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그런데) 사방에서 구호만 난무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선 준비가 미진하다. 정부는 정책을 잘 만들어야 하고, 기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 혁신해야 한다. 자본은 기후테크에 투자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가속시킬 수 있는 것은 기후문제에 각성한 시민들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개회사에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가 남긴 말입니다.
2004년 시작된 서울환경영화제는 매년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을 맞아 열리는 영화제입니다. 환경재단·서울환경영화제조직위원회가 공동 주최합니다. 조직위에 의하면, 2023년까지 영화제에는 2,800여편의 영화가 출품됐습니다. 같은해 관람객만 84만여명에 이릅니다.
올해 영화제의 공식 슬로건은 ‘Ready, Climate, Action(대비, 기후, 행동)’입니다.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할 기후행동을 영화제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단 것이 조직위의 설명입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인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역시 기후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 교수는 개회사에서 “처음 영화제가 시작됐을 때는 환경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자 주제였다”며 “최근 영화제를 준비하면서는 환경문제 인식을 넘어서 실천으로 이어질지 고민한다”고 밝혔습니다.
“공포 아닌 희망 프레임 통해 기후문제 해결 말해야 해” 🕯️
주최 측에 의하면, 이날 개막식에는 2,5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영화제에 참석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장해랑 전(前) EBS 대표는 그리니엄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참석한 것 같다”며 “그 규모에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같은 대형 영화제가 아닌 이상 개막식에 통상 1,000명 정도가 온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러면서 “환경영화제가 커진 것도 맞지만, 환경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을 볼 수 있다”고 그는 평가했습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원장(환경계획학과) 역시 영화 한 편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시대가 도래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윤 원장은 “(기후환경과 관련한) 논문을 수십 편을 읽는 것보다는 마음을 건드려주는 영화 한 편을 본다면 좀 더 울림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환경생태 감수성 나아가 기후 감수성을 영화를 통해 기를 수 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윤 원장은 그러면서 기후변화가 더는 공포를 조장해선 안 된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공포의 프레임으로 가선 안 된다”며 “희망의 프레임을 통해서 사람들이 기후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최근 떠오른 ‘종말론적 낙관주의’란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인류는 가장 심각한 도전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단 독창성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단 믿음입니다.
뉴욕타임스(NYT)와 패스트컴퍼니, 그리스트 등 주요 외신은 최근 기후대응에서도 종말론적 낙관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영화제 관람료 등 후원금 일체 방글라데시 맹그로브숲 조성에 사용 🌴
이날 영화제 개막작이 데이비드 앨런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와일딩(Wilding)’으로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앨런 감독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5번이나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2023년 선보인 작품입니다. 현대식 농법에 의존하던 영국인 부부가 경작지에 사슴이나 비버 등 야생동물을 끌어들여 자연 생태계 회복 실험에 나선 과정을 조명했습니다. 유명 작가 이사벨라 트리의 베스트셀러 ‘야생 쪽으로’가 바탕이 됐습니다.
앨런 감독은 영상 메시지로 “희망에 관한 이 탁월한 이야기가 영국 관객분들에게 공감이 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똑같이 전해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올해 영화제는 6월 5일부터 30일까지 한달간 열립니다. 오프라인 상영은 6월 9일까지입니다.
영화제 기간 총 80편의 작품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상영됩니다. 장편 44편, 단편 36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폐기물 낭비 최소화를 위해 별도 종이 티켓을 발권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예매자 본인의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티켓으로 상영관에 입장하는 시스템으로 진행됩니다.
나아가 이번 영화제는 주제별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80개 작품은 크게 ▲기후행동 ▲지구를 구하는 거인들 ▲ESG: 자본주의 대전환 ▲지구 비상 ▲슬기로운 음식생활 ▲쓰레기통 ▲에코패밀리 등 9개 주제로 분류돼 있습니다.
영화제는 올해부터 유료로 참가비를 받습니다. 온라인 관람료는 2,000원, 오프라인은 5,000원입니다. 관람료를 포함한 모든 후원금은 맹그로브 나무를 심는데 사용됩니다.
재단 측에 의하면, 후원금은 남아시아 방글라데시 해안 일대에 맹그로브숲 조성에 사용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맹그로브 나무를 탄소흡수량이 높은 ‘블루카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육상 산림보다 탄소흡수량이 최대 4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80여점 중 꼭 봐야할 작품은? 🍿
그렇다면 이번 영화제에서 꼭 만나봐야 할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인 정 교수와 이 대표는 영화잡지 씨네21을 통해 각각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와 ‘기후재판 3.0’ 작품을 꼽았습니다.
영화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은 2123년 동유럽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작품입니다. 인간은 거대한 플라스틱 돔 안에서만 살 수 있고, 자원 부족으로 인간 생명은 50년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50세가 넘은 인간은 다음세대에게 영양을 공급할 나무가 돼야 합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국제경쟁 부문에 오른 바 있습니다.
정 교수는 해당 작품이 “인간이 미래에 기후위기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는지 신선한 설정으로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다큐 ‘기후재판 3.0(영제: Duty of Care – The Climate Trials)’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두된 기후소송을 되짚어보는 작품입니다. 네덜란드계 화석연료 기업 로열더치쉘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 승소의 주역, 변호사 로저 콕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대표는 해당 작품에 대해 “현실의 사례와 빗대어 이 영화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이야기해보고 싶다”며 “이 영화는 승리의 이야기”라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영화제 시상식은 오는 9일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립니다. 국제(대상·심사위원특별상·관객상)와 국내(대상·우수상·관객심사단상) 경쟁 부문으로 나눠 수상작을 뽑습니다.
국제와 국내 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은 각각 1,000만 원과 500만 원의 상금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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