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규칙에 대해 지난달 27일(이하 현지시각) 미 연방대법원이 시행 중단을 판결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사법부를 총괄합니다. 헌법재판소 기능까지 수행합니다.
2023년 2월 제안된 이른바 ‘좋은이웃(Good neighbor)’ 규칙입니다. 대기오염물질이 다량 배출되는 지역에서 바람을 타고 주변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법안입니다. 청정대기법 개정안의 영향으로 제안됐습니다.
즉, 다배출 지역의 오염물질 배출을 통제해 대기질을 향상하겠다는 것. 규칙 이름 또한 다배출 지역을 저배출 지역, 즉 좋은 이웃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화석연료발전소와 철강·시멘트 공장 등에서 나온 배출가스에서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감축하도록 지시하는 규칙입니다.
미국 50개주(州) 가운데 23개주에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대기오염 방지 위한 ‘좋은이웃’ 규칙이란? ☁️
좋은이웃 규칙은 2015년 청정대기법 개정안의 영향으로 제안됐습니다. 상향된 국가 대기질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이를 위해 EPA는 주정부로부터 개별 대기질 향상 계획을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계획을 승인받지 못한 23개주를 대상으로 좋은이웃 규칙을 발표합니다. 대부분은 미국 남서부와 중서부에 소재한 주입니다.
이들 지역의 발전소·정유소·산업시설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 ‘오존’ 생성에 기여했다는 것이 EPA의 설명입니다. 오존은 질소산화물이 강한 자외선과 반응해 생성된 대기오염물질입니다. 아동과 노약자의 호흡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번 규칙 시행으로 공중보건 향상은 물론 석탄발전을 감축하는 효과도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여러 법적 문제로 인해 좋은이웃 규칙은 현재 10개주에서만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외 12개주에서는 좋은이웃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며 하급심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하급심 소송과 별개로 대법원에 가처분 소송도 제기됐습니다.
3개주(오하이오·인디애나·웨스트버지니아주)와 미 철강사 US스틸 등이 지난해 각각 제소했습니다. 대법원에서는 4건이 병합돼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美 대법원 가처분 인용 “EPA, 합리적 설명 못해” ⚖️
원고 측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획과 달리 다수 주정부가 불참한 상황에서 나머지가 계속 참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
불참한 13개 주의 대기오염물질 예상 감축량이 EPA 전체 계획의 70%를 차지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나머지 10개주만이 참여한 상황에서는 규칙을 이행하더라도 대기오염 저감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원고 측의 주장입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하급심 소송 결과에 따라 규칙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결과, 연방대법관 전체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좋은이웃 규칙 시행 중단 가처분이 승인됐습니다.
올해 2월 원고와 피고 측 변론이 열린 지 약 5개월만입니다.
판결문의 요지는 EPA가 좋은이웃 규칙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 적용 대상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도 비용 대비 대기오염 저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근거를 대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로이터통신은 “보수 성향이 다수인 대법원이 또다시 EPA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대법관 9명 중 6명은 보수 성향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보수화된 미국 대법원이 EPA의 환경정책에 제동을 걸었단 평가가 나옵니다.
NYT “기존 환경 규정도 위험”…하급심 앞선 대법원 판결 이례적 🏦
환경·지역단체는 거센 반발과 함께 우려를 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법원은 하급심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재판이 이뤄지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번 재판은 관련 하급심인 연방순회항소법원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판결됐습니다. 이번 판결이 전례가 없는 상황이란 뜻입니다.
환경단체 에버그린액션의 찰스 하퍼 활동가는 “(이같은 조치는) 법원이 얼마나 급진적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습니다.
미 환경단체 천연자원방어위원회의 이언 페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우리를 오염원으로부터 보호하는 법률을 시행하는 연방정부의 능력을 크게 훼손했다”고 말했습니다.
보수 성향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유일하게 가처분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도 같은 문제 때문입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입니다.
배럿 대법관은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판결에 대법원이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결정이 합쳐지면 기존의 많은 환경규정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논평했습니다. 하급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대법원이 조기에 나서서 법안을 무효화하거나 제정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된다면 향후 행정부가 새로운 규정을 작성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매체는 지적했습니다.
산업계, 즉각 환영…“EPA 과도한 권한 남용 저지” 👏
한편, 티머시 캐럴 EPA 대변인은 “(이번 판결이) 좋은이웃 규칙으로 공중보건 혜택이 확장되는 것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지역 산업계는 환영을 표했습니다. 특히, 대법원이 EPA의 권한 남용을 저지했다는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미 국립광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대법원은 EPA에게 어떤 기관도 법의 명확한 범위를 벗어나 운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논평했습니다. 좋은이웃 규칙은 환경을 명목으로 연방정부가 권한을 남용했다는 주장입니다.
미 농촌전기협동조합협회 또한 “이번 판결은 미국 경제와 생활을 위협하는 EPA의 과잉된 규칙의 심각성을 드러냈다”고 밝혔습니다. 협회 역시 전력 부문을 규제하는 EPA의 방식이 기관의 권한을 훨씬 넘어섰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23개주 오염물질 대폭 감축, 석탄발전 감축 효과도 ⚡
한편, 좋은이웃 규칙은 23개주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빠르게 줄이기 위한 조항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규제 대상은 화석연료 발전소와 철강·시멘트·유리·광업·화학·제지 등의 산업 부문입니다.
EPA는 규칙이 시행되면 23개주 주변 지역 주민 8,000만 명의 건강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2026년에만 ▲조기사망 1,300 ▲병원 방문 2,300건 ▲천식 130만 건을 예방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또한, 좋은이웃 규칙은 석탄발전 자체를 감축하는 효과도 기대됐습니다.
규칙이 시행될 경우, 2030년까지 14GW(기가와트)의 석탄발전소가 조기폐쇄될 전망입니다. 이는 국가 석탄발전 용량이 13% 감소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체적인 규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화석연료 발전소|22개주 대상
2027년까지 대기오염물질 총배출량을 2021년 대비 50%로 감축해야 합니다. 2024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최첨단 배출제어 장치 설치가 의무화됩니다.
🏭 산업 부문|20개주 대상
일부 산업 부문을 대상으로도 대기오염물질 총배출량 감축 기준이 설정됩니다. 2026년까지 2019년 대비 15%를 감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