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정책이 주요 11개국 가운데 중국과 함께 8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7일 기후싱크탱크 기후솔루션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23 철강 정책 평가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영국 기후싱크탱크 E3G 등이 지난 2월 발간한 ‘2023 철강 정책 스코어카드’를 번역한 것입니다.
철강 산업은 탄소집약적인 공정일뿐더러, 탈탄소화가 어려운 산업군으로 꼽힙니다. 세계철강협회는 철강 산업의 세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7~9%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보고서는 철강 생산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정책 수단 8가지를 각국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평가했습니다.
평가 대상인 8개 항목은 ①정책 방향 및 명료성 ②정부 재정 지원 ③탄소가격 책정 ④소재 효율성 및 순환성 ⑤녹색철강 정의 ⑥공공조달 ⑦철강용 수소 및 CCS(탄소포집·저장) ⑧철강용 청정 전력 등입니다.
분석 결과,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 ‘아직은 아시아 선두 자리와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습니다.
세계 주요 철강 생산국인 한국이 아시아에서 철강 탈탄소화의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화석연료가 주요 발전원을 지배하고 있단 것이 보고서의 지적입니다.
여기에 철강업계 탈탄소 경로를 지원할 정책 역시 모호한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철강 탈탄소 정책 평가, 11개국 중 독일 1위…한국·중국 공동 8위 📊
평가 만점 기준은 24점으로 주요 11개국 중 1위에 오른 곳은 독일(13.4점)이었습니다. 저탄소 제강 설비를 가장 많이 개발 중일뿐더러, 독일 정부가 탄소차액계약제도(CCfDs)를 도입하여 산업 내 녹색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어 프랑스(11.9점), 이탈리아(9.4점), 영국(8.5) 순이었습니다. 상위권은 모두 유럽 철강국이 차지했습니다.
이중 보고서는 “이들 3개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은 철강 정책 평가표가 첫 선을 보인 이래 탈탄소 정책 면에서 계속해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5.75점을 받아 공동 8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보다 낮은 곳은 일본(5.5점)이었습니다. 조사 대상 중에서는 브라질(1.25점)이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보고서 저자인 알렉산드라 왈리스제브스카 ESG 기후·에너지정책 분석가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청정전력 및 수소 기반시설 구축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왈리스제브스카 분석가는 “이는 전력시스템 탈탄소화를 위한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낮을뿐더러, 청정에너지 시설 및 계획에서 제철업을 주요 최종 용도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3G는 보고서에서 11개국의 철강 정책 전반에 대해 “각국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굼뜬 모양새”라며 “2022년 평가와 비교 시 큰 변화가 포착된 주요7개국(G7)은 전무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정책 방향이나 투자, 나아가 기술 전개 역시 부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철강 산업 탈탄소화 정책, 지적사항 6가지는? 🤔
구체적으로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은 ▲정부 재정 지원 ▲녹색철강 정의 ▲수소 및 CCS ▲철강용 청정 전력 등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김다슬 기후솔루션 철강팀 정책 연구원은 “(철강 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간산업이자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16.7%를 차지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선 “탄소중립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그린수소 등 녹색철강 생산 단가를 낮추고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빠른 대책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김 연구원은 제언했습니다.
보고서가 한국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정책과 관련해 꼬집은 부분은 크게 6가지입니다.
1️⃣ 정부 재정 지원 부족
보고서는 정부가 철강 탈탄소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수소환원제철 등 실제 감축 잠재력이 높은 기술로 가는 자금 비중이 적단 점을 꼬집었습니다.
여기에 설비투자 비용에 대한 지원이 크게 부족하단 점도 지적됐습니다.
2️⃣ 녹색철강 정의 미흡
더욱이 한국은 녹색철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녹색철강에 대한 국가 차원의 표준을 수립해 기후정책과 보고체계를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단 것.
실제로 독일은 녹색철강 정의 채택을 위한 실무단이 존재합니다. 반면, 한국은 실무단이 아직 없을뿐더러 채택 의지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의사도 밝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의가 없단 말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이어질 수 있단 위험이 있단 뜻입니다. 보고서는 “고객에게 무엇이 친환경(그린)인지 명확하게 보증하지 않고도 특정 제품 라인을 ‘친환경’이라고 마케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추후 공공조달 등을 활용함으로써 수요를 이끌기 위해선 녹색철강에 대한 공통된 표준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제언했습니다.
3️⃣ 석탄 기반 철강 생산
녹색철강 생산설비 증설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돼 있긴 하나, 한국의 총생산 용량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한국의 철강 산업이 1.5℃ 경로에 부합하지 못하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세계 6위 철강 생산국인 한국의 조강(粗鋼)* 생산능력의 64%는 석탄 기반 시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스코 등 일부 철강사는 석탄 기반 시설 일부의 수명 연장에 나섰단 점도 지적됐습니다.
*조강: 제강로(製鋼爐)에서 제조된 그대로의 가공되지 않은 강철.
4️⃣ 청정에너지 진전 소극적
보고서는 여기에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 의지가 보이지 않는 등 정부의 정책 신호가 미약하다고 강하게 꼬집었습니다. 녹색철강 생산의 핵심 요소는 청정에너지 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생산 공정의 탈탄소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철강 부문의 재생에너지 수요 확충이 필요하나, 이를 위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단 것입니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2년 7.15%에 그쳤고, 2030년에는 18.2%로 10%p(퍼센트포인트) 증가를 목표로 합니다.
5️⃣ 청정수소 정책, 철강 생산과 연결고리 부재
국가 수소 정책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정수소 국내 생산 비율을 2030년까지 34%에서 2050년에는 60%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정부 역시 철강 부문 전환을 위해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업용 차량과 전력 부문에서의 적용에 치중하고 있단 점이 문제로 꼽혔습니다.
6️⃣ 배출권거래제서 무상할당인 철강 산업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서 철강 산업은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고 있습니다.
배출권거래제가 철강사들의 탄소감축을 유인하지 못할 뿐더러, 민간 부문이 전환에 따른 재정 부담 상당수를 떠안고 있단 지적입니다.
한편, 산업 부문 배출량 감축목표가 낮은 것도 문제로 꼽혔습니다. 작년 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저탄소 철강 생산을 위한 철강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한국은) 철강 탈탄소화 전략을 수립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면서도 “철강 부문에 대한 별도의 배출감축 세부목표를 제시하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철강 산업 1.5℃ 궤도 도달할 잠재성 충분” 🏭
보고서는 한국이 배출권거래제를 적극 활용하고 무탄소 철강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가 재정 지원을 충분히 한다면, 철강 산업을 1.5℃ 궤도에 올려놓을 잠재력이 충분하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를 위해 ▲R&D 및 자본비용 지원, 배축 감축 잠재력 90% 이상 기술 집중 ▲제4차 배출권거래제(2026~2030년)에 철강 부문 무상할당에 대한 단계적 폐지 일정 수립 ▲청정전력 목표 및 그린철강 생산 연결 등을 우선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한편, 왈리스제브스카 분석가는 “2024년은 국제 철강 탈탄소화 의제를 진전시키는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며 “녹색철강 시장 구축, 녹색 철 파트너십 추구 등을 위해 표준 설정 및 공공조달 분야에서 특히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