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럽의회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유럽연합(EU)의 ‘자연복원법’ 제정이 이번에는 EU 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당초 EU 이사회 최종 승인 표결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졌습니다.
EU 이사회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 정부에 따르면,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각) EU 27개 회원국 환경장관들이 자연복원법 최종 승인을 위해 표결을 시도했으나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해졌습니다.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결과, 자연복원법 표결 일정은 취소됐습니다. 현재 법안 표결은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법안 자체가 폐기될 위기에 놓였단 우려도 나옵니다.
자연복원법은 EU 차원에서 회원국이 달성해야 할 복원 목표치를 못 박은 최초의 법입니다.
구체적으로 기후대응과 생물다양성 회복을 목표로 2030년까지 EU 내 육지 및 바다의 최소 20%를 복원해야 한단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50년에는 전체 생태계 복원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7개 회원국 중 9개국, 자연복원법에 반대·기권 의사…표결 무기한 연기 🗳️
로이터통신·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의하면, EU 27개 회원국 중 8개 회원국이 자연복원법 표결에 반대 또는 기권 의사를 밝혔습니다.
헝가리를 포함한 이탈리아·네덜란드·스웨덴은 자연복원법 통과에 반대합니다.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폴란드는 표결에서 기권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들을 제외한 남은 19개국은 자연복원법 통과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들 회원국이 자연복원법 표결에 반대 또는 기권하는 이유는 유럽을 휩쓴 농민 시위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작비가 급상승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까지 시장에 유입되면서 한계에 직면했다고 유럽 농민들은 호소해 왔습니다.
여기에 EU의 각종 환경규제가 성난 농심에 기름을 부으면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에 EU는 농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여러 농업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예컨대 자연복원법에는 농업 생태계 내 복원 목표의 경우 ‘예외적인 상황’에 따라 중단될 수 있단 문구가 명시됐습니다. 또 2030년까지 화학 살충제 사용을 50% 줄인단 기존 목표도 삭제됐습니다.
이는 2050 기후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EU ‘그린딜’의 핵심 법안 중 하나입니다.
일부 회원국이 자연복원법에 반대한 이유는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현재 유럽을 휩쓸고 있는 농민 시위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자연복원법 통과 시 농업 부담 상승 vs 농민에게 새로운 수입원 제공” 🌽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반발은 여전합니다.
아니코 라이츠 헝가리 환경부 장관은 법안에 대한 입장을 선회할 수 있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헝가리는 표결 당시 반대 입장을 밝힌 이유로 농업 부문의 특수성을 꼽았습니다. 자연복원법이 자국 농업 산업에 비용 부담을 줄 수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탈리아 또한 법안 통과 시 자국 농업에 부담을 더할 수 있단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법안을 지지하는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자연복원법 통과가 꼭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옵니다.
에이먼 라이언 아일랜드 환경부 장관은 자연복원법이 농민들에게 새로운 수입원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란 점을 역설했습니다. 그 점에서 법안의 폐기는 농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비브리지니유스 신케비치우스 EU 환경담당집행위원 또한 법안 승인이 무기한 연기될 시 생물다양성 보존을 선도해 온 EU의 명성이 무너질 수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케비치우스 위원은 오는 11월 남미 콜롬비아에서 열릴 제16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6)에 “빈손으로 가게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그는 “(이같은 제동은) EU 의사결정 과정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우려와 의문을 제기한다”고 피력했습니다.
6월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교착 상태 빠진 ‘자연복원법’ 🤔
EU 이사회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는 오는 6월 선거 전까지 법안 표결을 위해 노력하겠단 입장입니다.
현재 반대·기권 입장을 피력한 8개국 중 1곳이라도 찬성으로 돌아선다면 자연복원법은 통과될 수 있습니다.
법안 협상을 주도한 알랭 마롱 벨기에 환경부 장관은 “특정 회원국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며 “(회원국이)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의회 임기가 4월에 끝난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회원국들이 법안 승인을 위해 향후 논의 과정에서 3자 합의안이나 수정안이 나올 수 있으나, 이 경우 새로 구성된 유럽의회에서 승인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합니다.
이를 유럽의회 임기 종료 시점까지 완료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단 것이 가디언의 분석입니다.
로프 예턴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부 장관은 가디언에 “(회원국 모두) 이 거대한 교착 상태를 인정하고 있다”며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고려할 때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럽 농민 시위, EU 삼림벌채금지법 개정에도 영향 주나? 🌲
한편, 유럽 내 농민들의 반발은 다른 EU 환경 법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EU의 ‘삼림벌채금지법(EUDR)’이 있습니다.
이 법안은 불법 삼림벌채 지역에서 생산된 소고기·코코아·커피 등 7개 제품군에 대해 EU 시장 내 유통 및 판매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해당 법은 올해 12월 발효돼 오는 2025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됩니다.
오스트리아·스웨덴·이탈리아 등 일부 EU 회원국은 유럽 농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법안의 긴급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회원국 농업장관들이 비공개회의를 진행한 가운데 EU 27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법안 개정을 지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내놓은 제안에는 삼림벌채 인증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법안 발효 시점을 연기한단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삼림벌채금지법 개정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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