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산 풍력터빈의 과잉 보조금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스페인·그리스·프랑스·루마니아·불가리아 등 5개국의 풍력발전단지가 조사 대상으로 언급됐습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단, 구체적인 조사 대상 기업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EU 집행위는 지난 3일 중국 태양광 패널 기업에 대한 과잉 보조금 조사에 착수한 바 있습니다.
청정에너지 전환을 서두르는 동시에 값싼 중국산 제품으로부터 EU 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 청정에너지 시장 왜곡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입니다.
18일 그리니엄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보조금만으로 보기 어렵단 전문가 분석도 일부 나옵니다. 또 이번 조치가 EU와 중국 간 무역분쟁으로 퍼질 가능성을 낮단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EU 경쟁담당 수석 “中 장악한 태양광 업계, 반복 피해야” ☀️
베스타게르 부집행위원장은 이번 조사가 태양광 패널 산업이 처한 현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태양광 산업은 현재 중국 기업이 세계 태양광 밸류체인의 80% 이상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비중은 높습니다.
그 결과, EU 27개 회원국에 설치되는 태양광 패널 중 3%만이 유럽에서 생산된단 것이 부집행위원장의 지적입니다.
그는 “중국이 어떻게 태양광 패널 산업을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플레이북을 봐왔다”며 현 중국의 전략을 5단계로 요약했습니다.
①자국 시장 내 해외 합작투자 유치 ②해외 기술 습득 ③막대한 보조금으로 자국 기업 육성 ④해외 기업에 대한 자국 시장 폐쇄 ⑤잉여 생산용량 저가 수출 등입니다.
베스타게르 부집행위원장은 중국이 이같은 전략을 전기자동차와 풍력발전 나아가 반도체 산업에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계 풍력터빈 시장 60% 차지한 中…“EU, 풍력발전 패키지로 지원” 🍃
청정에너지 전환에서 EU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가운데 이는 풍력 산업에서 더 크게 드러납니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에 의하면, 전 세계 풍력발전 설비 용량에서 2023년 기준 중국 기업의 비중은 60%에 달합니다. 2018년 37%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설치 용량을 기준으로 할 경우 중국의 비중은 65%에 달합니다. 2023년 중국에서만 71.1GW(기가와트)가 설치됐습니다. 같은해 EU에 건설된 풍력발전이 17GW에 불과한 것과 비교됩니다.
EU는 2030년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풍력발전 설비 420GW 설치라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EU의 풍력발전 용량은 220GW에 불과합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연평균 33GW 이상 증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EU는 이같은 풍력발전 시설이 역내에서 생산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9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국정 연설에서 잘 드러납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당시 연설에서 “(EU) 청정기술 산업의 미래는 유럽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같은해 10월 EU 집행위가 풍력 산업 지원을 위한 ‘유럽풍력발전패키지’를 발표한 것도 이때문입니다. ▲공공조달 사업에서 역내 기업 우대 ▲절차 간소화로 신속한 허가 ▲추가 자금 지원 등을 통해 EU 풍력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또 환경·지속가능성·사이버보안 등 비(非)가격적 요소를 평가 기준으로 채택한단 내용도 담겼습니다.
‘과잉 보조금’ 단속 나선 EU “中 보조금 환급·계약체결 금지까지 가능” ⚖️
EU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적극적 견제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과잉 보조금 수사입니다.
작년 7월 시행된 ‘역외보조금 규정(FSR)’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간 윈드유럽 등 유럽 풍력업계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부당하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2009년 육상풍력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했습니다. 2014년에는 해상풍력발전 프로젝트로 지원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은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단계적으로 폐지됐습니다. 단, 지방정부의 보조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저리 융자·장기 상환 유예 등 간접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며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단 것이 유럽 재생에너지 업계의 주장입니다.
FSR은 이러한 역외 보조금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EU 회원국 내 공공입찰 계약이 2억 5,000만 유로(약 3,670억원)를 초과하는 기업이 최근 3년 이내 제3국에서 400만 유로(약 58억 7,000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받으면 EU 집행위에 사전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나아가 EU 집행위는 역외 보조금에 대한 직권 조사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조사 결과, 잠재적·실질적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고 판단될 시 보조금 환급 등의 시정조치도 가능합니다.
신고 의무나 시정조치를 위반할 시 직전연도 총매출액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EU가 풍력발전 역외보조금 직권조사에 나설 경우, FSR에 따른 2번째 직권조사 사례가 됩니다. 첫 사례는 지난 2월 중국 국영 열차생산 기업 중처그룹(CRRC)의 불가리아 기차 공급 입찰에 대한 직권조사였습니다.
中 상무부 강력 반대 표명…“보조금, 핵심 문제 아니란 지적도” 💬
베스타게르 부집행위원장의 연설 다음날(10일) 중국 상무부는 즉각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습니다.
상무부는 “EU가 또 다시 중국의 정책·시장환경·경제 시스템을 왜곡했다”며 “이후 나올 차별적인 반덤핑 조치에 대한 구실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허야둥 상무부 대변인 또한 EU의 중국 풍력기업 조사가 “자유무역 원칙을 위반하고 정상적인 양국 산업 협력을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EU-중국 간의 무역분쟁으로 퍼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닉 마로 분석가는 “(중국은) 유럽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데 관심이 있다”며 중국이 직접적인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습니다.
EIU는 영국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정치경제 분석기관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중국의 경제적 비용우위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의 벤 맥윌리엄스 연구원은 “정확히 무엇이 경쟁우위를 주도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며 “단지 정부의 개입 때문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특유의 저렴한 에너지와 인건비, 규모의 경제, 기술혁신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단 것이 맥윌리엄스 연구원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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