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몬트주가 화석연료 기업에게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의 몫을 지불하도록 요구하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중 일부를 화석연료 기업에게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이는 미국 50개주 가운데 처음입니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매체에 의하면,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공화당)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기후변화 피해변제법(S.259) 법안을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통과시켰습니다.
일명 ‘기후 슈퍼펀드법(Cimate Superfund Act)’입니다. 1980년 발효된 미 정부의 슈퍼펀드법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이는 미 환경보호청(EPA)이 먼저 정부 재원으로 오염 지역에 대해 신속히 배상하고, 사후 오염책임자를 찾아 배상에 든 비용의 최대 3배까지 요구하도록 한 법입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해결하는 것을 골자로 미국 각지에서 화석연료 기업에게 관련 책임을 묻도록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앞서 2021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 등 미국 상원의원들이 국가 기후 슈퍼펀드 법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법안은 진전되지 못했으나 주정부 차원 이니셔티브에 영감을 줬습니다.
주목할 점은 버몬트 주지사가 서명하지 않더라도 법안이 발효되도록 허용했단 점입니다.
3일 버몬트 주정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스콧 주지사는 주의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빅오일(거대 화석연료 기업)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화석연료 기업에게 피해보상금 요구…기후탄력적 시설 구축에 활용” 💸
스콧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은 같은날 버몬트 주의회 하원과 상원 모두에서 과반수로 통과됐습니다.
법안에 의하면, 버몬트주 재무장관은 역내 천연자원국(ANR)과 협력해 1995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주정부와 시민이 온실가스 배출에 따라 입은 총피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보고서 제출 마감 일자는 2026년 1월 15일입니다.
온실가스 배출과 기상이변으로 인해 버몬트주 각 분야에 어떤 피해와 영향이 발생했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공중보건, 천연자원, 농업, 주택, 경제개발 등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타당성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단 것.
이후 피해 규모에 따라 오염물질 배출자에 비용을 내게 한단 것이 버몬트 주정부의 구상입니다. 화석연료 기업에게 보상금을 부과하는 방법론은 2027년 1월까지 개발하기로 했다고 주정부는 덧붙였습니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기금은 빗물 배수관 개선 등 기후탄력적 기반시설 구축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공공·민간건물에 대한 에너지효율 개선에도 사용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 생산 기업이나 거래 기업 등 모두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 등 4개주 버몬트주 입법 현황 주시…美 석유협회 즉각 반발 🛢️
환경단체들은 법안 통과를 즉각 환영했습니다. 지역 내 비영리단체인 버몬트공익연구그룹(VPIRG)의 기후에너지프로그램 책임자인 벤 월시는 성명에서 “기후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시, 주정부 또는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버몬트주가) 이같은 법을 통과시킨 첫 번째 장소(주정부)가 될 수 있으나, 마지막이 되어선 안 된다”고 성토했습니다.
실제로 버몬트주 이외에도 미국 내 최소 4개주(메릴랜드·매사추세츠·뉴욕·캘리포니아주)에서 유사한 법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개주 모두 버몬트주의 입법 현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화석연료 기업들로부터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안 통과 직후 미국석유협회(API)는 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비난에 나섰습니다. 과거 합법적이었던 활동까지 소급해 비용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단 것이 API의 지적입니다.
실제로 스콧 주지사 역시 새 법안이 법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단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화석연료 업계와 주정부 간 법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어 스콧 주지사는 “(타당성 조사에) 주의회가 60만 달러(약 8억 2,600만원)만 할당했다”며 “성공을 장담하지 못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로 인해) 단기적·장기적 비용과 결과 모두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버몬트주가 기후변화 피해변제법 마련에 실패하면 선례를 남기고 다른 주들의 손해배상 능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해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공화당 출신 주지사가 돌연 기후변화 피해변재법 추진한 까닭은? 🌊
한편, 공화당 소속 스콧 주지사가 기후변화 피해변재법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현재 버몬트 주의회는 민주당이 장악했고, 행정부는 공화당이 장악했습니다.
그간 스콧 주지사는 기후대응이나 에너지효율과 관련된 법안에 거부권을 발의한 이력이 있습니다.
당장 지난 4월 그는 주의회가 발의한 법에 거부권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해당 법은 주택 난방 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도록 장려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그런 그가 돌연 기후변화 피해변재법을 추진한 이유가 오는 11월 열릴 버몬트주 주지사 선거 때문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해당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열립니다.
지난해 여름 버몬트주를 덮친 최악의 폭우로 민심이 급격하게 돌아선 탓에 그의 재선 가도의 빨간불이 들어왔단 분석이 나옵니다.
작년 7월 버몬트주를 비롯한 미 북동부에는 이틀간 230㎜가 넘는 폭우가 내렸습니다. 한달치 비가 쏟아진 것입니다.
당시 버몬트주 주도인 몬트필리어 도심은 물에 잠겼을뿐더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폭우로 인한 버몬트주 내 경제적 피해만 최대 50억 달러(약 6조 5,000억원)로 추산됐습니다.
스콧 주지사는 “미국에서 가장 국내총생산(GDP)이 낮고 인구가 가장 적은 주 중 하나인 버몬트주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비용을 자체적으로 (화석연료 기업으로부터) 회수하기로 결정했다”며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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