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본 결과, 실질적인 기후공약을 제시한 비율은 24.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기후유권자’가 늘면서 주요 정당 모두 기후대응을 강조해 온 것과 대조된 결과입니다.
녹색전환연구소·로컬에너지랩·더가능연구소 등 기후정치바람을 포함한 국내 16개 기후환경단체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254개 선거구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 696명의 기후공약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696명* 후보자 중 168명만이 기후공약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선거공보를 기준으로 최소 2가지 이상의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를 집계한 것입니다.
*22대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는 698명이나, 이중 2명이 사퇴했다.
지역별 기후공약 제주>경남>인천 순으로 多…“대전 5%대 꼴찌” ⚖️
단체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생물다양성 보존 등을 다룬 공약은 기후공약으로 분류했습니다. 원내 정당의 기후공약을 그대로 실은 경우도 기후공약으로 분류했습니다.
단, 개발공약은 ‘기후’ 문구가 포함됐더라도 제외했습니다. 구체적인 수식어 없이 ‘기후’만 넣은 것도 제외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공보물에서 기후공약이 최소 2개 이상인 경우만 후보로 분류했습니다.
조사를 살펴보면,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국민의힘의 경우 출마자 254명 중 37명(15%), 더불어민주당은 245명 가운데 95명(39%)에 그쳤습니다.
녹색정의당은 출마자 17명 모두 기후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새로운미래는 28명 중 4명(14%), 진보당은 21명 중 10명(48%)이 기후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정당 대다수는 재생에너지 확대나 탄소중립산업법 제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지역별로는 제주에서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 비율이 42.8%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경남(40.5%), 인천(38.5%), 충남(35.5%), 광주(31.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 숫자로는 경기가 41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31명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두 곳은 전체 후보 대비 비율은 27.9%와 24.8%로 비교적 낮았습니다.
반면, 전북·부산은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대전(5.6%)이었습니다.
숨은 기후공약 찾기? 지하화·공항 건설 등 무더기 개발공약 난무 🏗️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개발공약 속에서 기후공약을 찾는 것은 마치 숨은 그림을 찾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각 정당 후보들이 제시한 기후공약보다 개발공약이 더 많았단 것이 이 소장의 설명입니다.
예컨대 696명 후보 중 181명은 철도·도로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지하화 공약이 없는 곳은 3곳(종로·강북·강동)에 그쳤습니다.
또 196명은 그린벨트와 상수원·고밀도 개발 등의 규제 완화안을 내놓았습니다. 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도 47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소장은 “지하화 사업 1㎞당 공사비 금액은 4,000억 원 정도라며, 전국적으로 80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서울시 예산 45조 7,000만 원의 약 2배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사업 추진 현실성이 낮은 가운데 무리하게 (개발 사업을) 추진할 시 빚으로 남을 것이 명확하다”며 “재정이나 자원 규모로도 이 모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습니다.
22대 총선, 무더기 개발공약 실현 가능성 30%대 그쳐 📊
한편,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이 발표한 개발공약 수는 2,239개로 집계됐습니다.
같은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22대 총선 개발공약 분석 결과’에 담긴 내용입니다. 경실련은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녹색정의당·새로운미래·개혁신당·진보당 등 6개 정당 지역구 254곳의 후보들의 개발공약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6개 정당 지역구 후보자 608명 중 537명이 개발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약 88%가 개발공약을 내놓은 것입니다. 허나, 재원조달 계획을 공개한 후보는 28%(153명)에 그쳤습니다.
경실련은 또 개발공약을 ▲필요재원 ▲재원조달 방안 ▲이행시기 ▲이행방법 ▲예비타당성 조사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각 공약별로 실현 가능성을 5점 척도의 점수를 매겼습니다.
전문가 평가 결과, 전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36%로 평점은 5점 만점에 1.8점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공약, 대중교통 확대에 몰려…농식품 산업 지원 공약 상대적 ↓” 🤔
지역구별로 눈여겨볼 기후공약도 있었습니다.
전기자동차 시대에서 피해를 볼 자동차 정비업체들의 전환을 돕겠단 시범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즉, 기후대응 과정에서 손실 입을 노동자와 산업계의 ‘정의로운 전환’을 돕겠단 것. 해당 공약은 서울 성북구에서 나왔습니다.
이밖에도 ▲기후정책 전문 보좌진 배치 ▲22대 국회 내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상설화 ▲기후실업급여 도입 ▲농작물 기후보상제도 도입 등의 공약도 눈에 띄었습니다.
다만, 단체들은 후보들이 제시한 기후공약 상당수가 부실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후보자 상당수가 제시한 기후공약 상당수가 청년패스나 K-패스 같은 대중교통비 지원에 그쳤습니다.
원내 정당 모두 10대 공약에 기후공약을 제시한 반면, 지역구 후보들의 기후공약은 빈약했다고 이 소장은 성토했습니다.
식량, 먹거리 등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농식품 산업에 대한 지원 공약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총선서 나온 기후공약, 22대 국회서 이행 지켜봐야” 👀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후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조사 결과에 한목소리로 성토했습니다. 원내정당들이 기후공약을 약속했으나, 정작 지역구 후보들의 공약은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입니다.
전세이라 로컬에너지랩 팀장은 “대부분 공약이 지역 현안에 치중해 있었다”며 “민원성을 띤 것이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의 경우 48개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 150명 중 기후공약을 약속한 후보는 31명에 그쳤다고 전 팀장은 덧붙였습니다.
김현정 경기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위원장 또한 공약 상당수가 지역 현안에 치중해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모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기후공약을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덧붙였습니다.
22대 총선 기후공약 전수 결과를 살펴본 김민 빅웨이브 대표는 지역간 불평등이 가속화될 수 있단 우려를 내비쳤습니다.
철도·도로 건설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이어질뿐더러, 개발공약 대다수가 수도권과 지역간 불평등을 부추길 수 있단 것이 김 대표의 말입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22대 총선에서 나온 기후공약을 ‘텀블러’에 비유했습니다. 텀블러는 일상 속 친환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건입니다. 단, 기업들이 친환경 마케팅의 수단으로 텀블러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이른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란 비판도 받습니다.
김 대표는 “기후공약이 텀블러와 비슷하다고 본다”며 “실제로 (공약들이) 이행될지 혹은 (정당과 후보들의) 마케팅으로 활용될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소장은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임기가 기후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이란 점을 피력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후정치바람은 총선 이후 당선자들의 기후공약만 별도로 분석해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