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협약 추진 동향을 살펴보면 국가별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협상이 쉽지 않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1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경제인협회(FKI) 타워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2024 기후경쟁력포럼’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포럼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경제지 비즈니스포스트가 공동 주최했습니다. 산업계·시민단체 등 13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한 장관이 언급한 협약은 바로 ‘플라스틱 국제협약’입니다. 이날 포럼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플라스틱 국제협약 체결을 목표로 2022년부터 협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4차례 회의가 열렸습니다.
마지막 5차 회의는 오는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립니다.
허나, 한 장관의 말처럼 현재까지 4차례 회의가 열렸으나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는 다사다난한 상황입니다.
“법적 구속력 갖춘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 쟁점별 국가 간 대립 첨예”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하면, 2019년 기준 플라스틱은 온실가스 약 18억 톤을 배출했습니다. 이는 세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4%를 차지한 것입니다.
현 추세라면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9년 4억 6,000만 톤에서 2060년 12억 1,3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은 탄소예산의 약 19%가 플라스틱 생산에 사용될 것으로 OECD는 추산했습니다.
기후대응을 위해선 플라스틱 역시 규제가 필수인 것. 이는 생물다양성 손실과 해양오염 문제 해결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이에 2022년 유엔환경총회 결과, 국제사회는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을 갖춘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만들기로 합의합니다.
플라스틱이 식음료·화학·건설·섬유·전자기기 등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사용되는 만큼, 협약 발효 시 거의 모든 산업이 규제 영향권에 들어간단 것이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그러나 플라스틱 국제협약 내 문구를 두고 국가 간 이견차가 큽니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여부 ▲감축목표 설정 여부 ▲이행방식 ▲플라스틱 오염 원인 시각 등을 두고 국가별로 이견이 첨예하기 때문입니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즉 플라스틱 원료 감축 여부를 두고 산유국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이란·중국·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은 협약문에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제외돼야 한단 입장입니다. 그 대신 재활용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이들 국가는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EU)과 남미 국가 그리고 태평양 도서국들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적극적으로 요구합니다.
‘2050년 탄소중립’처럼 플라스틱 감축목표 시한을 설정할 것인지도 역시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처럼 플라스틱 감축목표 역시 개별 국가가 자발적으로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재원 조달과 이행 평가 방식을 두고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요구사항이 다릅니다.
사실상 플라스틱 국제협약 내 거의 모든 사항이 쟁점이란 것.
韓 정부 “구체적 감축 연도 설정 어려워…실현 가능한 절충안 만들 것” 🤔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형섭 환경부 국제협력단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간 현장에서 회의를 지켜본 결과, 각 쟁점별로 국가들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당장 우리나라가 밀고 있는 화학적 재활용의 경우 선진국 중 일부는 재활용이 아니라고 반대하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이 단장은 “(한국 정부는) 5차 회의를 앞두고 개최국 역할에 있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내 극단적이거나 보수적인 의견을 모두 모아 실행 가능한 절충안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단 것이 정부 측의 입장입니다.
이 단장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파리협정처럼) 일단 협약을 만들고 추후 세부적으로 협약 내 세부 내용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허나, 현재의 대립 양상을 보면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단 느낌을 받는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또 이 단장은 “(한국이) 5차 회의 개최국이다 보니 미국이나 EU로부터 양자회의를 하자는 요청이 굉장히 많았다”고 상황을 전했습니다.
마지막 회의 개최국이자 중재자인 만큼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보는 한국의 입장을 국제사회가 궁금해하고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은 다소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먼저 우리나라는 플라스틱을 다소비하고 다생산하는 국가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 연합(HAC)’에도 가입돼 있습니다. HAC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 가속화를 목표로 하는 협의체입니다.
한국 정부 입장을 묻는 한 청중의 질문에 이 단장은 “(구체적인 연도까지) 목표를 설정해 줄여나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중간 단계(미드스트림)’ 관리를 통해서 업스트림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제품 설계 시 순환설계나 순환이용성을 높여 플라스틱 소비량과 폐기물을 줄인단 뜻입니다.
이 단장은 “제품 순환성을 증진해 플라스틱 생산을 적게 하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생산-제품-폐기 등 전반을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습니다.
22대 국회 기후정치인, 플라스틱 국제협약서 韓 선도적 역할 강조 🏛️
산업계는 물론 입법부에서도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의정부갑)은 “플라스틱 오염은 많은 시민이 공감하는 문제다”라며 “(5차 회의에서) 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의원은 환경부가 지난해 일회용컵 보증금제 규제 등을 유예해 사회적으로 비난받았던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강화된 규제나 감축을 이끌기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 오명을 씻고 다시 선도적인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습니다.
포럼을 찾은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비례) 역시 마지막 회의를 앞두고 협약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그럼에도 “5차 회의를 계기로 한국이 선제적으로 준비한 (폐기물 관리) 제도를 다른 나라에 알려야 한다”며 “동시에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비례) 또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서 의원은 “기업들이 잘 적응하고 소비자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명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예컨대 생분해 플라스틱 등 대체물질을 준비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하단 것. 이를 위해선 정책적 지원이 일관되고 강력하게 뒷받침돼야 한다고 서 의원은 강조했습니다.
UN PRI 기후환경대표, 플라스틱 국제협약 되레 기회 가능 💸
한편,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의 레베카 채프먼 기후환경대표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산업계와 투자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단 점을 역설했습니다. PRI는 2006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의 주도 아래 설립된 기관입니다.
이날 영상으로 참석한 채프먼 대표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투자자들에게 해결책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순환경제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신소재나 포장설계, 새로운 사업모델, 재활용 기술과 같은 투자 기회를 창출한다”고 밝혔습니다.
플라스틱 포장재는 일회성이 대부분입니다. OECD에 의하면, 이로 인한 잠재적 경재적 가치의 최대 95%가 매년 손실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액으로만 1,200억 달러(약 165조원)에 이릅니다.
채프먼 대표는 순환경제로 전환 시 비용 절감을 통해 이러한 손실된 가치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부정적인 환경·사회적 외부효과로 인한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2024 기후경쟁력 포럼 모아보기]
① 플라스틱 국제협약, 마지막 회의 11월 부산서 개최…韓 “실현 가능한 절충안 만들 것”
② 성안 앞둔 플라스틱 국제협약, 삼성·LG·CJ 등 대기업 순환경제 전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