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이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1999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순손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유럽과의 거래가 줄어듦에 따라 최악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의하면, 가즈프롬은 지난해 6,290억 루블(약 9조 4,000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 1조 2,300억 루블(약 18조 3,885억원)의 순수익과 대비되는 수치입니다. 이날 실적이 공개된 후 러시아 증시에서 회사 주가는 배당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 속에 4.4% 급락했습니다. 이는 1년 만에 최대 폭의 하락입니다.
가즈프롬, 실적 부진 원인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로부터 독립한 EU” 🛢️
이같은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천연가스 판매량이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2023년 회사 매출은 전년 대비 30% 감소한 8조 5,000억 루블(약 127조 1,600억원)이었습니다.
이중 천연가스 판매 매출이 4조 1,000억 루블(약 61조원)이었습니다. 2022년 8조 4,000억 루블(약 125조원)과 비교해 반토막이 난 것입니다.
유럽 시장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유럽 등 서방 주요국은 제재 중 하나로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러시아 역시 보복의 일환으로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줄여왔습니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에 의하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EU 역내 수입 점유율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40%에서 2023년 8%로 크게 줄었습니다.
전쟁 직후 EU가 러시아 대신 미국과 노르웨이로부터 천연가스 수입량을 대폭 늘렸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2022년 5월 EU 집행위가 발표한 ‘리파워 EU(REPower EU)’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단 평가입니다. 이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충을 통해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한 분석가는 이번 손실에 대해 “한때 유럽 에너지 공급에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던 가즈프롬이 유럽연합(EU) 시장 상실에 적응하지 못했단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작년 가즈프롬에서 유럽으로 향한 가스관의 물동량은 1970년대 초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비교적 온화했던 유럽의 겨울철 날씨 역시 회사의 부진한 실적에 일조했단 분석도 나옵니다.
“유럽 대신 중국 시장으로 눈 돌린 가즈프롬”…석유 사업에 되레 집중 🤔
유럽 시장을 되찾지 않는 한 가즈프롬의 손실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사측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석유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회사의 석유·석유제품 수익은 전년 대비 4.3% 늘어난 4조 1,000억 루블이었습니다. 석유 부문은 비교적 서방의 재재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단 평가입니다.
독일 싱크탱크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의 세르게이 바쿨렌코 선임연구원은 “가즈프롬은 한때 석유 사업인 ‘가스프롬네프트’를 부수적으로 운영하는 거대 가스 회사였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가스프롬네스트가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사업만큼 매출을 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사업의 핵심인 가스 부문이 흔들리며 발생한 손실이 워낙 큰 만큼 석유 판매로는 메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나아가 사측이 유럽을 대체할 시장으로 중국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전했습니다.
현재 사측은 러시아 북부 야말반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까지 6,700㎞를 연결하는 가스관 ‘시베리아의-힘2(Power of Siberia 2)’를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허나, 완공까지 수년이 필요할뿐더러, 중국의 천연가스 소비량은 크지 않아 가스프롬의 가스 수출량이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크레이그 케네디 전(前) 뱅크오브아메리카 부회장은 “(가즈프롬이) 입은 손실은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회사의) ‘전쟁 전 사업모델’은 이제 지속불가능해졌다”고 그는 분석했습니다.
한편, 이번 실적과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구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 중 하나였던 가즈프롬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