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가 세계 수소 전해조 생산용량이 심각한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고 경고했습니다. BNEF는 블룸버그통신 산하 에너지 전문 조사기관입니다.
BNEF는 ‘전해조 제조 2024: 작은 연못에 너무 많은 물고기’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경고했습니다. 보고서는 지난 3월 26일(이하 현지시각) 공개됐습니다.
4일 그리니엄이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2023년 말 전해조 생산용량은 이미 2024년 예상 수요의 7.3배를 넘었습니다.
전해조는 전기를 사용해 물과 수소를 분해하는 장치입니다.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핵심 장비로 꼽힙니다.
보고서 작성자인 왕 샤오팅 BNEF 에너지 전문가는 “심각한 생산용량 과잉에도 기존 업계와 신규 진입자 모두 계속 공장을 짓고 있다”며 “모든 제조기업이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BNEF “2025년 전해조 생산용량 최대 75GW 달해” 📈
2023년 기준 세계 전해조 제조기업의 생산용량이 31.7GW(기가와트)에 달했다고 BNEF는 분석했습니다.
이는 2023년 실제 전해조 생산량의 17배에 근접한 수치입니다. 2024년 예상 수요와 비교해도 7배 이상 많습니다. 쉽게 말해, 실제 생산량에 비해 생산시설의 규모가 불필요하게 많단 뜻입니다.
보고서는 전해조 생산용량이 올해 연말까지 54.3GW, 2025년에는 75GW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같은 생산용량 확대가 규모의 경제로 이어지며 그린수소 생산비용을 낮출 것이란 기대도 가능합니다. 시설 확대와 기술 고도화로 단위당 생산비용이 낮아진단 예측입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전해조 생산용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이 태양광 업계를 장악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전해조 시장은 공격적으로 키우겠단 전략입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EU 에너지 정책에서 청정수소가 중요한 보완책이란 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난 3월 독일 전해조 제조 스타트업 선파이어가 유럽투자은행(EIB)으로부터 최대 3억 유로 규모의 자본 조달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미국 에너지부 또한 ‘청정수소 1㎏당 1달러(약 1,300원)’란 목표 달성을 위해 전해조 생산용량 확대를 강조해 왔습니다.
👉 그린수소 업계 최초의 유니콘 기업 EH2, 1.2GW급 전해조 생산시설 건설 중
전해조 공장 증가했지만…비용 증가에 프로젝트 지연·보류 📉
BNEF는 전해조 제조기업이 100개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특히, 알카라인(AEC) 전해조 시장에서의 신규 기업의 증가세가 눈에 띕니다. BNEF에 의하면, 생산용량에서 상위 10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84%에서 2023년 50%로 감소했습니다.
반면, 양이온교환막(PEM) 전해조 시장은 상위 5개 기업이 2024년에도 시장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문제는 전해조 수요가 공급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단 것입니다.
BNEF는 2023년 미국과 EU의 보조금 지급이 연기됨에 따라 수소 프로젝트 상당수가 지연·보류됐단 점을 짚었습니다.
미국은 작년 12월에야 ‘청정수소 생산 보조금 세부기준(45V)’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4일 기준, 아직 최종안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영국과 EU는 그린수소 공급 확대를 위한 경매를 진행했지만 비용 상승과 자금 조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린수소 생산시설의 건설 비용 증가도 전해조 수요 부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BENF는 지난 3월 이와 관련한 별도의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해당 보고서에는 중국·미국·유럽에서 전해조 생산 및 설치 비용이 작년 대비 50% 이상 상승했단 내용이 담겼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자재 가격과 에너지 비용, 인건비 상승 때문입니다.
2023년 흑자 기업 단 1곳뿐 “중국 영향력 여전히 높아” 🤔
보고서는 2023년 수익을 보고한 전해조 제조기업이 단 1곳에 그쳤단 점도 강조했습니다.
독일 철강 기업 티센크루프의 수소 부문 자회사인 ‘티센크루프 뉴세라’입니다. 2023년 2,300만 달러(약 31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습니다.
BNEF는 세계 최대 그린수소 시설인 사우디아라비아 네옴 프로젝트를 수주한 덕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프로젝트에 따르면 2.2GW의 수전해 설비가 구축될 예정입니다.
이곳을 제외한 세계 상위 전해조 기업 모두 높은 순손실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2023년 한해 ▲이탈리아 기업 인냅터는 1,300만 달러(약 175억원) ▲프랑스 기업 맥파이는 4,740만 유로(약 694억원) ▲미국 기업 플러그파워는 14억 달러(약 1조 8,865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각각 세계 4위와 13위, 16위의 전해조 생산기업입니다.
한편, 전해조 산업 내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BNEF는 밝혔습니다.
현재 중국의 전해조 생산용량은 21GW입니다. 세계 전해조 생산용량의 68%를 차지합니다. 이와 달리 서구 기업의 중국 내 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해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반박 나선 전해조 업계 “과잉공급? 숫자일 뿐” 💬
업계에서는 BNEF가 지적한 생산용량 과잉이 숫자에 불과하다고 반박합니다.
“파워포인트(문서의) 용량과 실제 전해조 생산용량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난해 10월, 유사한 지적에 대해 노르웨이 전해조 기업 넬ASA의 호콘 볼달 최고경영자(CEO)는 이같이 일축한 바 있습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설비 가동률과 제품 불량률, 부품 공급 상황으로 인해 실제 생산량은 기업이 명시한 것(명판 용량)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또 밸류체인(가치사슬)의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고 볼달 CEO는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최고 생산용량의 50%만큼만 전해조를 생산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는 과잉생산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BNEF의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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