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업체인 선파워가 미국 나스닥으로부터 상장폐지를 통보받았다고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선파워 주식 거래는 오는 16일부로 중단됩니다.
미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한지 일주일만입니다. 사측은 지난 5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챕터11’은 법원의 감독하에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해 회생을 모색하는 제도입니다.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합니다.
선파워는 미 스탠포드대학 출신의 리처드 스완슨 박사가 1985년 설립한 곳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클린테크 1세대 기업으로 분류됩니다. 주로 북미 고객을 대상으로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설치 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부채조달까지 포함해 사측이 조달한 자본만 9억 3,450만 달러(약 1조 2,820억원)에 달합니다. 2005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나스닥에 상장했고, 이듬해부터 수익을 창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정용 태양광 패널 설치 서비스에 집중하고자 2020년 태양광 패널 제조 사업을 분사했습니다. 그럼에도 2021년 1월 회사 시가총액이 90억 달러(약 12조원)에 달했습니다.
고금리·경기침체 속 보조금 삭감…가정용 태양광 수요 ↓ 🌥️
그러나 선파워는 최근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공급망 대란을 겪었을뿐더러, 중국의 저가 업체가 미국 시장으로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선노바 같은 미국 내 다른 경쟁업체도 빠른 속도로 선파워의 사업을 잠식했습니다.
미국 내 가정용 태양광 패널 설치 수요가 줄어든 것도 회사 운영을 더 어렵게 했습니다. 고금리와 경기침체의 영향입니다.
나아가 북미에서 태양광 시장이 큰 곳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에서 관련 보조금을 삭감한 것 역시 수요 둔화로 이어졌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 전체 주택용 태양광 패널 시장의 약 37%를 차지합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기업인 솔라인슈어가 집계한 데이터에 의하면, 최근 1년간 미국 내 주택용 패널 수요가 줄며 올해 4월까지 최소 100여개의 태양광 발전 계약업체가 사업을 접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파워 역시 지난해부터 일부 구조조정을 이어왔습니다. 올해 4월에는 전체 회사 인력의 약 26% 감축을 발표했습니다. 미 전역에 위치한 서비스센터 여러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재무제표 엉망·부채 불이행·SEC 조사 등 악재 자초” 🤔
회사 실적이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사측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회사 신임 대표인 매튜 헨리 역시 “선파워가 시장 내 급격한 수요 감소와 자본조달에 실패하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회사 재무제표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올해 2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선파워를 조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나스닥 역시도 선파워가 분기별 재무보고서를 제때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서며 상황은 악화합니다. 당시 회사 최고경영자(CEO)이던 피터 패르시가 책임지고 사임까지 합니다.
실상은 더 복잡해 보입니다. 지난 6월 27일에는 회계법인인 어니스트앤영(EY)이 회사 회계감사에서 사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EY는 선파워의 고위경영진이 재무제표와 관련돼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을 이유로 언급했습니다. 앞서 작년 12월 EY는 선파워의 경영 능력에 여러 의심이 간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부채 불이행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여기에 7월 선파워는 신규 가정용 패널 설치와 임대를 모두 중단할 것이라고 공지합니다. 신규 전력구매 계약 역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측은 덧붙입니다. 신규 고객 확보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7월 15일 발표 직후 나스닥 내 회사 주가는 한주간 70% 가까이 폭락합니다.
자산운용사 구겐하임의 애널리스트인 조 오샤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현 사태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선파워가 겪은 문제의 80%는 그들 스스로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다.”
“법정관리 나선 선파워에 눈독 들인 재생에너지 업체들” 💸
2023년 기준 선파워 부채는 10억 달러(약 1조 3,700억 원), 자본은 3억 달러(약 4,110억원)입니다. 부채 비율이 340%로 차입금이 상당히 높은 상황입니다.
사측은 9월 중순부터 하반기까지 자산매각 거래를 완료한다는 구상입니다. 이를 법원이 승인할 경우 이해관계자들은 입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선파워는 매각절차에 걸쳐 남은 자산을 청산하고 신속히 사업을 정리한다는 계획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이미 선파워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컴플리트 솔라리아(CSLR)’가 대표적입니다. 유명 투자자인 TJ 로저스와 청정기술 사업가인 존 도어가 투자한 재생에너지 운영 기업입니다. 2023년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CSLR은 선파워와 4,500만 달러(약 617억원) 상당의 부채를 인수한다는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이는 법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CSLR CEO인 로저스는 성명을 통해 “세상이 우리 집 문 앞에 CEO 없이 울부짖는 아기를 두고 갔다”며 “(자산매각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수리·운영 서비스 중단” 50여만명 고객 혼란 불가피 🏡
그럼에도 당분간 혼란을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선파워로부터 가정용 패널을 공급받은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선파워로부터 서비스를 이용하던 고객 수만 50여만명에 이릅니다. 유지 관리 업무인 태양광 패널 수리 서비스는 이미 중단됐을뿐더러, 당초 보증 범위도 축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패널 제조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2020년 선파워에서 분사한 맥시온솔라테크놀로지스(이하 맥시온)이 대표적입니다.
맥시온은 성명을 통해 “선파워의 자산매각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 중”이라며 “(맥시온이) 제조해 선파워에 납품한 태양광 패널을 사용하는 고객들을 어떻게 계속 지원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선파워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한 고객사 역시도 현 상황을 예의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태양광 업체 파산 잇따라…“금리 인하 가능성에 기대도” 💵
한편,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둔화로 인해 미국 가정용 태양광 업체 상당수가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2013년 설립된 타이탄솔라파워 또한 올해 6월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이 기업은 선파워와 달리 기업의 청산을 규정한 ‘챕터7’을 신청했습니다.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2월 다른 태양광 업체인 선워크도 챕터7에 따른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두 기업 모두 수요둔화로 인해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올해 미국 내 가정용 태양광 설치 용량은 전년 대비 14%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캘리포니아 태양광협회의 베르나데트 델 키아로 전무이사는 “선파워는 지난 1년 사이 파산한 태양광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지만,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그는 기업들이 보조금에 의존하기보다 부채 상환을 우선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덧붙였습니다.
CSLR의 로저스 CEO 또한 보조금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에 “태양광 업체들이 외부 자금에 의존하는 성장 중심 전략에 너무 기대왔다”고 꼬집었습니다.
반론도 나옵니다.
시장조사기관 사이트라인클라이밋은 “태양광 시장이 조정에 들어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례로 다른 경쟁사들이 선파워에서 해고된 인력을 대거 채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입니다. 기관은 “연준이 금리 인하를 결정할 경우 태양광 같은 프로젝트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