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없이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버터’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2022년 설립된 미국의 세이버란 푸드테크 스타트업이 최근 대체버터 시제품 개발에 성공해 화제입니다. 자체적인 열·화학적 공정을 통해 버터 특유의 깊은 맛과 향을 구현했단 것이 사측의 주장입니다.
17일 데이터제공업체 크런치베이스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세이버가 설립 후 현재까지 유치한 투자금은 3,300만 달러(약 455억원)에 이릅니다. 지난 2월에는 시리즈 A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겸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의 기후펀드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가 직접 시드투자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세이버 대체버터 ㎏당 탄소배출량 0.8g 미만 🧈
버터 같은 유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가 내뿜는 트림이나 분뇨는 주요 온실가스인 메탄을 내뿜습니다.
낙농업이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내뿜는지는 기관별로 수치가 다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2019년 기준 낙농업과 축산업은 세계 전체 배출량의 14.5%를 차지하는 온실가스를 내뿜었습니다.
유제품 산업이 자국 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를 차지한다고 미국낙농협회가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껴 설립된 곳이 세이버입니다.
세이버는 자사가 최근에 개발한 대체버터가 기존제품보다 탄소발자국이 상당히 낮다고 주장합니다. 지방이 80%인 기존 무염 버터는 ㎏당 16.9㎏를 배출합니다.
반면, 자사가 개발한 대체버터는 ㎏당 탄소배출량이 0.8g 미만이란 것이 세이버의 주장입니다.
열·화학적 공정 통해 화학식 똑같은 대체버터 개발 ⚗️
세이버는 자사가 개발한 대체버터가 기후친화적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농경지가 필요없을뿐더러, 기존 낙농업에서 소비되는 물소비량의 1000분의 1만 사용한단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공정 자체는 베일에 감싸져 있으나, 게이츠가 직접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 일부 내용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먼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하여 탄소(C)를 분리합니다. 수소(H2)는 물을 전기분해를 통해 추출합니다. 이후 탄소와 수소를 결합하면 지방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만든 지방은 일반 지방과 화학식이 동일합니다. 모든 지방은 탄소와 수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기존 버터나 세이버의 대체버터 모두 화학적으로 동일하단 것.
버터 특유의 노란빛은 당근 같은 녹황색 채소에서 추출한 베타카로틴이 사용됐습니다.
회사 공동설립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캐슬린 알렉산더는 “생물학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식물성 지방 역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식품공학 기술이 사용됐단 것이 알렉산더 CTO의 말입니다.
식물성 지방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측은 ‘팜유’의 문제점을 꼽았습니다. 대표적인 식물성 유지인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삼림벌채나 생물다양성 손실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동물성 지방을 식물성 지방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 것이 알렉산더 CTO의 말입니다.
알렉산더 CTO와 세이버의 연구 결과는 작년 11월 과학저널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리티’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 “세이버 대체버터, 매우 맛있어” 🥪
세이버는 식품 생산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합니다.
동물성도 식물성 지방이 아닌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단 것. 여기에는 막대한 토지를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존 낙농업 산업을 바꿔야 한다는 전제도 깔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버터 특유의 진한 크림 맛과 질감 그리고 향을 구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맛과 향 모두에서 밀릴 경우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CTO는 그간 “수십여명으로부터 비공식적인 시식 패널을 거쳤다”고 언급했습니다. 그중에는 세이버에 투자한 게이츠도 포함됩니다.
게이츠는 세이버의 대체버터를 시식한 후 “매우 맛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기존 버터와 대체버터 간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세이버의 제품은 아직 판매 단계는 아닙니다.
알렉산더 CTO는 “현재 상업화 이전 단계에 있다”며 “규제 승인을 거쳐 버터를 판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르면 2025년에 어떤 형태로든 대체버터를 판매한단 것이 사측의 계획입니다.
추후에는 세이버의 대체버터가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같은 다른 제품에도 적극적으로 사용되길 기대한다고 알렉산더 CTO는 덧붙였습니다.
규제 승인 등 상업화 위해 넘어야 할 장벽 3가지는? 🤔
상업화를 위해선 규제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비용 문제입니다.
세이버는 화석연료 시설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그린수소를 기반으로 지방을 합성한다는 구상입니다. 둘 다 운영비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측 역시 대체버터 개발 생산단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비자들의 반응입니다.
대기 중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만든 합성음식이란 점에 소비자들이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단 것. 세이버는 “합성 화합물이 식물성 화합물만큼 인간에게 좋지 않거나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사회화됐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여기에 안전성 문제도 고민돼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세이버는 “상업적으로 고순도 지방을 만드는 동시에 기술적으로는 안전과 건강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술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