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소 거품이 꺼지고 있단 분석이 해외 유력 경제매체를 통해 연이어 나왔습니다.
그린수소 등 청정수소는 철강·화학 등 산업계 내 탈탄소화 해결책으로 주목받습니다. 고온·고출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기화는 어렵단 인식 때문입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가 청정수소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해 각국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내놓으며 기업이 생산시설 구축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청정수소에 대한 ‘과장된’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FT는 복잡한 원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주요 원인으로는 ▲보조금 정책 연기 ▲비용 상승 ▲기술 발전 속도 저하 등이 꼽혔습니다.
이보다 사흘 앞선 17일에는 미국 블룸버그통신 역시 유럽의 그린수소 투자에 대해 “위험한 도박”이라 경고한 바 있습니다.
수소경제 액셀 밟은 업계? FT “과속방지턱 만나” 🚧
청정수소 시장에 대한 기대가 본격화된 것은 2021년입니다.
당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청정수소 공급이 늘어야 한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IEA는 2030년까지 세계 그린수소 공급이 70Mtpa(연간 7,000만톤)에 달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같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에너지 어스샷 이니셔티브(Energy Earthshot initiative)’ 또한 청정수소 발전에 탄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이니셔터는 10년 내 청정에너지의 획기적 발전을 목표로 합니다. 세부 목표인 ‘수소샷(Hydrogen Shot)’은 10년 내 청정수소 생산비용 1달러/㎏ 달성을 골자로 합니다.
2022년 유럽연합(EU)도 ‘2030년 재생수소 1,000만 톤 생산·수입’을 목표로 제시하며 수소경제 구축을 본격화했습니다. 2050 기후중립 달성과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의 탈피를 목표로 한 ‘리파워 EU(REPower EU)’ 정책의 일환입니다.
그러나 각국 정부와 산업계의 강력한 의지에도 시장 전망은 어둡습니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2030년 청정수소의 예상 공급량은 16.4Mtpa(연간 1,640만 톤)에 불과합니다. IEA 전망치(70Mtpa)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FT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청정수소 산업이 “과속방지턱”을 만난 것이라고 비유했습니다.
FT “청정수소 잠재력, 기술 발전에 ‘과대광고’로 전락할 수도” 📉
작년 9월 IEA 역시 비용 문제로 세계 청정수소 생산이 지연되고 있단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당시 발표에 의하면, 2023년 발표된 청정수소 프로젝트 중 최종종투자결정(FID)을 내린 것은 단 4%에 불과합니다.
청정수소 업계에 닥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FT는 더 큰 문제로 “(청정수소가) 실제로 얼마나 유용할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열배터리·히트펌프 등 전기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소의 장점이 희석되고 있단 것이 매체의 진단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전기화 기술이 수소를 대체할 경우,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수소의 예상 수요는 350Mtpa(연간 3억 5,000만 톤)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FT는 전망했습니다. 이는 IEA가 당초 추정한 수요의 절반에 불과한 규모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로는 산업용 열과 중장비 운송 분야가 꼽혔습니다.
1️⃣ 산업용 열|고온 히트펌프 등장
산업용 열은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사용량의 25%를 차지합니다. 철강·시멘트부터 식품·패션 등 다양한 산업이 열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전기화 해결책인 히트펌프는 과거 최고온도가 150℃에 불과합니다. 에너지 관련 비영리단체 LDESC에 따르면, 해당 온도(150℃)는 산업계 전체 열수요의 30%에만 적용이 가능하단 점을 짚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FT는 기술 발전으로 히트펌프의 한계가 깨지고 있단 점을 짚었습니다. 에너지컨설팅 기업 시스템아이크에 따르면, 히트펌프 최고온도는 현재 700℃까지 구현 가능합니다.
또 1,500℃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고온 히트펌프 등장에 따라 산업계 전체 열수요를 커버할 수 있어 더는 청정수소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단 것이 매체의 분석입니다.
