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준으로는 유럽연합(EU) 역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왔습니다.
EU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나아가 2050년에는 기후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싱크탱크 유럽운송환경연맹(T&E)은 EU 27개 회원국의 대응 수준이 2030 NDC 달성을 위한 궤도에서 이탈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T&E가 정확히 지적한 부문은 EU의 ‘노력분담규정(ESR·Effort Sharing Regulation)’입니다.
이는 EU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U-ETS)에 포함되지 않은 부문의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건물난방·수송·농업·폐기물 등의 부문이 해당됩니다.
ESR은 EU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EU는 ESR 적용 부문의 감축목표를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6일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T&E는 EU의 ESR 부문의 감축목표 달성 정도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2030년 40% 감축을 위한 목표 궤도에서 4.5%p(퍼센트포인트) 정도 벗어났다는 것이 기관의 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ESR 감축목표 미이행이 유럽 배출권거래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EU 집행위 “ESR 감축목표 달성 불투명” 🤔
지난 4월 EU 집행위원회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당시 집행위는 배출권거래제가 적용되는 에너지 집약 산업과 전력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3년에 전년 대비 15.5%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에너지효율성 개선 등 덕분입니다. 집행위는 “2030 NDC를 향해 순항 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허나, 배출권거래제 사각지대에 있는 ESR 부문은 상황이 다릅니다. 집행위는 “ESR에 따른 각 회원국의 농업·운송·건물난방 등 부문별 감축목표 달성이 불투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ESR의 지난해 감축률은 34%에 머무는 것에 그쳤습니다.
EU는 27개 회원국에 연간 감축의무를 부과합니다. 각 회원국은 대상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제시해야 합니다. 감축의무량은 회원국의 역량에 따라 차등 배분됩니다.
통상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큰 국가에 많이 부과되도록 설정돼 있습니다.
EU 27개 회원국 중 19개국 ESR 감축목표 달성 어려워 🗺️
T&E는 회원국 대다수가 ESR 목표(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0% 감축)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ESR 감축목표 달성 계획을 갖춘 곳은 27개 회원국 중 8개국에 그쳤습니다. 스페인·그리스·체코·룩셈부르크·포르투갈·헝가리·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순입니다.
나머지 19개국은 현재 수준으로는 ESR 부문을 달성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개국은 추가 정책 개선 없이는 달성이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4개국(불가리아·몰타·루마니아·슬로바키아)은 ESR 부문 배출량을 줄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기관은 지적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ESR 부문 감축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2030년 ESR 감축목표보다 각각 10%p와 7.7%p 부족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프랑스는 근소한 차이로 ESR 부문 감축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네덜란드·헝가리·벨기에·라트비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기후정책이 후퇴하거나 혹독한 겨울로 전력수요가 급증할 시 이들 국가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T&E는 지적했습니다.
ESR 감축 미이행? 2030년 배출권 시장서 ‘입찰 전쟁’ 💰
ESR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국가는 목표를 달성한 다른 회원국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해당 배출권은 자국의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EU 27개 회원국 중 19개국이 현 단계로는 ESR 부문 감축목표 달성이 어렵습니다. 달리 말하면 탄소배출권 수요가 급증한다는 뜻입니다.
EU 회원국 중에서도 경제력이 높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경매로 탄소배출권 입찰물량을 모두 구매해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T&E는 이로 인해 2030년 EU 내에서 탄소배출권 입찰 대란이 발생해 배출권 가격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예컨대 현 단계에서 독일이 ESR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구매해야 할 탄소배출권 가격은 2030년 약 162억 유로(약 24조원)에 달합니다. 이탈리아 역시 같은기간 155억 유로(약 23조원)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수치는 2030년 EU 배출권거래제 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129유로(약 19만원)로 계산될 것이란 전제를 가정으로 계산됐습니다.
즉, ESR 부문 감축목표를 각 회원국이 달성하지 못할 경우 그 여파가 배출권 시장을 흔들 것이란 것이 기관의 진단입니다.
각국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기 위해 입찰 대란을 벌이는 과정에서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2억 4,600만 톤 분량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할 시 벨기에 등 다른 회원국은 사실상 ESR 감축목표 달성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탄소배출권을 구매에 드는 비용은 각 회원국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기관은 우려했습니다.

T&E “2030년까지 6년 남아…발 빠른 대응 촉구” 🚨
집행위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집행위는 27개 회원국 중 19개국이 ESR 내에서도 운송 부문 감축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에 2027년부터 운송 분야에 대해서도 배출권거래제(ETS-2)를 적용한다는 계획입니다. 단, 해당 배출권 가격은 톤당 45유로(약 6만 7,600원)로 제한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경우 휘발유와 경우는 리터당 100원 정도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T&E는 이와 관련해 “EU 회원국과 집행위가 방향성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 6년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각국이 탄소부채를 해결하고자 수십억 유로를 들여 배출권을 구매하는 대신, 주택 단열 등 새로운 정책에 빠르게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기관의 말입니다.
기관은 해당 내용이 국가에너지기후계획(NECP)에 반영될 것을 촉구했습니다. NECP는 각 회원국이 배출량 감축을 위해 담은 국가별 세부 로드맵입니다. 집행위에 지난 6월 30일에 재제출됐습니다.
또 EU 차원에서 ERS 부문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필요성도 언급됐습니다. 운송 부문 전기화 지원, 기업 투자 지원 등이 대표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T&E는 ETS-2에 각 회원국이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집행위는 현재 7개 회원국만이 ETS-2 시행을 위한 준비를 착수한 상태라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프랑스·에스토니아·체코·헝가리·리투아니아·루마니아·키프로스 등이 포함됩니다.
이같은 조치에도 현 수준으로는 사실상 격차가 너무 벌어진 일부 회원국은 발 빠르게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고 기관은 조언했습니다.
T&E는 “탄소배출권 구매를 위해 2030년에 입찰 전쟁을 벌이는 대신 지금부터 구매해야 한다”며 “이 경우 연간 구매 비용을 감가상각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