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 에너지소비가 증가하며 빅테크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구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미국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통신은 빅테크 기업이 주장한 재생에너지 성과가 실상과 다르단 분석을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각) 내놓았습니다.
문제의 핵심으로는 ‘언번들 재생에너지 인증서(Unbundle REC)’가 지적됐습니다.
REC는 전력 1MWh(메가와트시)가 재생에너지로 생산·공급됐다는 것을 나타내는 인증서입니다. 청정에너지를 인증하는 권리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언번들 REC는 REC 중에서도 재생에너지 사용과 별개로 거래가 가능한 인증서를 말합니다.
과대발행·이중발행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메타(구 페이스북) 등 이들 기업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언번들 REC 구입에 치중했다는 것이 매체의 지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실제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난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즉, 기업이 어떤 재생에너지를 사용했는지까지 봐야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29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비슷한 문제를 느껴 언번들 REC 인증서 사용을 중단한 기업도 확인됐습니다.
빅테크 기업, 명세서 뜯어보니…“언번들 REC 비중↑” 🔍
매체는 탄소공개프로젝트(CDP)의 공개 데이터를 통해 아마존·MS·메타·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2022년 전력소비량 내역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소비전력 출처의 친환경성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①고품질 재생에너지 ②저품질 재생에너지 ③비(非)재생에너지 ④미공개 등입니다.
고품질 재생에너지에는 직접전력구매계약(PPA)·제3자 PPA·가상 PPA(VPAA) 등이 포함됩니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친환경성이 높습니다.
반면, 언번들 REC와 녹색전력 소매 공급계약은 저품질 재생에너지로 분류됐습니다. 친환경성이 낮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란 것이 매체의 말입니다.
분석 결과, 메타·구글·MS·아마존 순으로 고품질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았습니다. 이와 달리 아마존과 MS는 저품질 재생에너지 비중이 각각 52.3%와 51.2%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저품질 재생에너지 대부분은 언번들 REC로 추정됩니다.
매체는 이들 기업 대다수가 앞서 데이터센터를 청정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아마존은 2025년, 구글과 MS는 2030년을 목표로 합니다.
메타는 이미 2020년부터 데이터센터를 포함해 회사 전체를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분석은 그중 18%는 저품질 재생에너지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숫자로만 판단할 경우 친환경성이 실제보다 부풀려질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존 직원 ‘100% 청정에너지 달성’에 그린워싱 비난 🚿
비슷한 문제 제기가 기업 내부에서 터져 나온 사례도 있습니다.
올해 7월 아마존이 목표 기한보다 7년 앞서 100% 청정에너지 운영을 달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마존 사내 기후활동단체 ‘기후정의를 위한 아마존 직원’은 이 발표에 즉각 반박했습니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아마존이 노골적으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재생에너지 사용은 아마존의 소비전력에서 단 22%만을 차지한다는 것이 단체의 지적입니다. 나머지 상당수는 언번들 REC 구매로 채웠습니다.
단체는 아마존이 미국 버지니아주나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등 화석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지역에서 데이터센터를 확장하고 있단 점도 꼬집었습니다. 데이터센터에 현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대신 언번들 REC로 눈가림하고 있단 지적입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아마존은 언번들 REC가 한시적인 대안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언번들 REC, 취지는 좋았다?…“재생에너지 확대 기여” 🤔
그린워싱의 우려에도 기업들이 언번들 REC를 구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간 업계는 언번들 REC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아시아 등 재생에너지가 부족한 지역에서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수요와 공급 간 격차 문제를 겪어왔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어도 조달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언번들 REC가 주목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초기 시장에서 수요자 폭을 넓혀 재생에너지 시장 형성을 돕는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또 재생에너지 개발 기업은 언번들 REC를 통해 추가 수익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추가 REC 발행을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하 신재생에너지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발전량에 가중치를 곱한 만큼 REC가 발급됩니다. 가중치는 전원별 발전원가와 정책환경 변화를 고려해 책정됩니다.
즉, 발전원가가 높은 재생에너지의 수익성을 보조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추가성 비판에 언번들 REC 사용 중단 기업 등장 ✋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언번들 REC의 효과가 과장됐다는 비판이 연이어 제기되며 시작됐습니다.
영국 에든버러대학의 매튜 브랜더 탄소회계학 교수는 “언번들 REC는 추가성(additionality)이 거의 없다”고 지적합니다.
기업들의 언번들 REC 구매가 추가적인 재생에너지원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언번들 REC는 신규발전소 보다는 이미 운영 중인 기존 발전소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의 파생된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언번들 REC 구매를 자체 중단하겠다고 밝힌 기업도 있습니다.
다국적 기술 기업 IBM이 대표적입니다. 재생에너지의 전력망 공급을 증대하기 위해 필요한 공공정책과 투자를 방해하기 때문에 언번들 REC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IBM은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밖에도 월마트, 세일즈포스 등도 언번들 REC 구매를 중단했습니다.
구글 “언번들 REC 구입 중단”…실시간 인증 실험 중 ⏰
빅테크 기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구글이 언번들 REC 구매를 중단한 상황입니다.
마이클 테렐 구글 에너지·기후 수석이사는 구글이 이미 몇 년 전 언번들 REC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 중단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테렐 이사는 현재 구글이 유럽 등 청정에너지 기반시설이 풍부한 지역에서 전력소비량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처럼 재생에너지 시설이 적어 구매가 어려운 곳에서의 재생에너지 부족분을 벌충하는 방식입니다.
유럽 REC를 사용해 아시아 지역의 비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상쇄, 즉 번들 REC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향후에는 재생에너지 사용을 더 강화해 실시간 무탄소전원을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테렐 이사는 강조했습니다.
구글은 이미 2018년 ‘24/7 CFE 협약’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203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무탄소전원으로 실시간 수급해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2021년부터 일부 지역에는 ‘시간 기반 에너지 인증서(T-EACs)’라는 새로운 개념을 시범 도입했습니다. 미국 중서부와 유럽 등에 위치한 데이터센터에서 시간 단위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검증하는 실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