2️⃣ 중장비 운송|배터리 주행거리 향상
운송 분야 내 청정수소 역할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대형버스·트럭·중장비 운송은 일반 승용차와 달리 배터리 기반의 전기자동차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거운 배터리 무게 대비 주행거리는 불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상용 판매되는 1톤 트럭 기준,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는 250㎞가 채 되지 않습니다.
허나, 이마저도 기술개발로 주행거리가 점차 향상되고 있단 것이 FT의 지적입니다. 미국 테슬라의 경우 2022년 최대 800㎞ 주행이 가능한 전기트럭 ‘세미’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더욱이 수소트럭 또한 충전소 같은 별도 인프라(기반시설)가 구축돼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미 인프라가 구축된 전기트럭에 대한 선호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단 것입니다.
美·英, 주요 수소 보조금 중단…업계 내 청정수소 수요 하락 예상 📉
한편, 수소경제 구축에 앞장서 온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요 수소 정책이 지연되거나 중단됐습니다.
지난 4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 규정 최종안에서 수소혼소를 삭제했습니다. 앞서 EPA는 2023년 초안에서 발전소 탈탄소화 경로에 CCUS(탄소포집·저장)와 청정수소 혼소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발전 산업을 탈탄소화로 전환하는 중요한 수단인 그린수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지 못할 것이란 미국 정부 내 회의론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달 10일에는 영국 정부도 수소 지역난방 실험 계획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영국 국가인프라위원회가 정부에 수소 지원을 배제하고 히트펌프 보조금에 집중할 것을 권고한데 이은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당초 수소를 사용하는 가정용 보일러를 2026년부터 도입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 청정수소 도입에 제동을 건 주요 원인으로는 높은 생산비용이 꼽힙니다.
청정수소는 기본적인 생산 비용이 높습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문제도 겹치며 수소 프로젝트 비용이 전반적으로 급증했단 것이 FT의 분석입니다.
독일의 그린수소 프로젝트 ‘바트 라우흐슈테 에너지 파크’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은 2억 1,000만 유로(약 3,100억원)로 추정됩니다. 이는 초기 추정치의 1.5배에 달합니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독일 스타트업 선파이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유럽 청정수소 인프라, 천연가스 전용 우려” 🌐
블룸버그는 그중에서도 유럽 내 그린수소 정책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유럽 각국에서 추진하는 청정수소 인프라가 화석연료 용도로 전용(轉用)될 수 있단 지적입니다.
현재 독일·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영국 등이 유럽 내에서 청정수소 전환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 모두 그간 저렴한 천연가스에 의존해 왔단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게 수소는 파이프라인과 저장시설 등 천연가스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단 점에서 매력적인 탈탄소 방법입니다. 발전소·산업용 시설 등은 약간의 시설만 개선하면 바로 수소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용과 시간 소모가 적단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유럽 내 수소 인프라 프로젝트 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단 점을 꼬집습니다.
이는 수소의 특성과 연결됩니다. 기체수소는 폭발성이 높습니다. 액화수소 역시 인프라 구축에 비용이 많이 듭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운송이 어려운 액화수소 대신 암모니아 활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허나, 암모니아 또한 독성 문제로 인해 환기시설 등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합니다. 파이프라인 운송이 어려워 현재는 트럭·선박 등에 의존해야 합니다. 여기에 아직 경제성 있는 암모니아-수소 전환 방법이 부재하단 문제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그럼에도 시장이 낙관적 희망만으로 수소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는 상황이란 점을 짚었습니다. 이를 “큰 도박”이라고 매체는 꼬집습니다.
청정수소 도입이 지연 시 해당 시설들이 화석연료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독일 라이프치히수드 열병합발전소의 경우, 연료 운송을 위해 현재 10억 유로 규모의 터미널을 건설 중입니다. 해당 시설은 수소 등 청정연료 처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됐지만 초기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활용될 계획입니다.
유럽 싱크탱크 아우로라에너지리서치(AER)의 클라우디아 귄터 연구책임자는 청정연료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차질을 빚을 경우 이런 시설들이 천연가스로 가동될 위험이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도박이) 틀린다면 세계는 수십년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며 “재앙적인 기후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