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시위’ 등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던 유럽연합(EU)의 ‘자연복원법(NRL)’이 진통 끝에 통과했습니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EU 환경부 장관들은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이사회에서 자연복원법 제정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그 결과, 전체 27개 회원국 중 20개 회원국 찬성으로 자연복원법이 가결됐습니다.
이 법은 2030년까지 EU 역내 훼손된 육상·해상 생태계를 20%, 2050년까지 90%를 복원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밖에도 ▲꿀벌 등 수분매개자 개체수 보호 ▲2030년까지 최소 30억 그루 재조림 ▲이탄지대 복원 ▲하천 복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연복원법은 EU 차원에서 회원국이 달성해야 할 복원 목표치를 못 박은 최초의 법입니다.
좌초 위기 몰렸던 자연복원법, 농민 반발 속 일부 ‘완화’ 조치 명시 🚜
자연복원법은 앞서 2022년 6월 EU 집행위원회가 발의했습니다. 지난해 7월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같은해 11월 EU 집행위·EU 이사회·유럽의회 간 법안 내용을 두고 3자 협상을 마쳤습니다.
허나, 자연복원법은 발의 직후부터 여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럽 농어업 관계자들의 반발이 가장 거셌습니다. 이들은 자연복원법이 과도한 환경규제라고 반발해 왔습니다.
살충제 사용 중단 등으로 인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입니다. 여기에 농경지를 초지로 전환시 경작지 감소로 식량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신중론이 일었습니다. 이에 올해 초 벨기에 수도 브뤼셀 등 유럽 각지에서 트랙터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를 반영해 농업 부문 목표가 대거 삭제됐습니다. 또 식량안보가 위협받는 예외적 상황에서는 복원 목표가 중단될 수 있다는 완화 문구가 명시됐습니다.
해당 수정안은 올해 2월 유럽의회 표결을 가까스로 통과했습니다.
이후 지난 3월 마지막 문턱인 EU 이사회 승인에서 다시 진통을 겪습니다.
헝가리가 갑작스럽게 지지를 철회하는 바람에 찬성 과반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통상 법안 승인을 위해서는 EU 27개 회원국 중 55% 이상인 15개국, EU 인구의 65%에 해당하는 회원국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27개국 중 20개 회원국 자연복원법 가결 찬성…오스트리아 돌연 찬성 🗳️
이 때문에 자연복원법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실제로 이날 EU 이사회 표결에서는 핀란드·스웨덴·헝가리·이탈리아·네덜란드·폴란드 등 6개국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벨기에는 기권했습니다. 이들은 앞서 3월 열린 표결에서도 반대·기권표를 행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가 기존 입장과 달리 찬성표를 행사해 법안은 승인 요건을 충족했습니다.
법안에 회의적이었던 슬로바키아 역시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법안 통과 직후 벨기에 브뤼셀 지역의 알레인 마론 에너지·기후환경담당 장관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긴급성에 대응하는 동시에 EU가 국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도부의 의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유럽 대표단이 고개를 들고 다음 제16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6)에 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자연복원법은 2022년 캐나다에서 열린 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EU가 발표한 정책 실현의 일환으로 발의됐습니다.
COP15에서 국제사회는 2030년까지 지구 환경의 30%를 자연 상태로 보호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자연복원법 관보 게재 후 20일 뒤 발효…오스트리아선 위헌 논란 불거져 🤔
EU 이사회 승인에 따라 법안을 둘러싼 모든 입법 절차는 일단락됐습니다. 자연복원법은 관보 게재 뒤 20일 뒤 발효됩니다.
발효에 따라 EU 회원국은 국가 복원 계획을 수립해 제출해야 합니다. 또 EU 내 생물다양성 지표를 기반으로 복원 목표의 이행여부를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한편, 이번 투표에서 돌연 찬성표를 던진 오스트리아는 내홍에 휩싸였습니다.
EU 이사회 투표에서 오스트리아 대표가 자국 정부 방침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는 현재 우익성향의 오스트리아 국민당(OVP)과 녹색당이 연립하고 있습니다. 연립정부이긴 하나 오스트리아 국민당의 영향력이 큽니다. 의회 하원 183석중 71석, 상원 61석 중 25석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녹색당은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26석과 5석을 차지합니다.
녹색당 소속의 레오노레 게베슬러 오스트리아 기후환경에너지부 장관은 투표 직전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라며 “이번 투표에서 자연복원법 도입을 지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카롤린 에트슈타들러 오스트리아 유럽헌법장관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환경부 장관이) 농업부 등 다른 기관들과 협의 없이 이런 발표를 내놨다”며 “법적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국민당 소속입니다.
에트슈타들러 장관은 오스트리아 정부 방침에 어긋난 대표의 찬성 표결은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게베슬러 장관을 공직 남용 혐의로 형사 고발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카를 네하머 오스트리아 총리 역시 자연복원법을 EU 최고 법원으로 가져가겠다고 반발했습니다.
허나, EU 이사회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는 오스트리아 내부 분쟁이 투표의 적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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