CFIUS에 심의를 요청했습니다.
CFIUS는 외국인의 미국 기업 인수 등 대미 투자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해 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정 조치를 요구하거나, 대통령에게 거래 불허를 권고합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CFIUS는 US스틸이 인수될 경우 운송·건설·농업 등 역내 철강의 국내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또 최근 중국의 저가 철강 공세에 맞서 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것도 확인됐습니다.
지난달 31일 관련 서한은 양사 모두에게 송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FIUS는 아직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권고안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매체는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을 공식적으로 불허하는 방침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NYT와 WP 모두 미 대선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인수합병 중단 보도에 US스틸·일본제철 모두 당혹” 🚨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US스틸의 주가는 하루 사이 17%가량 빠졌습니다.
일본제철 역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기업 인수에 중단 명령을 내린 뒤 번복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매각 중단 명령이 나오면 CFIUS에 같은 안건을 재신청할 수도 없습니다.
닛케이신문은 CFIUS의 심사 통과를 목표로 할 경우 전혀 다른 안건으로 신청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이경우도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를 극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미 정부의 매각 중단 명령이 나오기 전에 CFIUS에서의 심사를 취하해야 한다는 선택지도 거론됩니다. 대선이 모두 종료된 이후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 일본제철 쪽에 유리할 것이란 판단입니다.
물론 이 경우도 일본제철이 US스틸에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인수계약이 파기될 시 일본제철이 US스틸에 5억 6,500만 달러(약 7,530억원) 규모의 위약금을 지불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제철은 상당한 재무부담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그간 인수 발표 직후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인수 반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버릿 CEO는 “일본제철이 US스틸에 투자하기로 한 30억 달러(약 4조원)가량은 공장 경쟁력과 노동자 일자리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며 “거래가 실현되지 못하면 이런 일들을 할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