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6,200만 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공개한 2022년 세계 전자폐기물 배출량입니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각) ITU는 ‘유엔 세계 전자폐기물 모니터(GEM)’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수치를 공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자폐기물이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장난감, 진공청소기, 전자담배 등 소형기기가 전체 전자폐기물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ITU는 밝혔습니다. 허나, 막대한 비중에 비해 재활용률은 12%대로 매우 낮았습니다.
에어컨, TV처럼 수거와 재활용 체계가 잘 구축된 대형 전자제품과 대비됩니다.
이같은 소형 가전제품의 재활용률을 높일 방법을 없을까요?
이에 최근 영국 디자인 스튜디오 ‘시모어파월’이 소형 전자제품의 빠른 분해를 도울 수 있는 4가지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개했습니다.
프로젝트명은 ‘언메이드(Un-made)’. 말 그대로 제품이 조립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입니다.
스튜디오는 전동칫솔을 사례로 부품 회수와 재활용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자동 분해 메커니즘’ 4가지를 탐구했습니다.
디자인팀은 첫 번째 아이디어를 ‘핀 메커니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먼저, 전동칫솔 케이스에 가느다란 핀을 찔러 넣습니다. 고정이 풀리고 몸체와 전자부품들이 분리됩니다. 스마트폰에서 핀을 사용해 유심칩을 제거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진공 메커니즘’입니다. 말 그대로 진공 상태를 활용합니다.
전동칫솔에 뚜껑을 씌워 공기를 빼내 진공에 가깝게 만듭니다. 그러면 압력차로 케이스 내 공기는 팽창하고, 팽창한 공기는 케이스에 힘을 가합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케이스는 결국 분해됩니다.
비행기 화물칸에서 캔 음료가 터지는 경우가 비슷한 사례입니다.
세 번째는 ‘피스톤 메커니즘’입니다. 원통 모양의 피스톤이 전동칫솔 하단을 밀어내면 케이스와 부품이 분리됩니다.
마지막은 ‘UV 접착제 메커니즘’입니다. 전동칫솔 생산 시 자외선(UV)을 쬐면 분해되는 접착제를 사용합니다. 이후 수거된 전동칫솔이 컨베이어벨트에 설치된 자외선 조명을 통과시킵니다. 이를 통해 내부 부품이 쉽게 분리되는 원리입니다.
스튜디오 측은 저렴한 제품의 재료도 충분히 회수할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알렉스 피어스 수석 디자이너는 “1톤의 금광석보다 1톤의 전자폐기물에 더 많은 금이 존재한다”며 전자폐기물 재활용의 경제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재활용) 과정이 저렴하고 쉬울 수록 기업이 이러한 접근 방식을 추구하고 제품의 재료를 회수하려는 동기가 더 커진다”고 말했습니다.
단, 이번 디자인은 아이디어 차원으로 컴퓨터 그래픽 영상으로만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전동칫솔이었을까요?
해당 프로젝트를 주도한 에디 해밀턴 수석 산업 디자이너는 전동칫솔을 구매하면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밀턴 수석 디자이너는 아마존에서 첫 전동칫솔을 구매할 당시 저렴한 전자제품이 판매되는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가 아마존의 인기제품 목록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파운드(약 3만 4,000원) 미만의 전자제품이 매달 수천 개씩 팔리고 있었던 것.
다만, 산업 디자이너로서 그는 이 가격에 수리 용이성을 고려하는 것은 어렵단 점을 인정했습니다. 수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애플은 재활용 로봇 ‘데이지’로 아이폰을 분해해 재활용하지만, 전동칫솔에 이런 방식을 사용할 순 없단 점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차선책’으로서 수리·재사용이 아닌 분해·재활용을 선택했던 것.

한편, 이번 프로젝트가 오래 전 영국의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밀턴 수석 디자이너 밝혔습니다.
2010년 ‘에이전시 오브 디자인’이 토스터기에 순환디자인을 접목한 ‘디자인 아웃 웨이스트’ 프로젝트입니다. 3년에 걸쳐 총 3가지 토스터기 디자인이 공개됐습니다.
첫 번째 토스터기 ‘낙관주의자’는 ‘장수명’이 강조됐습니다. 알루미늄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 단순하고 견고함을 강조했습니다. 수리 용이성도 고려됐습니다.
두 번째 토스터기 ‘실용주의자’는 모듈설계로 ‘수리 용이성’이 강조됐습니다. 고장이 난 부품만 분리해 수리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편의성이 조금 더 강조됐습니다.
해밀턴 수석 다자이너가 주목한 디자인은 바로 세 번째, ‘재활용’을 중점으로 한 ‘현실주의자’ 토스터기입니다.
진공 고정장치를 사용해 제품이 분해되는 방식입니다. 에이전시 오브 디자인은 이를 “4.99파운드(약 8,500원)”짜리 토스터기를 위한 순환디자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언메이드 프로젝트의 두 번째 디자인이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습니다.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자동화 공정을 추가했단 점이 차이점입니다.
👉 시모어파월, 2015년 네덜란드의 모듈러 스마트폰 ‘페어폰’ 디자인에도 참여했다?