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인해 투자 시장 전반이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기후테크 산업에는 투자금이 몰리고 있단 분석이 나왔습니다.
분야별로는 녹색철강 등 산업군 내 탈탄소화 기술로 자본이 대거 몰리고 있을뿐더러, 탄소회계나 기후데이터 역시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발간한 ‘2024년 기후테크 미래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2023년 돌연 파산한 SVB는 현재 미국계 중소은행인 ‘퍼스트 시티즌스 뱅크셰어스(FCNCA)’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FCNCA 산하에서 주로 기후테크와 스타트업 생태계와 관련한 투자 동향과 트렌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SVB는 2021년부터 기후테크 산업의 미래를 분석한 연례 보고서를 발간해왔습니다.
회사 기후테크·지속가능성 실무 책임자인 댄 발디는 “기후테크 산업으로 투자금과 참여하는 기업 수 모두 증가했다”며 “이상기후로 인한 위험이 증가한 가운데 이를 완화하기 위한 기후기술 역시 성장해야 한단 인식이 깔린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SVB, 올해 1분기 미국 내 기후테크 110억 달러 투자…“투자 흐름 탄력적” 💸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벤처캐피털(VC) 등 미국 내 투자사가 기후테크 산업에 투자한 자본 규모는 110억 달러(약 14조 9,120억원)에 이릅니다. SVB가 시장조사기관 모닝스타의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입니다.
앞서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은 올해 1분기 전 세계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금이 약 81억 달러(약 11조원)인 것으로 집계한 바 있습니다.
투자액수가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두 기관의 기후테크 산업 분류체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SVB는 상장지수펀드(ETF)나 뮤추얼펀드도 포함해 집계합니다.
투자금액이 상이하나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흐름 추세는 타 산업보다 긍정적인 상황이란 것이 두 기관의 공통된 진단입니다.
미국 전체 VC 투자 거래 거래 건수가 대폭 줄어든 반면, 기후테크 투자 거래 건수는 소폭 감소해 투자 흐름이 여전히 견고하다고 SVB는 밝혔습니다.
“반(反) ESG 투자·그린워싱 등 역풍”…출자자 86% 기후테크 투자 관심 ↑ 📈
우려도 있습니다. 예컨대 SVB는 보고서에서 “미국 내 반(反)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로 인한 역풍이 불고 있다”고 상황을 짚었습니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과 탄소배출권에 대한 회의론 역시 미국 내 투자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SVB는 덧붙였습니다.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나 1억 달러(약 1,350억원) 이상 투자된 ‘메가딜’ 거래 건수는 지난해 대비 5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메가딜은 거래 건수의 약 3%에 불과하나, 전체 투자금액에서 차지한 비중이 44%에 이른다고 SVB는 밝혔습니다.
시드·시리즈 A 등 초기 스타트업 대상 투자는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내 기후테크 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2021년 전체 19%에서 2023년 26%로 늘어났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2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기침체로 인해 투자사들이 투자리스크가 비교적 낮은 초기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단 것.
또 다른 하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투자사가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단 점입니다.
SVB가 출자자(LP)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혁신 경제 분야 출자자의 약 86%가 “기후테크 산업에 큰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2021년 조사에서 기후테크 산업 투자 관심도가 60%대에 머물던 것과 비교해 괄목할 만한 성장이란 것이 기관의 설명입니다.
“탈탄소화 제조·탄소회계·탄소포집 투자 ↑ 운송·농업·대체단백질 투자 ↓” 📊
기후테크 산업 부문의 투자 전망은 전반적으로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기후테크 스타트업 상당수는 사업 지속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SVB가 피치북 등을 통해 데이터를 집계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약 60%는 1년을 버틸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스타트업들이 추가 투자 유치나 수익화에 실패할 경우 기업의 영속성에 심각한 우려가 있단 것입니다.
SVB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어려운 기술적 과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다른 빅테크 스타트업보다 자본집약적이다”고 밝혔습니다.
기후테크 산업별로도 상황이 다릅니다.
🔺 탈탄소화 제조 기술 |2023년 투자 156% 증가 (2022년 대비)
먼저 중공업 내 탈탄소화 기술개발로 투자금이 몰리고 있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남에 따라, 지난해 탈탄소화 제조 기술에 대한 투자는 전년 대비 156% 증가했습니다.
기관은 “정부 세액공제의 영향으로 제조업 내 탈탄소화 기술개발과 투자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향후에는 ▲지속가능 항공유(SAF) ▲녹색철강·시멘트 ▲청정전력 등 유망 분야에서 투자자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스타트업 란자제트는 올해 2월 미 남부 조지아주에서 SAF 대량 생산을 위한 상업 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공장은 미 에너지부와 투자사들의 지원을 받은 끝에 준공됐습니다.
🔺 기후환경데이터| 2023년 47% 성장 (2021년 대비)
인공위성 등으로부터 수집한 기상환경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후적응’ 산업에도 투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블랙록이나 스탠다드앤푸어스(S&P) 글로벌 같은 기관들 역시 최근 투자자들이 기후적응 스타트업 투자에 검토 중이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 카본테크|2023년 75% 성장 (2021년 대비)
탄소회계도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입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공시를 발표한단 소식이 처음 나온 이래 탄소회계 스타트업들은 빠르게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역시 미국 내 세액공제 덕에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포집한 탄소 1톤당 최대 180달러(약 24만원) 규모의 세금을 공제해 주는 미국의 45Q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SVB는 “세액공제가 탄소포집 시장을 활성화했다”며 “(미국에서만) 최근 2년간 CCUS 프로젝트 427개가 등장했다”고 밝혔습니다. CCUS 등 탄소포집 산업 내 회의론 역시 적지 않으나, 적어도 세액공제가 시장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단 것이 기관의 분석입니다.
🔻 운송·농식품|경기침체 속 고전…제품 개발 중단 등 잇따라
반면, 운송이나 농식품 같은 일부 산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체단백질 스타트업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이어 고전하고 있다고 기관은 전했습니다.
일부 대체단백질 스타트업은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에 제품 개발을 중단하거나 폐업한 상태입니다.
2024년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97개…SVB “투자사로부터 엑싯 압박 커져” 💼
한편, SVB는 기후테크 산업 내 ‘유니콘 기업’ 수가 97개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기업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 3,500억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뜻합니다.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확대 덕에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수가 지난 몇 년간 3배 이상 늘었단 것이 SVB의 말입니다.
SVB는 “97개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설립된 지 10년 이상이 넘었다”며 “초기 투자자들로부터 엑시트(투자금 회수) 압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기간 주식시장 상장에 성공한 기업 수는 31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관은 “기후테크 산업은 혁신기술과 자본 집약적 특성을 고려할 때 일반적으로 수익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며 “기후테크 스타트업 창업가 입장에서는 엑시트까지의 경로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빅테크 기업은 설립 후 유니콘 기업이 되기까지 평균 6.4년이 걸립니다. 반면, 기후테크 기업은 평균 7.7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들 유니콘 기업의 엑시트 결과가, 향후 다른 기후테크 스타트업들과 투자사들에게 좋은 성장 로드맵이 될 것이라고 SVB는 덧붙였습니다.
[SVB 2024년 기후테크 미래 보고서 모아보기]
① ESG 역풍 속 美, 1분기 기후테크에 110억 달러 투자
② “새로운 지평 열 것” 실리콘밸리은행이 꼽은 차세대 기후테크 산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