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이후 한국 물가 상승분의 약 10%가 폭우·폭염 등 이상기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기후변화가 이미 한국 물가를 움직이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상기후가 국내 산업생산 증가율을 연평균 0.6%p(퍼센트포인트) 정도 하락시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지난 19일 내놓았습니다. 한은 전북본부의 정원석 기획조사팀 과장 등이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한은은 이상기후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기후위험지수(CRI·Climate Risk Index)’를 개발했습니다. 해외에는 1970년대부터 관련 연구가 있었으나, 한국은 최근에서야 연구가 시작됐다는 것이 한은의 말입니다.
이에 한은은 미국과 캐나다가 개발한 방법론을 참고해 기후위험지수를 개발했습니다. ①이상고온 ②이상저온 ③강수량 ④가뭄 ⑤해수면 높이 등 5개 요인의 변화 추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지표입니다.
연구진은 16개 시도별 5개 요인을 구한 다음, 기준기간(1980~2000년) 대비 표준화한 값을 평균하여 도출했습니다. 조사 과정에는 국소투영법(Local Projection) 모형이 사용됐습니다. 조사 대상에서 세종시는 제외됐습니다.
韓 기후위험지수, 지역별 편차 ↑…강원·제주 평균 상회 📈
기후위험지수 분석 결과, 2001년 이후 기상이변이 국내 산업생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역시 기상이변으로 인해 더 악화하고 길어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기준기간(1980~2000년) 당시 기후위험지수 평균을 0으로 설정했을 경우, 최근(2001~2023년) 기후위험지수 평균은 1.731로 상승했습니다. 이상고온, 강수량 등 기상이변이 극히 많아지거나 극히 적었던 날이 많았다는 뜻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높이가 높아지고, 이상고온 현황 역시 갈수록 잦아졌기 때문입니다. 가뭄 역시 2015년 이후 전반적으로 잦아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같은 변화 추이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지역별 편차가 확인됐습니다. 작년 12월 기준 전국의 기후위험지수는 2.77입니다. 그런데 강원도(3.73)와 제주도(3.63)는 전국 평균을 상회했습니다.
강원도는 이상고온 빈도 증가세, 제주도는 해수면 높이 상승세가 지역별 기후위험지수를 끌어올렸습니다.
지난 38년간(1985~2023년) 다른 지역이 평균 3℃ 이상 상승하는 동안 강원도는 4.3℃ 상승했습니다. 같은기간 제주도의 해수면은 타지역 평균(11㎝)보다 높은 19㎝가 상승했습니다.
연구진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의 영향으로 이상기후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별 편차가 확대되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상기후 발생 12개월 뒤 산업생산 증가율 0.6%p 하락 📉
이상기후가 국내 산업생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농립어업의 경우 기상이변이 성장률을 최대 1.1%p 하락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설업 역시 최대 0.4%p 떨어졌습니다. 폭염 등으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저하됐기 때문입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영향이 작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전력·가스·수도 산업은 성장률이 오히려 상승한 것이 관찰됐습니다. 이상고온이나 이상저온 등이 발생할 경우 전력·가스 사용량이 확대되며 나타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연구 주저자인 정원석 과장은 “이상기후 현상이 과거에는 산업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서도 “2001년 이후 부정적인 영향이 과거에 비해 크고 지속적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합니다.
예기치 못한 이상기후가 발생하면 약 12개월 뒤 산업생산 증가율이 0.6%가량 줄었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원자재 수급 차질이나 재고 유지비용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습니다.
이상기후 발생 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지속기간 모두 ↑ 🌽
이와 달리 이상기후가 발생하면 소비자물가는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상기후 발생 후 3개월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3%p 오른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단,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한 수입 증대로 농축수산물의 대체효과가 커지며 기상이변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달리 말하면 해외 공급망이 무너질 시 이상기후로 인한 물가상승률이 단번에 오른단 뜻입니다. 이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8%p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같은 물가 상승세가 최소 6개월 정도는 지속될 것으로 봤습니다. 과거(1980~2000년)와 비교해 이상기후로 인한 물가 상승세 지속성이 2개월 더 길어졌다고 연구진은 우려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농산물 같은 식료품 물가의 상승세가 가장 컸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식료품 물가상승의 지속기간은 9개월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물가가 크게 오른 2023년 이후 기상이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약 10%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이상기후가) 식료품 및 과실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2023년 중반 이후 이상기후가 물가에 미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은 “월 평균 기온 1℃ 오르면 소비자물가 0.7% 상승” 🥙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지난 4월 “사과값 등 최근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물가수준이 높거나 낮은 상황이 지속되는 현상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입니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은 줄어든 반면, 기후변화로 생활비 부담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제언입니다.
한은은 또 월 평균기온이 장기 평균보다 1℃ 상승할 경우 1년 뒤 농산물 가격이 2%, 전체 소비자물가 수준이 0.7% 오를 것으로 지난 6월 추정했습니다.
한편, 지난 3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기후변화가 전 세계 물가상승을 유도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지구 평균기온이 높아지면 소득에 구분 없이 모든 국가에서 기상이변으로 물가상승이 일어난단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인해 2035년까지 세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최소 0.32~1.18%p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